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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지난 3개월간의 기록 vol. 1

2020. 3. 21.

 

 

1. 새 직장으로 첫 출근하는 날.

9시까지 본원으로 출근하라고 해서 일부러 서둘러서
8시 20분쯤 도착해 옆의 커피빈에 있다가 들어갔다.

나는 지금까지 직장이 대부분 강남이었다.
대학원에 가기 전에 다닌 광고대행사도
한 때 광고대행사의 메카라 불리던 신사역이었고,
박물관도 그 근처였다(돈도 많으면서 왜 그곳에 지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ㅎㅎ).

광화문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로 출근할 것이었다.
그래야 어차피 뻔한 직장 생활에서 버티는 힘을 갖게 되고
그 가운데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광화문으로 출근하면 퇴근하고 교보문고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그렇게 갖고 싶었다.
이번에도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것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 언저리까지 다가갔다는 점에 만족을 찾기로 했다.

최전방 연천에 있는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후배에게
형은 어김없이 서울 중심으로 가냐며 부럽다는 말을 듣고
더욱 만족감을 갖기로 했다.

동생아~ 좀만 더 고생해라. ㅋㅋ

 

 

 

2.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자문

원래대로라면 3월 12일에 개막했을 한국 근현대 서예전의 자문을 했다.
자문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하고 왠지 교수님이나 해야 할 것 같아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망설여졌지만,
그냥 내가 아는 한도에서 아이디어 공유를 한다 생각하고 참여했다.

나처럼 한국, 동양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은
굳이 시서화 일치 사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예는 당연히 미술 장르 중 하나라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사람들 중에
서예는 미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를 처음 접하고 '헛공부했구만'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내가 대학원에 가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할지, 한국미술사를 할지를 놓고
한창 고민하던 시절, 지금의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서양미술사를 하게 되더라도 한국미술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마라"고 하셨었다.

아무리 본인 전공이 서양미술사다 하더라도
한국미술사에 대해 너무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상관없으려면 길이 하나 있긴 하다.
한국을 떠나 살면 된다.

이번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중에는
"왜 서예는 미술인가"도 담겨 있다.

사진은 국현 회의실에서 찍은건데 중요한 내용들이 많아서 블러처리를 했다.

 

 

 

3. 전시 준비

첫출근해보니 전시 준비가 막바지였다.


그것도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큰 전시였다.
여기 시스템도 낯설고, 사람들 이름도 못외운 상태에서
전시 오픈 직전에 투입되어야하는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조금 빡세도 전시 오픈하고 나면
다른 때보다 더 빨리 이 조직에 녹아들어 있겠다는 장점도 생각났다.

나는 전시의 일부분이 근대 호텔, 철도 관련 아카이브 섹션을 맡았다.
전시실 내에 있는 화장실 위치도 모른 상태에서 시작하느라 꽤 난감했지만,
'에이~ 그냥 하면 되지'라는 내 특유의 무덤덤함이 발동했다.

그래서 그냥 했다.

가만히 보니 기존에 있던 진열장은 쓰기 어려울 듯해서
물어보니 저~~기 일산 가는 길목에 있는 컨테이너에 다른 진열장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럭을 수배해서 진열장들을 가져왔다.

 

 

 

가져온 진열장들이다.
견고해보이지 않아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시간과 돈이 없었다.
보다 어서 새로 .
이번엔 어쩔 수 없지.

 

 

 

 

전시실 시공할 때 이 정도 규모는 처음 봤다.
아예 건물 자체를 새로 짓는 것 같았다.
내 전시였다면 이 돈 아껴서 더 좋은 작품들 구입하는데 썼겠지만,
기존 기획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지라는 생각과
이런 경우에 전시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나라면 겪어보지 못했을 사례를 하나 채운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지켜봤다.


 

 

호텔들을 돌며 호텔의 사료들을 대여해왔다.
나름 자기들의 역사이기에 생각보다 사료들을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도 학예사까지 갖춘 호텔은 많지 않아서
작품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대여하는 날, 원래 사료들의 상태가 어땠는지 체크하느라 바뻤다.
이 사진도 원래 이 정도 찢어져 있었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해 촬영해놓은 것이다.

근대 전공자라면 관심을 가질법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 많았다.

 

 

 

여기는 반얀트리호텔 로비이다.
스파, 헬스 클럽 중심의 호텔답게 호텔 로비의 컨셉이 다른 호텔들과 많이 다르다.
번잡한 서울 도심 속에서 여유롭게 쉬기 좋은 곳이었다.
장충단 근처에 있는 장소성도 한 몫했다.

 

 

 

워커힐 호텔에서 내려다 본 한강의 전경이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워커힐 호텔이 우리나라 공연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더라.
공연 무대 디자인도 선도적이었다.
수십 년 전에 제작한 무대 모형들과 공연 관련 여러 사료들을 빌려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19금 공연들이 많았는데
전시에 내보일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판 물랑루즈로 소개할 수 있었는데.. 아까비.

 

 

 

하루 종일 유물을 대여하고 다니느라 꽤 피곤했다.
이런 날은 역시 삼겹살에 소주지.

 

 

 

전시 오픈하고 이제 좀 여유있게 밀린 행정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의 홍보 담당자들을 보니 꽤 분주해 보였다.
회도 .

전시 오픈 직후에 늘상 봐오던 허무함과 몽롱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며칠 후에 있을 포럼 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했다.

알고 보니 우리 팀에서 디자인 관련 박물관 준비도 함께 하고 있었다.
요즘 박물관, 도서관 등에서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예전에는 작품을 보완하는 자료로서 종속적인 위치였다면,
이제는 독립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중이다.

사진 등 여러가지 자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정리하고,
가치를 부여해서 사람들에게 선보일까가 화두다.

이에 대한 포럼을 준비 중이라고 하길래
마침 아카이브, 특히 '라키비움(Library + Archive + Museum)' 개념에 관심이 있던 차라
현장 지원하겠다며 참석하기로 했다.

 

 

 

학회 형식으로 진행된 포럼을 간간히 진행상황에 맞춰 현장 업무를 도와주며 들었다.
해외 사례(홍콩)의 경우에는 일단 나는 홍콩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곳의 미술관 운영을 엿볼 수 있어 재밌게 들었다.

아카이브에 대한 관점, 디자인 분야의 생각 등을 알 수 있는 점도 좋았지만,
자신이 기획했던 전시 소개, 성과만 늘어놓는 발표자도 있어 '저 사람은 뭐하러 여길 나온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그 전시 소개라는게 다른 지면에서도 익히 봐오던 내용의 반복이었다는 점이다.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스스로도 경계하는 태도 중에 하나는
"왕년에 내가 뭐뭐했다"이다.

가끔씩 쓰면 도움이 되지만
남용하며 현재의 상황을 자주 비교, 불만하는 사람을 보면
'그럼 그냥 그 일 하지, 왜 여기와서 이러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3년을 일하다가 미술사로 방향을 틀었다.
미술사 대학원에 들어온지 3년이 지난 후부터는
이제는 광고계에 있던 날들보다 미술사쪽으로 온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을 의식하며
광고 일할 때의 이야기는 안하기로 마음 먹은 적이 있다.

큐레이터도 광고기획자와 마찬가지로
기획일 중의 하나이기에 일하면서 아예 없었던 일처럼 할 수는 없었지만
가능하면 옛날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포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찍은 숭례문 야경.
카메라를 수동으로 촬영하는 재미에 빠진지 얼마 안되었는데
이 사진이 수동으로 촬영한 첫 야경사진이다.

후지 카메라 특유의 물 빠진 색감을 아주 좋아한다.

 

후지 XF10을 쓰고 있는데

후지 색감은 그대로 표현해주되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56만원에 구매).

소위 가성비 좋은 카메라이니 후지 색감을 좋아한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전시 오픈을 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박물관에 있을 때의 습관대로
하루에 두 번씩은 꼭 전시실을 둘러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인 '길종상가'의 설치 작품들이다.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이었던 공간을 채워줬다.

 

 

 

 

근대 호텔과 경성 관련 아카이브를 엽서로 만들었다.
사진에 보이는 온실 같은 저 곳은 조선호텔의 '선룸'이다.
당시 사람들이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하는 명소였다.

 

 

 

 

전시 오픈을 했을 때와 논문을 다 마친 직후가 가장 여유롭다.
오랜만에 크레마 사운드를 꺼내 출퇴근하며 전공과 관련없는 책을 읽는데
이 때가 가장 행복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 자문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기에 주말이나 저녁에 퇴근하고 가곤 했는데
지금 회사 규정을 보니 업무 관련된 회의, 강의는
신고하고 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진짜 허용해주는건지, 형식적인 규정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주중 업무 시간 중에
외부 회의 신고서를 제출해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준비도 막바지라 자문 회의도 빨리 마치는게 좋아서
어차피 주중에 시간내는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들어온지 얼마 안됐는데 허락해줄지,
들어온지 얼마 안된 사람이 이렇게 나가는 것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의 반응은 어떨런지 함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결재도 빨랐고, 내부 구성원들도 '그런가보다~'하는 분위기였다.

나이스.

 

 

 

여유로운 날에는 교보문고를.

딱히 살 책이 없어도 이런 때는 가야지.
이 코너, 저 코너 돌아다니며 새로 나온 책들을 구경하다 보면
트렌드가 무엇인지 감이 올 때가 많다.

단순히 출판계의 트렌드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요즘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요즘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감이 온다.

 

사진 속 공간은 교보문고 내에 있는 갤러리다.
소규모 공간임에도 짜임새있는 전시를 할 때가 있어
가끔 들어가서 구경하다 나오곤 한다.

 

 

이 사진은 내가 먹을 때 촬영한 것은 아니고
조만간 가고 싶어 담아놓은 사진이다.
맛있겠다.

소주 한 잔을 입에 탁 털어놓고
두툼한 삼겹살 한 점을 먹고 오이고추에 쌈장을 찍어서 딱 먹으면!!
크아~

 

 

전시 공간에 프릳츠 커피가 입점했다.
시간대별 선착순으로 관람객들에게 커피를 나눠줬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가끔 마셔봤는데 진한 커피를 좋아해서인지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전시는 무엇보다 작품의 가치를 선사하는 데 집중해야지 이게 뭐하는거여...
라고 잠시 생각한 적도 있으나
체험형 전시라는 용어도 있는만큼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어느 한 쪽이 매몰되지 않도록 잘 하면 되지 머.

 

 

요즘은 확실히 복고주의 시대인듯.

8, 90년대 문화를 다들 좋아하네.
8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요즘 20대들이 이렇게 소위 '레트로'한 것을 좋아하는걸 보면

단순히 '추억 소환'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합정도에 있는 일본 라멘집 <하카타 분코>
이름은 서점인데 라멘집이다.
일본 불매운동 분위기에 맞춰
일본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글이 써있다.
더불어 '나눔의 집'에 기부도 한다니 나이스하네.

 

 

스산한 정초의 합정동 골목

 

 

<하카타 분코> 내부 모습.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었나?
SNS 둘러보다가 사진이 이뻐서 다운 받아놓은 것이다.
잭슨 폴록의 무아지경을 바라보며
저 연인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별거 아닌 일상적인 대화였을지라도
그들에겐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호텔에서 트롤리를 빌려왔다.

 

 

전시 마감할 때의 서울역 풍경.
맞은 편의 옛 대우빌딩을 보면 드라마 <미생>의 감동이 밀려온다.
저기에 오차장과 장그래가 있을 것만 같다.

 

 

요즘 애용하고 있는 로이텀 노트.

종이질도 몰스킨보다 좋고,

사이즈도 몰스킨과 미묘하게 다른데(세로 길이가 조금 더 길다) 샤프한 맛이 있다.

페이지 번호가 적혀있는 것도 장점이다.

 

 

서울역 근처에 있는 <이이네(いいね)>라는 라멘집에 갔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 중에 하나가

점심 시간에 나오면서 "오늘 뭐 먹을까요?"라고 묻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가 아닌 '끼니를 때운다'에 가까워서인지

메뉴 정하고 가서 음식을 기다리는 행복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예전부터 다음에 이직하는 곳에는 회사 식당이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는 말을

노래해왔는데 이번에 구내 식당이 있는 곳으로 왔다.

(정확하게는 다른 회사의 식당이지만 우리도 들어가서 먹을 수 있음)

 

암튼 사람은 역시 꿈을 꿔야한다. ㅎㅎ

 

덕분에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주로 하지만,

가끔씩 날씨 화창한 날, 술 마신 다음 날 등

어쩌다 다른 곳에 가면 그때는 정말 외식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먹을 정도로 좁은 곳이었는데

요리 만드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요리사의 패턴화된 움직임, 푸짐한 식재료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시킨 규동 라멘.

 

나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해서

덮밥도 소고기 덮밥인 규동보다는

부타동을 좋아하는데 신기한게 우리나라에는 부타동 파는 곳이 많지 않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와 전시실부터 둘러보러 왔다.

칵테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 수영장도 호텔 수영장을 모티브로 한 설치작품인데

작품 해석을 더 보완해서 관람객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안하면 테마 파크와 다를 바가 없기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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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전을 보고 / 서울시립미술관

2019. 3. 13.


1950년대는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이 유입되면서 서양화단뿐만 아니라 동양화단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시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양미술의 전통이 아닌 서화 중심의 동양미술 전통이 근간으로 발전해온 우리나라 화단에 갑자기 서양 현대미술이 들어온 문화적 충격이라 할 만하다. 생선은 당연히 구워먹는 것이라 여겨왔던 서양인들이 회를 처음 접한 격이랄까. 이럴때 당시 우리나라 화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떤 눈으로 추상회화를 바라봤을까.

이 의문은 현재 학계에서도 활발하게 논의중인 주요 논점이다. 이 논의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동양화단, 서양화단으로 양분하여 연구해온 풍토를 통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술사에서 전공을 구분할 때부터 한국미술사, 서양미술사로 구분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미술사 전공자들은 근대를 연구할 때 동양화단을 주목하고 배경지식도 지필묵의 동양회화가 근간에 깔려있어 서양미술을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서 오히려 서양미술사 전공자가 연구할 때 단점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근현대를 수놓은 대부분의 화가들은 처음 회화학습을 할 때 동양회화로 시작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론을 이해하려면 문인화론과 같은 동양회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강생들이나 후배들이 진학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오면 '만약 나라면?' 혹은 '만약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하라고 할까?'를 염두에 두고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인생에 중요한 것은 공부만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정말 공부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근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면 한국미술사 전공으로 진학하라고 이야기해줄 것 같다. 서양미술사를 깊이 공부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국 최종 연구할 대상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 의한, 한국미술, 한국문화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개 전공을 정할 때 시대로 구분하곤 한다. 그래서 서구권 외국 학자가 나에게 뭘 전공하냐고 물었을 때 "한국회화사를 전공한다", "중국불교미술을 전공한다"는 식으로 말해주면 갸우뚱거릴 때가 많다. 그들은 "18세기 미술을 전공한다", "르네상스시기 미술을 전공한다" 등 시대 전반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시대로 전공을 구분하면 그 시대의 미술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제작된 회화, 조각, 공예, 건축, 그리고 각종 시각이미지까지 모두 연구해야한다. 왠지 전공의 샤프함(?)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넓게 공부해야 외곬수적인 생각을 방지할 수 있다. 다채로운 학설 전개도 가능하다. 점차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랜만에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러 <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 전시를 보고 왔다. 급하게 미술관 2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을게 있어 갔다가 겸사해서 전시도 봤다. 한묵의 전성기를 장식한 작품은 그래픽적인 요소가 강한 기하학적 추상회화이다. 그러나 그의 회화전개를 전반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의 화업도 역시 붓과 먹을 사용한 경험이 묻어나오는 작품도 상당하다. 그리고 최소 조형요소인 색, 선을 통한 형태의 발현에는 도교적 세계관도 감지할 수 있다.

이 전시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 연세에도 회화혁신을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점에 놀랐고, 젊은 나보다 훨씬 젊은 감각에 놀랐다. 하지만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서양 미술사조라는 틀 속에 위치한 공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통 서화의 추상성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급하게 논문 한 편을 쓰고 있어 정신없긴 하지만 얼른 마무리짓고 다시 한 번 보러갈 예정이다. 전시는 3월 24일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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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공간>전을 보고 / 세화미술관

2018. 11. 8.


저녁노을이 질 때쯤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에 서서 노을이 지는 쪽을 바라보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망치질 하는 사람(Hammering Man)>을 볼 수 있다. 망치질 하고 있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너무나 고요해서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고 있는 느낌마저 드는 조각상이다. 구스타프 쿠르베가 19세기 파리의 노동자들을 성스럽게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몸짓이랄까.


조각상 옆에는 흥국생명 빌딩이 있는데 이 건물 3층에 세화미술관이 들어서있다. 광화문을 자주 가면서 세화미술관 방문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빠르게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지나다니며 언제 가봐야겠다고 다짐만 했다가 이번에 처음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꼭 봐야겠다고 생각을 한 이유는 전시 소개글에서 찾을 수 있다.


관람객은 화이트큐브의 경직된 공간 대신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미술관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직조 등 전통 섬유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에서부터 광섬유를 활용한 오브제, 실을 연결하여 공간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 작품, 패브릭을 활용한 공간 드로잉, 실로 감싼 집 등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섬유의 물성을 활용하여 공간과 적극 소통하며 각각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대개 회사 빌딩에 입주한 미술관들은 전시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 어쩔 수 없는 한계이며 큐레이터들은 전시를 할 때마다 고생하게 되고, 아쉬움이 많다. 세화미술관 역시 흥국생명 빌딩 3층에 있어서 같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가장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으로 화이트큐브형으로 공간을 꾸미는 것을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창문을 가린 직육면체 공간에 하얀 페이트칠을 한 벽으로 마감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면 전시는 단조로워질 수 밖에 없다. 벽에 회화작품을 높이만 통일해서 걸어버리거나, 마치 무심한 손길로 놓은 듯 조각상을 비정형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끝내기 때문이다. 나처럼 전시기법 보다는 작품에 더 집중하는 미술사 연구자들은 작품만 보면 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전시 자체는 심심해져 작품이 주는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전시 소개글에서 말한대로 이런 한계가 있는 공간을 어떻게 채웠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섬유 재료를 공간 연결에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도 보고 싶었다.


<유연한 공간>전은 섬유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공예작가 5인(강은혜, 노일훈, 박혜원, 정다운, 차승언)을 선정하여 각 공간을 담당하게 한 전시이다. 작가들은 작품을 세화미술관 속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제작했다. 집 속에서 뻗어나오는 빛을 벽에 비춰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인연에 대해 보여주거나(박혜원), 공간을 마치 고구려 고분벽화인 <수렵도>의 무대처럼 꾸며 새로운 산수, 풍경을 선보였다(노일훈). 서울역사박물관 쪽에서 비춰오는 햇빛으로 패브릭의 화려한 원색을 강조하여 시각적 즐거움을 보여주는 공간(정다운)은 전시실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찾아보게 만들었다.


전체 전시공간 역시 제목(유연한 공간)에 걸맞게 잘 구분했다. 전체 공간은 작지만 많은 것을 보고 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조용히 생각에 잠긴채 관람하기 좋은 전시였다. 특히 설치미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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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전시

2017. 11. 1.


전시 이론에 대해 논문을 쓰는 중이었던 선배가 나에게 내셔널갤러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달라고 하여 모두 보내준 적이 있다. 며칠 후 선배는 고맙다며 술을 샀는데 나에게 “야. 너 누가 미술사하는 양반 아니랄까봐 어째 죄다 작품 사진 밖에 없더라. 공간 사진이 필요했는데. 어쨌든 고맙담마 ㅎㅎ”라며 웃었다. 그래서 나는 형이나 나나 그 병(작품 도판 쟁여두는 병) 어디 가겠냐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가장 원하는 전시 DP는 사실 별게 아니다. 세련된 공간, 센스있는 진열대 등등.. 보기에 멋있긴 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전시는 18, 19세기 유럽의 박물관들처럼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 아래, 양 옆에 다닥다닥 붙어있어도 좋다.

그저 많은 명작들을 볼 수 있고, 많은 미술사 지식을 배우고,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낌없이 최고의 전시라고 자평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보는 즐거움, 공간에 대한 체험이 요즘 트렌드이니 무모하게 밀어붙이진 않겠지만, 18, 19세기의 유럽 작품들을 보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댓글 2
  • 태희 2017.11.02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다녀보진 못했지만..
    작품이 많은 곳은 관람하다가 중간에
    앉아서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긴 의자가 있으니 참 괜찮았어요.
    미술사를 이해하믄서 명작을 또 직접 보면 더 풍부하게 와 닿겠어요.

    • 저도 그런 전시관람이 좋더라구요. 감탄하게 되는 멋진 전시공간도 재미는 있지만, 조용히 앉아서 쉬다가 다시 작품보는 식으로 심신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곳이 더 좋아요. ㅎㅎ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사월의 동행 April the Eternal Voyage> in 경기도미술관

2016. 5. 10.

58일 어버이날에 경기도미술관 <사월의 동행>에 다녀왔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사월의 동행>展은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안산 화랑유원지 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어떤이에게는 이제 그만 좀 했으면 하는 듣다 지칠 이야기, 또 어떤이에게는 손에 잡으면 사라질 뜨거운 눈물 같은 416 세월호 참사.

전시는 희생자 가족과 참사로 인해 공동의 아픔을 갖게 된 이웃들과 서로를 위무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공감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되묻고, 예술이 무엇을 담아내고 표현할 것인지, 어떻게 모순된 사회와 함께 호흡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전시의 인상은 공동의 분노와 공포를 날카롭게 직시하면서도 잔잔하고 차분한 어조로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그 모습이 격노를 꾹 참고 침착한 어조로 희생자들을 위해 선언하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조소희, <봉선화 기도 304>, 2016, 혼합 재료, 가변 설치, (작품설명, 사진 : 경기도미술관)

봉선화기도는 손가락 전체에 봉선화 물을 들이고 기도하는 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인간의 염원에 담긴 아픔, 슬픔, 분노 등을 표현한 작업으로 작가가 2014년부터 진행되어 왔다. 그동안의 작업이 한 개인의 기도였다면,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된 304개의 손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고통과 분노, 그리고 애도가 담긴 공동의 기도이다.

작품을 보고 바로 든 생각은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들 하지만 누구나 유독 아픈 손가락은 있을 것입니다.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이들을 위해 304명의 자발적인 관객들이 공감과 연대의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습니다.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 손가락에 봉선화물을 들이는 <봉선화 기도> 토요프로그램이 마련되어있습니다.

장민승, <마른 들판>, 2014, 수용성 종이에 실크스크린, 제주 조약돌, 타원형 스포트라이트, 29×42×8cm 6피스, 가변 설치

(작품설명 : 경기도미술관)

장민승은 세월호의 비극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절제된 몸짓과 글로 표현했다. “〔…〕둘이서 보았던 눈, 올해도 그렇게 내렸을까 파도는 차갑고, 물새도 잠들지 못하는구나〔…〕손에 잡으면 사라질 눈물, 뜨거운 눈”(하이쿠 <마른 들판>) 그는 이 시를 물에 녹는 종이에 인쇄해 조약돌을 얹어 설치해 희생자들에게 보낸다.

안규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읽기>, 2016, 사운드 설치, 가변 설치(작품설명, 사진 : 경기도미술관)

좁은 골목 끝 저편에 글을 읽는 이가 있다. 글을 조근 조근 읽는 그를 바라 볼 수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 작가는 우리 아이들이 아마 지금쯤이면 읽을 수도 있었을 책”, “아름다움에 대해, 젊음과 우정에 대해, 인내와 슬픔과 고뇌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행위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추모를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언젠가는 우리의 목소리가 먼 곳까지 닿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리운 사람들에게 닿을 거라는 희망으로 읽기를 권한다.

우리 아이들이 아마 지금쯤이면 읽을 수도 있었을 책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젊음과 우정에 대해, 인내와 슬픔과 고뇌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입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는 우리의 목소리는 꿈결처럼 저 먼 곳에 있는 그리운 사람들에게로 갈 것입니다. 따스한 숨결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가 닿을 것입니다.” 안규철

전시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는 길목에 형광펜으로 책에 줄을 그어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싶은 문장을 기록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잠시 의자에 앉아 형광펜의 자취들을 살피며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빛이 나는 문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때나 봉기하진 않는다. 흔히 먹고 살기 힘들면 봉기한다고 하지만, 그건 일면적인 관찰이다. 역사 속의 허다한 봉기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사실은 그것이 더 많은밥과 더 좋은 옷을 목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봉기자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들이 무엇인지 증명하기 위해서 <죽음을 무릎쓰고> 일어난다.

전시 관람을 한 뒤 동행인과 함께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케익을 먹고 수다를 떨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렇듯이 아주 평온한 날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모순되고 이상하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현상 유지에 급급하며 살고 있는, 이렇게 느슨한 긴장감을 가지고 사는게 문득 맞는건가 하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특히 요즘 많은 분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우리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만나고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하지만 모두 바쁘고 하루하루가 치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이 잘못됨을 알고 표현하기에 너무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개인을 모아주는 것이 제가 바라는 예술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선동을 의미하는 것도, 사회에 투쟁하여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쥐자는 것도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맞춰 <사월의 동행>이 열리기 전에 많은 우려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미술관을 찾아주시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공감과 위로라고 생각이 듭니다. 전시는 06.26()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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