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경매

[경매 소식] 김환기와 이응노, 작가 최고가 낙찰

2017. 11. 29.

이응노, <군상>, 1988


11월 26일에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김환기의 <모닝스타>(1964년)가 작가 최고가인 39억원에 낙찰됐다고 합니다.

완전한 추상회화로 화풍이 변모하기 전단계의 반추상회화여서 어느 정도 대상의 모습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이지요. 같은 경매에서 이응노의 <군상>도 작가 최고가로 낙찰됐는데 2억원이라고 하네요. 저는 이응노가 업적과 미술사적 평가에 비해 미술시장에서 너무 저평가되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에 김규진에게 배운 문인화, 그리고 일본에 유학가서 일본 근대의 대표화가 중 한 명인 마츠바야시 케이게츠(松林桂月)에게 사사한 일본의 신남화, 이후 파리 유학시절 전통회화를 근간으로 한 그의 추상회화는 현재 활동중인 한국의 미술가들에게 정체성 확립 및 실험정신 등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화가가 아닐까 싶네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만약 이 말이 맞다면 미술계에서는 이응노가 가장 적확한 인물일겁니다.

한국회화의 정체성도 보여주면서 세계에서도 통하는 인물인데 미술시장의 추이를 볼 때마다 아쉽군요.


기사원문> http://www.sedaily.com/NewsView/1ONQQYCV2J#_enliple


댓글 0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에 정신분열증까지 앓게 된 뭉크의 그림들

2012. 5. 4.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에 정신분열증까지 앓게 된 뭉크의 그림들


며칠 전에 미술 경매사상 최고액인 1억1천992만 달러에 팔린
뭉크의 <절규 Scream>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중성 면에서는 슈퍼스타였던 피카소의 그림을 제치고
사상 최고액으로 경매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이었죠.

경매하기 전 소더비 관계자 인터뷰

보통 뭉크(Edvard Munch)의 그림하면
영화 스크림에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절규>를 떠올리죠.
이번에 판매된 작품은 우리가 흔히 봐오던 유화로 그린 <절규>가 아니라
파스텔로 그린 <절규>입니다.

작품의 주제 자체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다른 버전의 작품도 인기가 있나봐요. ㅎㅎ

에두바르트 뭉크(1863-1944)는 기존 서양미술사에서
세상을 가장 세기말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입니다.

기본적으로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은 白夜 현상과 같은
지역적 특색상 사람들의 기질이 멜랑꼴리(melancholy)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와 지중해성 기후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다혈질적인 면이 강한 것처럼 말입니다.

에드바르트 뭉크는 이러한 노르웨이 특유의 멜랑꼴리함 속에서
여러가지 개인적인 사건을 겪은 뒤
더더욱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봤습니다.

특히 다섯 살 되던 해에 겪은 어머니의 죽음과
어머니 역할을 대신 해주던 누나 소피에의 죽음까지 접하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되었죠.

그래서인지 뭉크의 작품에 흐르는 일관적인 키워드는
바로 '죽음'입니다.

Edvard Munch, <Death in the Sickroom>, 1893, In the The Munch Museum, Oslo

뭉크의 누나 소피에가 죽었을 때(1877년 사망)를 생각하며 그린 작품입니다.
전체적으로 음산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어두운 색을 많이 사용했죠.
특히 벽은 손을 대면 스산함을 느낄 것 같은 창백한 에메랄드색으로 처리한게 주목됩니다.

그런데 뭔가 인물들 배치가 어색하지 않나요?
그건 바로 뭉크가 의도가 강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침대에는 죽은 누나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있겠죠.
하지만 뭉크는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바로 죽은 누나 소피에이죠.
얼굴도 해골을 향해 변해가는 형태로 그린 것을 보면
뭉크는 죽음과 해골을 같은 모티브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왼쪽에 벽을 붙잡고 슬픔에 잠겨있는 듯한 남자의 모습이죠.
이 남자는 바로 뭉크 자신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형태의 자화상으로 자신의 슬픔을 화폭에 담은 것이지요.

이렇게 누나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뭉크는 그의 작품에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주요 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점점 알 수 없는 세계관에 사로잡히게 되죠.

Edvard Munch, <Anxiety>, 1894, In the The Munch Museum, Oslo

이 작품은 왠지 낯이 익죠? ^^
유명한 <절규>의 배경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Anxiety>는 <절규>를 그리기 전 단계의 그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과는 다르게 배경이 점점 이상하고 기괴하게 변해가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물의 형태 역시 평범한 사람에서 <절규>에서 보이는 해골로 변해가는 과정 중에 있네요.

제일 앞에 있는 여자는 뭉크의 죽은 누나, 소피에를 의미합니다.
누나가 죽은지 십 수년이 흘렀건만 뭉크는 그 고통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질 못했던 겁니다.
피부도 죽은 자를 상징하듯 창백한 초록색으로 되어있죠.
뭉크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머니와 누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을 매몰시켜버린 겁니다.

그의 화풍 역시 점점 생략적이면서
자신의 뜻을 보이는 것에 치중한 면을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절규>이죠.

Edvard Munch, <Scream>, 1893, 마분지에 유화, 템페라, 파스텔, 91×73.5,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우리가 익히 봐온 <절규>입니다.
해골같은 인물의 형태와 표정은 물론 배경에서 소용돌이 치는 듯한
격한 감정을 느낄 수 있죠.

이 작품들을 그렸을 당시 뭉크는 실제로 정신분열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그의 아픔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 것이죠.
몸은 살아있으나 정신적으로 공허하고, 소외되며, 불안함으로
병들어가는 모습에 집착하게된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뭉크가 이러한 아픔을 가지게 된 것은
앞서 설명드렸듯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이 가장 컸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픔이 더 있죠.
그건 바로 첫사랑의 실패입니다.

첫사랑에 실패한 뒤 좌절하고, 고통을 느끼며, 마지막에는
여자에 대한 혐오감까지 느꼈던 뭉크의 작품은 다음 포스팅으로 잠시 미룰까 합니다. ^^

댓글 1
  • 피스드 2017.05.28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괴적이고 음울했던 뭉크가 역설적으로 가장
    최고의 평가를 받는 건, 절망과 죽음이 무엇보다
    인간에게 신성히 고결하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ㅎ
    그래서 뭉크는 위대하다 ㅎ 역시 제 소신을 지킬 수 있어서 ㅎ 어둠이 새삼 몸서리치게 아름답다 ㅎ 잘 봤습니다 증말

[미술시장] 그림 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2011. 11. 12.

[미술시장] 그림 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갤러리에 가보면 전시실에 걸려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소속 작가들의 작품으로 팔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술관과 갤러리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전시를 위한 전시인지, 판매를 위한 전시인지로 구분하기도 하죠. 그 때문인지 미술관들은 기획 전시를 할 때 티켓을 판매를 하는 반면, 갤러리는 무료로 전시를 볼 수가 있습니다. 즉, 미술관은 티켓, 도록 등의 판매 수익이 중요하고, 갤러리는 작품 판매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저도 그렇지만) 갤러리 안에 들어가는 것을 조금 꺼려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마치 옷가게에 들어가서 아무 것도 안사고 나올 때의 뻘쭘함(?)이 갤러리에서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물론 갤러리에서는 전시 관람만 하고 간다고 해서 수군거리거나, 꺼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보통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은 자신이 소속된 갤러리 혹은 직접 갤러리를 섭외해서 개인전을 통해 판매하거나 아트페어같은 공식적인 미술품 거래현장에서 팔기도 합니다. 이름이 덜 알려진 작가들은 지인들에게 아니면 아트페어에 한 부스를 차려놓고 전시를 하면서 파는 경우가 많죠.


이름이 덜 알려진 작가들이나 신인들 중에서 상품성을 가진 작가들은 갤러리에서 후원을 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게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소위 '뜨는' 작가가 되면 서로 윈윈하게 되는거죠.

그렇다면 갤러리에서 판매하는, 아니 현재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이 거래될 때, 그 가격이 어떻게 결정될까요?

우선 작품 거래의 기준을 아는 것이 좋겠습니다. 책은 권당, 옷은 벌당 이라는 단위가 있듯이 미술 작품도 고유의 단위가 있습니다. '호'라는 단위인데, 번호를 매길 때 쓰는 '호'입니다. 미술에서는 작품 크기를 잴 때 쓰는 용어로 사용되는데, "그 작품 크기가 어떻게 돼?" "응, 10호짜리야." 이렇게 얘기를 하는거죠.

이렇게 크기를 잴 때 쓰는 단위인 호가 작품 가격의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1호당 10만원을 받는 작가가 10호 크기의 작품을 판다면 그 작품의 가격은 100만원이 되는 것이죠. 근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2호가 1호의 두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1호보다 약간 큰 크기이죠.


작품의 가격은 사실 합리적인 계산에 의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창작물이라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장성의 잣대에서 가격을 정하기는 하는데, 보통 다음의 경우를 고려해서 결정합니다.

1. 작가의 유명도(브랜드 가치)
이중섭, 김기창, 모네, 피카소 등과 같이 누구나 알법한 작가라면 부르는게 값입니다. 

2. 작품성
미술비평가로부터, 아님 언론을 통해 호평을 받으면 가격이 급등하게 됩니다. 이 것 역시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3. 트렌드 또는 희소성
요즘 미술시장의 트렌드에 맞는 작품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가격이 높게 책정됩니다. 아니면 아예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것 또한 가격이 올라가게 되죠.

4. 작가의 생존 유무
신기하게도 미술에서도 작가가 사망했다면 가격이 올라갑니다. 인간의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작용해서일까요? ㅎㅎ 이 것도 위의 희소성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작품의 가격은 유동적이고, 언제 어떤 이유로 가격이 올라갈지 모르기 때문에 갤러리에서는 신진 작가들, 미대 졸업생들을 많이 찾아보고 최대한 작품성을 따져보며 계약을 맺는 등 투자를 열심히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명 작가들, 미대 졸업생들도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데 게을리하지 않고 있죠.


하지만 미술작품의 가격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합리성이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는 예술 작품을 상품으로 환산해야한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술과 대중이 가까워질 수 있고, 자본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어느 정도 작가와 대중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 도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재벌집 사모님들이 하도 미술 작품 가지고 장난을 치시는 사건이 점점 많아지니 말이에요. ^^;;




제 글이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갈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으시면 왼쪽에 다음뷰 혹은 한RSS 버튼으로 구독을 해주세요.
편하게 제 글들을 모아서 보실 수 있답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