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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전을 보고 /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

2018. 12. 1.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에서 하고 있는 <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전에 다녀왔다.


보통 전시를 가면 작품에만 집중해서 보는 편이다. 전시 디자인은 안타깝게도 '거기서 거기'라는 허무함을 갖고 있는 데다가 작품이 지닌 미적 가치가 전시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전시 역시 근대 명품들을 공부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방문했다. 그런데 제1실부터 이 전시를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전시는 작품 선정 및 설명, 전시 디자인, 전시 구성이라는 주요 3요소를 모두 성취했다. 전국의 국립, 사립 기관, 그리고 개인소장가들의 근대 대표작들을 대여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작품 하나를 보러 지방 먼 곳까지 가기란 논문 쓸 때 아니고서는 꽤 어려운 일인데 이 전시가 한 번에 해결해줬다. 특히 해강 김규진의 그림을 바탕으로 수를 놓은 <자수매화병풍>은 최초로 공개되는 것으로 전시의 수준을 한껏 올려주었다.


전시 구성 역시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센스와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해줬다. 미술사 전시는 언제나 초점을 어디에 맞출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당시의 시대상을 증명해주는 도구로서 작품을 내놓을지, 아님 작품의 예술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출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 전시는 대한제국이라는 암울한 시대상을 한 꺼풀 벗겨 재조명하는 것도 목표로 삼았기에 역사적 맥락 역시 중요했다. 그렇다고 근대 거장들의 대표작들을 단순한 사료로 취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1실부터 제7실까지 이어지는 전시공간의 앞 부분은 근대 사진자료들과 함께 우리가 왜 대한제국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충실한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후반부는 근대미술의 미술사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 근대 서화가들의 요람인 '서화미술연구회', '동연사' 섹션이 대표적이다.


마지막 공간에는 개인적으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스케일면에서, 작품 수준에서 자랑할만 하다고 여기는 창덕궁 대조전 벽화를 미디어아트로 대신하였다. 현실적으로 벽화를 대여해서(비단에 그린 작품이긴 하지만) 전시하기란 꽤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 왕실 미술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감하는 이 작품들은 대한제국 전시의 필수이기에 미디어아트로 대신하여 그 스케일을 눈과 귀로 만끽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시 공간 역시 꽤 큰 정성을 들인게 느껴졌다. 왕실 내부의 모습을 심플한 벽체로 꾸몄는데 마치 평일 한 낮에 아무도 없는 종묘에 들어선 듯한 고요한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의관을 정제해야만 될 것 같았다.


사진찍기 좋도록 꾸미고 전시 공간 디자인에만 집중하는 전시 풍토에 국립기관으로서 모범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 세 번 봐야할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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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신여성 도착하다' 특별전의 짧은 단상

2018. 1. 1.


미술작품을 역사의 증거물로 사용하는 연대기적 전시 형식과 텍스트를 최소화하여 작품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전시 형식이 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여성 도착하다>전은 연대기적 전시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지식 함양과 볼거리는 많아 재밌는 전시였다. 그러나 명품이 명품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흐름 속에 부속물로만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전공자들은 명품이란걸 알고 나름 감동하며 감상할 수 있지만, 비전공자들에겐 명품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지나치게 되어있다.


물론 둘 중에 어떤 형식이 옳고 그르다는건 없다. 전시에 나올 작품의 성격과 큐레이터의 의도에 따라 적절하다고 여기는 형식을 따르면 될 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이라는 의무감이 있기 때문에 과감한 형식을 선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최대한 스탠다드한 형식을 취해야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명품이 흐름 속에 침잠되어 있다는 아쉬움을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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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정동길

2016. 2. 18.




넛지살롱 강의하러 가는 길.

퇴근 후 넛지살롱으로 가는 길은 총 3개가 있다.


광화문역에서 올라가는 길,

서대문역에서 올라가는 길,

그리고 시청역에서 정동길로 올라가는 길.


서대문역에 내려서 가는 길이 가장 빠르고,

시청역에서 가는 길이 가장 오래걸린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꿋꿋하게 시청역에 내려서 걸어가는 길을 택한다.


왜냐하면 서울에서 가장 고요하고, 운치있는 퇴근길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테헤란로, 여의도, 신사역처럼 번화한 곳의 퇴근길은

사람들이 마치 있어선 안될 수용소 같은 곳에서 탈출이라도 하는 것 같은데

정동길의 퇴근길은 퇴근 역시 평범한 하루의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때론 정동길의 표정이 너무 덤덤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되레 큰 위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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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3월에 걸맞는 전시 추천, 하늘에서 본 지구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특별전 It's My Home

2012. 3. 6.

봄비 내리는 3월입니다.


차가운 바람만 불지 않았음 더할 나위없이 좋았을
3월의 봄비가 내리네요.

사람들에겐 각기 계절에 따른 추억, 혹은 특정한 장소가 있겠지요.
저는 겨울하면 비록 가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러브레터의 강렬한 인상 덕분에 일본 홋카이도가 생각나고,
여름하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학교 도서관이 생각납니다.

비록 거창한 추억은 아니지만
저의 시각, 청각, 후각 등이 이것들을 기억하게 해주는 거겠지요.

그럼 여러분은 봄비하면 어떤 것이 생각나시나요?
저는 덕수궁 옆 정동길 입구에서 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생각나는군요. ㅎㅎ
'이런게 봄냄새라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해준 곳이 바로 그곳이었거든요.

어제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곤
슬슬 덕수궁에 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근처 미술관에서 어떤 전시를 하나 봤더니
어려운 여느 전시보다 누구든지 쉽게 작가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는 사진전을 하고 있더군요.

사진전은 작품을 창조하는 매체 자체가 우리와 밀접한 카메라이고,
사진이라는 작품 역시 역사가 짧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거 같아요.

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인 약탈 Rape of the Sabine Women>, 1637-38, oil on canvas, 159×206, Louvre

Eiffel Tower, Paris

가령 로마시대 이야기를 그린 19세기 유럽의 고전주의 작품을 보는 것보다
에펠탑의 야경을 찍은 사진을 볼 때 누구든지 재밌게 이야기하며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사진전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 개방성이 있지요.

그래서 봄을 맞이해서 볼만한 사진전을 하나 추천할까 합니다. ^^
3월 15일(목)까지 전시하는데 이제 열흘 정도 남았군요.

하늘에서 본 지구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특별전 It's My Home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전시회는 항공사진전입니다.
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인물이죠.
20여년 동안 항공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보의 하트 무늬>, 누벨칼레도니, 프랑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 중 가장 핵심이라고 할 만한 사진 220여점을 선보이는데
전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계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구가 만들어낸 자연의 모습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여지는 사진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따로 모아
하나의 섹션으로 꾸몄지요.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인삼밭과 논밭이 그려놓은 3색의 추상화>, 강원도 양구군 사본

위의 작품처럼 사진 작품의 특성상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검은 망을 덮개로 사용하는 인삼밭과 추수를 앞둔 논밭의 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이룬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땅에 붙어 사는 우리들의 시각으로는 절대 만끽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폐그물을 이용한 다시마 말리기>, 전라남도 완도군 평일도

우리나라 자연을 배경으로 찍은 작품은 지난 10년동안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과 함께
<하늘에서 본 지구 조직 한국위원회>가 주도하여 기획한 작품들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문학자인 이어령 선생님이 전시의 전체를 총괄하며
도록에도 글을 싣는 등 단순한 상업적인 전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퀄리티가 보장되는 전시회라고나 할까요? ^^

조금 있으면 화이트데이도 다가오고,
봄도 맞이해서 주말의 나들이로
하늘에서 본 지구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특별전 It's My Home을 꼭 보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고미술 전시를 볼 때는
그동안 공부한 온갖 미술, 역사 내용을 떠올리며
보느라 혼자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사진전은 친구와 함께 떠들며 보는 것이 가장 재밌더군요. ^^

하늘에서 본 지구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특별전 It's My Home

일시 : ~ 2012. 03. 15(목)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덕수궁 옆)
시간 : 평일 10:00~20:00 / 주말 및 공휴일 10:00~19:00 (*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
도슨트 : 화~금 13시, 15시 / 주말 및 공휴일 11시, 13시, 15시
관람료 : 일반 10,000원 / 청소년 8,000원 / 어린이 5,000원

* 자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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