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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한국 근현대미술사 강연 후기 / 평택 배다리도서관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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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수)과 24일(수), 2주에 걸쳐 평택 배다리도서관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사> 강연을 하고 왔습니다. 예전부터 지역 도서관에서 시민을 위한 강연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아직 박사 논문도 없고, 책을 낸 것도 아니라 기회나 올 성싶었습니다. 나중에 연구 연차가 더 쌓이면 할 수 있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올 초에 연락이 와서 기쁜 마음에 잘 하고 왔습니다.

사실 근대미술 관련 강의는 호림박물관에서 <근대회화의 거장들> 특별전을 기획하고, 일본미술사 논문을 쓰는 중간에 한 번씩 이응노와 관련된 논문도 써왔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편하긴 합니다. 주전공인 일본미술사보다 할 기회가 더 많기도 했고, 일단 어지간한 자료들을 확보해 둔 덕분이죠. 역시 전시는 남는 건 글이요, 논문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ㅎㅎ

이번 강연은 문체부의 지원 사업 중 하나로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고 가을까지 현장 답사를 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소마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덕수궁관을 차례로 가서 도슨트를 할 예정입니다.

소마미술관에서는 《다시 보다: 한국 근현대미술전》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장욱진전》을 볼 예정입니다. 세 전시 모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전시들이니 꼭 챙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주로 어떤 내용으로 강연하는지 간단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근대회화 강의를 할 때는 언제나 오원 장승업부터 시작합니다. “김홍도는 단원이요, 신윤복은 혜원이요, 나 역시 원이다”는 의미로 ‘나 오(吾)’자를 써서 ‘오원’을 호로 쓴 장승업입니다. 조선말기 최고의 화가이고 그의 그림 실력은 중국의 수많은 레전드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만큼 화가로서 영향력이 대단하여 근대까지 화풍이 이어질 정도입니다.

안중식, 조석진, 김응원, 김규진은 조선 회화와 근대 회화의 가교 역할을 한 인물들이죠. 축구로 따지면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라고 할 수 있죠. 수비수에게 공을 전달받아 전방으로 좍좍 뿌려주는. ㅎㅎ 이들에게 배운 화가들이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계의 중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1917년에 창덕궁에 불이 나서 1920년에 순종 황제의 명으로 복원하게 되는데 그 안을 장식할 벽화도 새로 주문을 했습니다. 본래는 조선 최고의 화가였던 안중식, 조석진 등에게 의뢰하려 했지만 마침 연이어 세상을 떠난 터라 남아있던 김응원과 김규진을 리더로 삼아 그들의 제자들에게 일을 맡기게 되었죠. 이때 한 스승이 제작비를 슈킹(?)하려다 제자들에게 걸렸다는 내용의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사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거작들입니다.

벽화 중 하나인 <총석정 절경도>입니다. 프레스코화처럼 벽에 직접 그린 게 아니라 비단에 그려 상인방에 붙이는 방식이었죠. 현재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가로 약 9미터짜리 비단이니 황실에서 준 제작비가 얼마나 많았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들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스케일적으로 거대하고 치밀한 회화가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밭을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날 것 같은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 풍경이 절로 느껴지는 이상범의 사경산수화입니다. 이상범 회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높은 평가를 하지만 조금 식상하다는 뉘앙스도 함께 지니고 있긴 합니다. 대단하긴 하지만 그만큼 아주 혁신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거죠. 그래도 우리나라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2016년에 제가 경매에서 사오려고 애를 엄청 썼는데 결국 실패한 기억이 있는 작품입니다. 결국 국립고궁박물관이 사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어진 초본인데 고궁이 갖고 가는 게 제가 있던 사립박물관보다 시민 입장에선 더 잘된 일이긴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진짜로 피카소와 경쟁하려고 떠날 준비까지 했던 천재 오브 천재인 묵로 이용우의 작품입니다. 그의 산뜻하고 명랑한 채색 감각은 당대에 비교할 자가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외국으로 갈 수 없었죠.

우리나라는 물론 서양과 일본 모두 근대미술을 이야기할 때는 전람회에 대해서도 꼭 배경으로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전에는 미술이 아는 사람들끼리만 보는 지극히 사적인 향유가 이뤄졌다면 근대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전람회 문화가 미술 전개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배 논리에 의해 시작되긴 했지만 1915년부터 전람회 문화가 형성되었죠.

우리나라 1호 서양화가인 고희동의 자화상입니다. 일본 유학에서 인상주의를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이 작품의 어떤 점이 인상주의의 영향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끌로드 모네의 작품도 함께 비교하며 강의를 합니다.

우리나라 2호 서양화가인 김관호입니다. 평양의 부호 집안 출신이라 넉넉한 형편 속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근대의 평양은 신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진보적인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조선시대의 한양, 영남의 보수적인 성리학이 팽배했던 지역과 다르게 평양은 조선 초기부터 상업이 활성화되었고 관광도시로서 새로운 문화를 항상 빠르게 수용해왔던 지역입니다. 그러한 전통이 계속 이어져 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관호, 김찬영도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집안의 지원 속에서 아무도 서양미술에 대해 모를 때 일본에 건너가 서양미술을 배워오는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구로다 세이키라는 일본의 1호 서양화가에게 인상주의, 고전주의, 사실주의 미술을 배워왔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프랑스에 유학을 다녀온 이종우의 <루앙 풍경>입니다. 이종우는 일본에 유학을 갔던 다른 화가들과 달리 인상주의보다는 후기 인상주의, 고전주의의 영향을 더 받았습니다. 이 작품도 세잔의 작품처럼 단순화시킨 면과 색의 병렬만으로 풍경을 완성시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련의 소비에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박정희 정부도 처음에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새시대를 맞이한다며 추상미술을 지원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보수적인 사실주의, 민족기록화에 더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우리나라의 민족기록화는 정치적인 논리에서 서로 유사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성과를 꼽자면 불국사와 석굴암 등 경주의 재정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의 전신) 설치, 문화재보호법 제정, 각종 공공미술의 설치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술문화를 재정비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도 하지만 그래도 전 개인적으로 “정부는 문화와 예술에 제발 손대려 하지 말고 돈만 지원해라”가 가장 좋습니다. ㅎㅎ


마지막으로 추상미술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칩니다. 가장 인기가 높은 김환기의 조형미 높은 작품들을 소개할 때면 항상 감탄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합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나라 최고의 현대화가로 평가하는 이응노의 작품을 소개할 때면 어떻게 더 설명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그의 작품성이 참 대단할 따름입니다. 나름의 하이라이트라 생각해서 마지막에 소개하죠.

이런 흐름으로 강연을 진행하곤 합니다. 이제는 소마미술관 도슨트 준비도 슬슬 해야겠네요. 다음에도 제가 모집을 하건, 외부 강연이건 기회가 닿아서 <한국 근현대미술사> 강의를 하면 좋겠고 그곳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