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은 조용한 성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 무언가를 골똘히 사색할 때 나오는 모습, 야만적인 상대 혹은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려는 행동에서 주로 나온다. 상대에 대한 배려일 때도 있다. 이처럼 침묵은 긍정적인 의미로 진중한 모습일 때가 많지만, 때로는 비위나 부정을 애써 외면할 때 사용되는 비겁한 행동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침묵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작년에 우연히 김지민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작가의 웹사이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진중한 분위기와 세련된 조형성(같은 의미이지만 우아함이라기보다는 엘레강스라고 표현해야 더 부합할 것 같은) 때문에 틈틈이 즐겨찾기해놓고 구경하곤 했다.
지난 10월에 SNS를 통해 작가에게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는 초대를 받게 되었다. 당시에 축하할겸 오픈하는 주말에 가려고 했지만 사정이 생겨서 계속 못갔다. 미안한 마음에 전시기간이 이번 주말까지이니(~11/28) 더 늦기 전에 다녀오려는 생각으로 어제 연차를 내고 전시에 다녀왔다.
그동안 작가가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어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작업과 고민에 대한 해답을 책(특히 고전)에서 찾으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업과 세상에 대한 고민은 어느 작가나 갖추고 있는 당연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새삼 김지민 작가는 작품에 대해 참 진지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Prototype Temple : At Night> 전시는 이런 진지함과 오랜 영국 유학시절 갖게 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침묵'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침묵의 회화> 연작은 크게 먹과 금박으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먹은 수많은 표현기법을 구사할 수 있는 재료인데 김지민 작가는 그 중에서 발묵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작품들은 캔버스라는 서양회화 매체에 동아시아의 발묵법을 사용한 융합 표현으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을 주며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작품 스스로 아우라를 뿜어내는 듯하게 설치한 조명도 여기에 한 몫했다.
먹이 서서히 번지게끔 하는 발묵법은 본래 습윤한 중국 강남지방의 산수, 대기를 그릴 때 주로 사용하는 필묵법이다. 발묵법을 사용한 회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그리고자 한 형상이 명확하지 않고 어디로 스며들게 할지 조절하기 어려운 화법이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형상과 먹의 옅고 짙은 색만으로 저 부분은 산이구나, 저 부분은 안개구나 라는 식으로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침묵의 회화> 연작은 종이나 비단과는 달리 캔버스에 발묵법을 사용해서인지 비교적 형상이 또렷하다. 그래서 먹색의 변화만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달로 보이는 원형, 산으로 보이는 삼각형들을 균형감있게 배치하여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게 하고, 화면을 관통하는 금박을 입힘으로써 조형성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보는 입장에서도 여러 상상을 하며 작품을 오래 볼 수 있었다.
대개 갤러리 전시를 보러가면 아무래도 작가를 프로모션하려는 전시의 목적상 박물관, 미술관처럼 전시 자체에 대한 느낌이 무의미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번 김지민 작가의 전시는 '침묵'이라는 주제, 동일한 표현기법과 연작으로 구성한 작품들,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전시실 중앙에 배치한 샹들리에 덕분에 전시 자체를 즐기기에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재료를 찾거나, 기존의 재료 혹은 매체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충격을 주는 데 집중하는 요즘 같은 때에 차분하게 정체성을 고민하고, 고전을 중시하며 먹을 조형언어의 주요 재료로 삼으려는 신진 작가를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가운 전시였다.
2021. 11. 28



침묵은 조용한 성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 무언가를 골똘히 사색할 때 나오는 모습, 야만적인 상대 혹은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려는 행동에서 주로 나온다. 상대에 대한 배려일 때도 있다. 이처럼 침묵은 긍정적인 의미로 진중한 모습일 때가 많지만, 때로는 비위나 부정을 애써 외면할 때 사용되는 비겁한 행동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침묵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작년에 우연히 김지민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작가의 웹사이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진중한 분위기와 세련된 조형성(같은 의미이지만 우아함이라기보다는 엘레강스라고 표현해야 더 부합할 것 같은) 때문에 틈틈이 즐겨찾기해놓고 구경하곤 했다.
지난 10월에 SNS를 통해 작가에게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는 초대를 받게 되었다. 당시에 축하할겸 오픈하는 주말에 가려고 했지만 사정이 생겨서 계속 못갔다. 미안한 마음에 전시기간이 이번 주말까지이니(~11/28) 더 늦기 전에 다녀오려는 생각으로 어제 연차를 내고 전시에 다녀왔다.
그동안 작가가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어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작업과 고민에 대한 해답을 책(특히 고전)에서 찾으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업과 세상에 대한 고민은 어느 작가나 갖추고 있는 당연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새삼 김지민 작가는 작품에 대해 참 진지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Prototype Temple : At Night> 전시는 이런 진지함과 오랜 영국 유학시절 갖게 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침묵'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침묵의 회화> 연작은 크게 먹과 금박으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먹은 수많은 표현기법을 구사할 수 있는 재료인데 김지민 작가는 그 중에서 발묵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작품들은 캔버스라는 서양회화 매체에 동아시아의 발묵법을 사용한 융합 표현으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을 주며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작품 스스로 아우라를 뿜어내는 듯하게 설치한 조명도 여기에 한 몫했다.
먹이 서서히 번지게끔 하는 발묵법은 본래 습윤한 중국 강남지방의 산수, 대기를 그릴 때 주로 사용하는 필묵법이다. 발묵법을 사용한 회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그리고자 한 형상이 명확하지 않고 어디로 스며들게 할지 조절하기 어려운 화법이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형상과 먹의 옅고 짙은 색만으로 저 부분은 산이구나, 저 부분은 안개구나 라는 식으로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침묵의 회화> 연작은 종이나 비단과는 달리 캔버스에 발묵법을 사용해서인지 비교적 형상이 또렷하다. 그래서 먹색의 변화만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달로 보이는 원형, 산으로 보이는 삼각형들을 균형감있게 배치하여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게 하고, 화면을 관통하는 금박을 입힘으로써 조형성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보는 입장에서도 여러 상상을 하며 작품을 오래 볼 수 있었다.
대개 갤러리 전시를 보러가면 아무래도 작가를 프로모션하려는 전시의 목적상 박물관, 미술관처럼 전시 자체에 대한 느낌이 무의미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번 김지민 작가의 전시는 '침묵'이라는 주제, 동일한 표현기법과 연작으로 구성한 작품들,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전시실 중앙에 배치한 샹들리에 덕분에 전시 자체를 즐기기에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재료를 찾거나, 기존의 재료 혹은 매체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충격을 주는 데 집중하는 요즘 같은 때에 차분하게 정체성을 고민하고, 고전을 중시하며 먹을 조형언어의 주요 재료로 삼으려는 신진 작가를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가운 전시였다.
2021.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