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해석의 풍성함을 즐기다.

2023-02-10
조회수 315


안녕하세요.
이장훈입니다.

지난 주말에 <더 글로리>를 봤습니다. 설 연휴 기간부터 조금씩 나눠봤는데 마지막 8화는 안보고 아끼려다고 결국 다 봤습니다. 파트 2까지 모두 공개되면 그때 보려 했으나 유튜브의 각종 스포일러를 피하기 어려울 듯했고 무엇보다 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 안보면 때를 놓치고 영영 안보게 될 수도 있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껏 한 번도 못본 영화가 무려 <매트릭스>, <해리포터> 시리즈,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입니다. ㅎㅎ 암튼 <더 글로리>는 세간의 인기에 걸맞게 엄청 재밌게 봤습니다. 최고의 드라마로 간직하고 있는 <비밀의 숲> 감독의 연출작이어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라구요. 김은숙 작가의 시나리오인 점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좋았고 말이죠.

파트 2가 공개되는 3월까지 기다릴 수 없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가해자들이 어떤 천벌을 받게 될지 등이 궁금해서 유튜버들이 해석 및 예상한 영상들을 연이어 봤습니다. 역시나 파트 2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쏟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해석들이 재미를 더해줬습니다.

간혹 미술사 강의를 하다 보면 작품 해석에 불신을 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견 그분들의 불신이 이해는 갑니다. 옛 일이므로 분석이 틀렸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거든요. 그러나 이는 ‘해석’의 정의를 잘못 내린 데에서 온 불필요한 자세입니다. 해석은 정답을 맞추는 게 아니거든요.

작품의 해석과 달리 실제 작가가 그런 의도로 그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해석은 때로는 작가 스스로도 미처 몰랐던 부분을 짚어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해석과 작가의 의도는 다른 범주의 이야기입니다. 해석은 해석할 당시의 사회, 문화적 배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해석은 ‘시대의 눈’이라 할 수 있죠. 작가는 전혀 그런 의도로 그린 게 아닌데 평화의 상징으로 읽힐 때도 있고,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그림으로 대우받을 때도 있습니다. 작가가 하늘에서 이를 보고 있다면, “쟤네들 재밌네 ㅋㅋ”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해석은 작품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자 작품을 프레임 삼아 바라 본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숨겨놓은 상징을 찾는 일과는 조금 다르죠.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해석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최대한 사실에 부합하고, 해석에 이르는 과정은 합리적인 방법론을 취해야 합니다. 좋은 해석을 하기 위해 최대한 상징을 찾고, 작가에 대한 기록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는 겁니다. 작가가 살아 있다면 인터뷰도 이를 목적으로 하는 거죠.

다만 저는 간혹 현재 활동 중인 작가의 평론을 쓸 때는 작가의 의도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참고는 하되, 작품을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당연히 미술사적인 관점이 주가 되죠. 작가의 의도에 따라 글을 쓰는 건 언론의 영역이지, 해석의 영역은 아니라고 봅니다. 창작할 때의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해석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문득 다양한 해석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색다른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작품과 작가가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 글로리>를 보고 별 생각 다했네라고 피식 웃긴 했지만, 어쨌든 이 작품을 둘러싼 해석의 풍성함이 즐거움을 더해주었고 다각도로 바라보게 해줬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


2023. 02. 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