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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오아(김성은) 개인전 / 아트 스페이스 영(2022.02.0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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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김성은) 개인전 / 아트 스페이스 영(2022.02.03-02.11)


이번에 평론을 썼던 오아(김성은) 작가의 개인전을 개막한 날, 오랜만에 삼청동에 가서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저는 평론의 목적이 장르 불문하고 글의 대상을 통해 무언가를 긍정적으로 이끌어줘야 한다는 점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될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이 작품이 실용적으로 일상에 도움이 되겠다고 여겨질 때도 있을겁니다. 그 무엇이 되었건 이 작품이 지닌 특장을 찾아내어 “이왕이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이번 오아(김성은)의 전시는 전근대 초상화가 기억을 넘어 숭배의 대상으로써 기능했다면 현재 초상화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해줍니다(원래는 초상화도 포함되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빠져서 인물화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단순히 트렌드를 좇았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초상화(혹은 인물화)는 무엇을 말해야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통해 미루어 생각하게 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덤으로 동양회화 기법을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기 위한 작가의 치열한 노력은 보는 즐거움도 챙겨주는 전시입니다. 역시 갤러리의 하얀 공간 속 수묵과 진채의 조합은 전시보는 맛을 더해주네요. ㅎㅎ

저는 그동안 전공 특성상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명품, 혹은 역사적으로 기념해야만 하는 사료 위주의 전시들을 기획했고, 주로 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현재 활동하는 작가의 평론을 쓰면서 새로운 배움의 영역을 알게된 것 같아 머리를 움켜쥐면서도 왠지 재밌다는 생각을 계속 갖게 되어 좋았습니다.

전시는 2월 11일(금)까지 했습니다. 4월에도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니 조만간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아래 글은 이번에 쓴 평론 전문입니다 🙂


달이 차오르는 것을 보며

이장훈(큐레이터)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은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풀이하면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명확하고 개념이 명쾌한 것을 추구하는 선명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선명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것, 미완성된 것으로 여긴다. 대학에서 전공범위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인터넷 상에서 본인만 사용 가능한 아이디와 인증서를 부여 받아야 나를 증명할 수 있으며, 심지어 주관적인 취향도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구분해버린다.

불교와 노장사상이 정신사적 근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예술은 치밀해야 할 때는 고도로 치밀하지만 때로는 함부로 단정짓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달을 그릴 때 지시적으로 그리지 않고 거꾸로 달무리를 칠함으로써 은연 중에 달을 보여준다. “이것은 달이다”라며 달의 형태를 단언하지 않는 방식이다. 달 자체는 여백으로 남아있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달의 형태를 다르게 느끼게 해준다. 달은 응당 노란색이고, 원의 형태를 갖고 있다며 직접적으로 그려서 보여주는 서양미술과 다른 접근방식이다. 물론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일 뿐 어느 것이 옳고, 우월한지를 구분할 수는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 달을 드러내는 방식이 불완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달의 실제 형태를 하나의 언어-조형언어도 포함해서-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어쩌면 자연에 대해 더욱 겸손한 회화적 접근 태도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다가 동양회화를 전공하여 처음 세상에 내보이는 김성은의 작품에 대한 이 글에 적용하고자 한다. 미술가에 대한 첫번째 글이 지닌 의무 혹은 더욱 신중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함부로 단정짓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김성은이 화가로서 앞으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해나간다면 작품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리고 고민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점차 자신만의 양식을 갖추어가게 되고 그의 작품성, 경향, 의도 등을 발견해주는 훌륭한 글 역시 함께 수반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큐레이터의 역할보다는 첫번째 감상자로서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 대해 소개하겠다.


1. 치밀하여 선명하고, 선명하여 찬란해지는

이번 전시에서 소개할 김성은의 작품들은 인물화의 형식을 갖고 있다. 대부분 진채로 그린 작품이고, 수묵담채로 그린 작품도 한 점 포함되어있다. 김성은이 진채 기법을 자신의 작품 제작에 주로 사용하기 전 마지막 수묵담채화라고 한 <부산에 가면>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에코브릿지의 싱글 앨범에 수록된 최백호의 노래 제목을 주제로 삼아 그린 인물화다.

이 작품은 김성은이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不寫, 便是他人)'는 우리나라 초상화의 전통을 충실하게 학습한 것을 보여준다. 화면 오른쪽에 세월의 흔적을 가득 담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최백호를 그렸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음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오롯이 최백호의 표정을 보고 그를 통해 노래 가사처럼 부산으로 상징되는 추억, 첫사랑에 대한 회환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김성은은 이 작품을 치밀한 얼굴 묘사와 달리 상반신과 앞에 배치한 마이크의 묘사는 빠른 붓놀림으로 칠하듯 그렸다. 이로 미루어볼 때 김성은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가수의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라 세월이 켜켜이 쌓일 때만 느낄 수 있는 옛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이크 주변의 배경을 마치 스스로 빛을 내듯 보다 하얗게 처리함으로써 대상이 부르고 있는 옛 추억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2. 잃어버린 지난 날

<부산에 가면>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정서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안타까움에 가깝다. 김성은은 이러한 감정을 숨기듯 보여준다. 인물화의 형식을 하고 있는만큼 작품을 볼 때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인물의 표정이다. 인간의 표정은 인간의 칠정(七情)인 희(喜) · 노(怒) · 애(哀) · 구(懼) · 애(愛) · 오(惡) · 욕(欲)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그릇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간단하게 7가지로 구분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김성은은 인간이 지닌 깊은 감정의 호수를 주변의 기물을 통해 암시하였다. 강인하고 곧추선 자세의 여자에게 처량한 자세로 매달려 있는 남자의 상태를 그린 <stand by my woman>. 환희에 찬 표정으로 뛰어오른 여자 밑에 떨궈진 현대인의 각종 필수품들-맥북, 스타벅스 커피, 부러진 포크, 그리고 핸드백-을 그린 <Take on me>. 

작품의 주인공은 환희에 차 있지만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생은 이율배반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 속 저 여인들은 과연 환희에 찬 것일까. 정말 그간 구속되었던 것에서 해방된 게 맞는가. 다른 상징들을 통해 완전한 탈출, 해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오히려 슬픔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은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변치 않는 본질, 진리, 이상은 있다는 것을 화면 한 쪽에 배치한 초승달로 일관되게 표현하였다.


3. 노련한 주제 의식

나에게 이 전시의 대표작을 선정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나는 <Lea>를 선택할 것이다. 앞서 설명한 세월이 담긴 표정을 핍진하게 그려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작품과 환희에 찬 표정과 대비되는 기물을 통해 이면의 감정을 보여주는 작품의 특장을 고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Lea>는 1986년 미국의 그룹 Toto가 발표한 노래이다. 일관되게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연가(戀歌)이지만 가사를 음미해보면 대상이 된 여인의 생각은 전혀 알 수 없다. 오로지 화자의 바람만 담겨 있을 뿐이다.


"난 오직 당신에게만 내 사랑을 주었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 곁에서 당신만을 원하길 바라나요."

"여전히 내가 당신을 원하길 바라나요."


김성은은 이 정도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당연히 여길만한 미인상을 화면 중앙에 그려넣었다.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눈망울부터 유려한 피부결까지 화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표현하였다. 그러나 앞서 본 작품들과 달리 이 여인은 표정을 상실하였다. 표정에서 그 어느 것도 감지해낼 수 없다. 어쩌면 김성은은 끝없이 갈망하고 갈망한 만큼의 보상을 요구하는 노래 속 화자에 의한 여인의 갑갑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갑갑함은 여인의 감춰진 표정과 유리병 속에 갇힌 초승달, 테이블에 박힌 도끼를 통해서도 전해지며, 주인공을 감싸고 있는 아주 짙은 초록색 벽에서 완성되었다. 시계를 물고가는 파랑새는 마치 여인에게 시간이 흐르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아 무기력함, 슬픔에 빠지게 해주었다.


4. 감상을 마치며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김성은이 화가로서 작품을 구성하는 방식과 표현력이 노련해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때로는 인물의 표정 그 자체에 충실하고, 때로는 상징을 통한 은유로써 우리에게 다양한 감정을 펼쳐 놓았다. 전시를 보는 동안 서로 상반된 감정들의 간극은 우리에게 수 많은 상념을 일으키게 해줄 것이다.

김성은은 이번 전시의 키워드로 '초승달'을 말했다. 희망과 거울, 추억, 또 다른 자아로써 초승달이 작품들을 관통한다고 밝혔다. 초승달은 북반구에서 달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New Moon이며, 그믐달인 Old Moon을 향해 간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이번 전시가 김성은의 New Moon이 되기를 바라며 나의 이 글이 작품 세계를 어렴풋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달무리라도 되기를 바란다.


  • 오아(김성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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