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 작가의 ‘우의어물(寓意於物)’한 작품들에 대하여
이장훈 큐레이터(미술사)
화론에서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는 수 많은 개념 중에 ‘우의어물(寓意於物)’이 있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 혹은 기법에 마음을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이것들을 수단으로 삼아 본질, 뜻을 그려야 한다는 의미다.
임우 작가의 작품들은 대체로 붓의 빠른 운용에 기대어 그린 수묵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세하게 살펴보면 치밀한 구성과 계획 하에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했기 때문에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발묵법을 기반으로 운용되었는데 먹 뿐만 아니라 여러 재료를 발묵 효과를 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화면 위에 삼합지를 올려두고 그 위에 먹이나 호분을 흠뻑 적셔 아래 놓인 화면에 스며들게 하는 일종의 배채법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혹은 콜라주로 작품을 제작할 때조차 마스킹 테이프를 황토색에 적신 후에 붙이는 등 그의 제작 기법은 발묵 효과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임우 작가는 이처럼 다양한 실험과 기법들을 그 자체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 ‘생명’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는 ‘우의어물’의 의미와 이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아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임우, <Bamboo Forest A>
임우, <Bamboo Forest B>
중국 송대의 소식(蘇軾, 1037-1101)은 자연의 본성과 기운을 강조하는 ‘상리(常理)’를 말하며 자연은 일정한 형태가 없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理]이 있으니 이를 표현해야 한다고 하였다. 자연을 그릴 때는 형태 표현에 머무르지 말고 본질을 포착하여 그려야만 생명력이 넘치게 되고 이로 인해 정감어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감상자는 이러한 그림을 통해 비로소 마음을 풀어놓고 자유로운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
상리는 사의(寫意)의 의(意)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로서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 회화제작 태도다. 따라서 대나무는 반드시 초록색일 필요가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대나무의 본질만 포착할 수 있다면 대나무가 ‘대나무스럽게’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신 이렇게 그릴 때 중요한 점은 대나무숲의 전체를 깊이 관조한 후에 이를 마음 속에서 구체화시킨 것을 그려냈는가, 즉 심수상응(心手相應)의 경지에 올랐는지 여부다. 이렇게 그려야만 사생의 극치를 넘어 비로소 사의(寫意)의 경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우 작가의 <Bamboo Forest A>와 <Bamboo Forest B>는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며 가장 사의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대상의 고유색과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먹색의 대나무잎과 하얀 호분으로 그린 대나무잎의 변화를 능숙하게 가함으로써 화면에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으로만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대나무숲의 깊은 곳을 진한 먹색을 칠함으로써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색의 대비되는 효과와 과감한 생략만으로 감상자의 시선과 상상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세밀한 대나무 그림보다 더욱 정치하고 본질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우, <The Good Earth>
임우, <The Galaxy>
임우, <Pandemic>
<The Good Earth>, <The Galaxy>, <Pandemic>은 조형언어의 측면에서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색의 대비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희망과 생명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The Good Earth>는 대지에 내리쬐는 햇빛을 강조했고, <The Galaxy>는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었으며, <Pandemic>는 암흑기로 기억될 코로나19 확산의 시대 속에서도 꺼트리지 않고 지켜나가야 할 생명력을 노래했다.
<The Good Earth>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대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대저색 분채를 입힌 마스킹 테이프를 화면 가득 붙여 땅을 표현하고 그 위에 투명한 셀룰러 테이프를 굴곡지게끔 붙여 마치 봄날의 햇빛이 가득 내리쬐며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대지로 완성하였다. 회화 재료가 아닌 물건을 캔버스에 붙였다는 점에서 콜라주(collage)로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콜라주의 시원이 되었던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콜라주는 이질적인 재료들의 만남을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부조리함 혹은 이질적인 감정을 유도하는 것인데 반해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창시한 파피에 콜레 기법은 순수한 미적 구성을 목표로 했으며 이 작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대저색 분채를 다양하게 입힌 마스킹 테이프로 땅의 바탕을 마련하고, 투명한 셀룰러 테이프로 햇빛의 반사를 표현한 것은 임우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감상자에게 전해지므로 일종의 파피에 콜레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임우, <Reed A>
임우, <Reed B>
<Reed A>와 <Reed B>는 <The Good Earth>, <The Galaxy>처럼 콜라주를 활용했다. 그러나 두 작품이 햇빛, 별빛처럼 대상이 지닌 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보는 사람에게 작가의 의도 그대로 대상을 전달해 준다면 <Reed> 시리즈는 반대로 대상의 현형(現形)을 감상자에게 맡겼다. <Reed A>의 경우 대저색 분채를 배경에 깔고 갈대를 연한 대저색을 입힌 테이프로 가늘게 잘라 붙였다. 갈대의 고유색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란색이 아닌 하얀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화면 가까이 가면 무엇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화면 전체를 보면 감상자의 눈에서 석양이 지는 갈대숲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짙은 녹색으로 점철된 화면의 하단은 갈대숲의 늪 혹은 가보기 힘든 갈대숲의 한 가운데로 시선을 이끌어준다. <Reed B> 역시 동일한 화법으로 한밤중에 갈대숲에 앉아 저 너머의 도시를 바라보는 듯하다. 그래서 <The Good Earth>와 <The Galaxy>는 직관적이고 힘이 넘치며, <Reed> 시리즈는 은유적이고 섬세하다.
임우, <Organism A>
임우, <Organism B>
울산 바위산을 그린 <Organism A>와 <Organism B>는 실경산수화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Organism A>는 부드러운 흙 위에 솟아오른 바위산의 기세를 먹을 깨트리듯 힘차게 긋고[파묵법] 그 위를 먹을 여러 번 칠함[적묵법]으로써 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서예를 배운 작가의 능숙한 필묵법이 잘 드러난다.
발묵법은 화면에 먹이 스며들도록 하는 방식이다. 화폭의 재질을 인정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도록 인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파묵법은 화폭의 재질에 대항하여 먹을 깨트리듯이 힘있게 밀고 나가는 방식이다. 울산 바위산을 그린 이 작품은 파묵법과 적묵법만으로도 작가가 바위산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과 산의 형태를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작가의 필력을 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부분적으로는 부벽준과 발묵법을 더함으로써 바위의 날카로운 단면과 입체감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였다.
<Organism B>는 <Organism A>보다 더 멀리 떨어져서 바라본 울산 바위산을 그린 작품이다. 하얀 호분과 여백으로 바위산의 표면을 표현한 <Organism A>와 달리 적묵법으로 산의 전반을 칠한 후 황토빛의 바탕을 간간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산의 생명력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산의 하단은 마치 조광효과를 쓰듯 하얗게 드러냄으로써 아득하고 높은 산의 기세를 은유하였다. 전반적으로 황토빛이 화면 전반을 감싼 가운데 진한 먹으로만 산을 그렸기 때문에 마치 봄기운이 완연한 울산 바위산처럼 보인다. 임우 작가는 갈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산의 얼굴을 먹의 오색(五色)과 히말라야 소금을 섞음으로써 더욱 변화무쌍하게 번지는 효과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표현하였다. 그리고 어느 기법에 무게를 더 두었는가에 따라 풍경과 산의 얼굴이 달라지는 기운생동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즉 실경산수이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대상을 잘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울산 바위산을 바라봤을 때의 감정을 그린 일종의 관념산수로도 볼 수 있다.
임우 작가는 발묵법과 파묵법, 그리고 적묵법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자신의 심상을 화폭에 온전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필묵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주었다. 더하여 주제의식에 맞는 먹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호분부터 셀룰러 테이프까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는 실험성도 과감하게 화폭에 펼쳤다. 임우 작가는 필묵을 기본으로 한 수묵화가이지만 한편으로는 화폭을 전시공간으로 삼은 설치작가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임우 작가는 필묵을 중심으로 하되 셀룰러 테이프 등 각종 재료에 뜻을 실어 화폭에 펼칠 줄 아는 작가로 여겨진다. 따라서 재료 자체에 마음을 두어 재치와 기예 그 자체를 돋보이도록 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펼친다는 의미인 ‘창신(暢神)’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임우 작가의 ‘우의어물(寓意於物)’한 작품들에 대하여
이장훈 큐레이터(미술사)
화론에서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는 수 많은 개념 중에 ‘우의어물(寓意於物)’이 있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 혹은 기법에 마음을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이것들을 수단으로 삼아 본질, 뜻을 그려야 한다는 의미다.
임우 작가의 작품들은 대체로 붓의 빠른 운용에 기대어 그린 수묵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세하게 살펴보면 치밀한 구성과 계획 하에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했기 때문에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발묵법을 기반으로 운용되었는데 먹 뿐만 아니라 여러 재료를 발묵 효과를 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화면 위에 삼합지를 올려두고 그 위에 먹이나 호분을 흠뻑 적셔 아래 놓인 화면에 스며들게 하는 일종의 배채법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혹은 콜라주로 작품을 제작할 때조차 마스킹 테이프를 황토색에 적신 후에 붙이는 등 그의 제작 기법은 발묵 효과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임우 작가는 이처럼 다양한 실험과 기법들을 그 자체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 ‘생명’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는 ‘우의어물’의 의미와 이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아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임우, <Bamboo Forest A>
임우, <Bamboo Forest B>
중국 송대의 소식(蘇軾, 1037-1101)은 자연의 본성과 기운을 강조하는 ‘상리(常理)’를 말하며 자연은 일정한 형태가 없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理]이 있으니 이를 표현해야 한다고 하였다. 자연을 그릴 때는 형태 표현에 머무르지 말고 본질을 포착하여 그려야만 생명력이 넘치게 되고 이로 인해 정감어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감상자는 이러한 그림을 통해 비로소 마음을 풀어놓고 자유로운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
상리는 사의(寫意)의 의(意)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로서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 회화제작 태도다. 따라서 대나무는 반드시 초록색일 필요가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대나무의 본질만 포착할 수 있다면 대나무가 ‘대나무스럽게’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신 이렇게 그릴 때 중요한 점은 대나무숲의 전체를 깊이 관조한 후에 이를 마음 속에서 구체화시킨 것을 그려냈는가, 즉 심수상응(心手相應)의 경지에 올랐는지 여부다. 이렇게 그려야만 사생의 극치를 넘어 비로소 사의(寫意)의 경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우 작가의 <Bamboo Forest A>와 <Bamboo Forest B>는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며 가장 사의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대상의 고유색과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먹색의 대나무잎과 하얀 호분으로 그린 대나무잎의 변화를 능숙하게 가함으로써 화면에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으로만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대나무숲의 깊은 곳을 진한 먹색을 칠함으로써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색의 대비되는 효과와 과감한 생략만으로 감상자의 시선과 상상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세밀한 대나무 그림보다 더욱 정치하고 본질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우, <The Good Earth>
임우, <The Galaxy>
임우, <Pandemic>
<The Good Earth>, <The Galaxy>, <Pandemic>은 조형언어의 측면에서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색의 대비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희망과 생명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The Good Earth>는 대지에 내리쬐는 햇빛을 강조했고, <The Galaxy>는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었으며, <Pandemic>는 암흑기로 기억될 코로나19 확산의 시대 속에서도 꺼트리지 않고 지켜나가야 할 생명력을 노래했다.
<The Good Earth>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대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대저색 분채를 입힌 마스킹 테이프를 화면 가득 붙여 땅을 표현하고 그 위에 투명한 셀룰러 테이프를 굴곡지게끔 붙여 마치 봄날의 햇빛이 가득 내리쬐며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대지로 완성하였다. 회화 재료가 아닌 물건을 캔버스에 붙였다는 점에서 콜라주(collage)로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콜라주의 시원이 되었던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콜라주는 이질적인 재료들의 만남을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부조리함 혹은 이질적인 감정을 유도하는 것인데 반해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창시한 파피에 콜레 기법은 순수한 미적 구성을 목표로 했으며 이 작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대저색 분채를 다양하게 입힌 마스킹 테이프로 땅의 바탕을 마련하고, 투명한 셀룰러 테이프로 햇빛의 반사를 표현한 것은 임우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감상자에게 전해지므로 일종의 파피에 콜레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임우, <Reed A>
임우, <Reed B>
<Reed A>와 <Reed B>는 <The Good Earth>, <The Galaxy>처럼 콜라주를 활용했다. 그러나 두 작품이 햇빛, 별빛처럼 대상이 지닌 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보는 사람에게 작가의 의도 그대로 대상을 전달해 준다면 <Reed> 시리즈는 반대로 대상의 현형(現形)을 감상자에게 맡겼다. <Reed A>의 경우 대저색 분채를 배경에 깔고 갈대를 연한 대저색을 입힌 테이프로 가늘게 잘라 붙였다. 갈대의 고유색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란색이 아닌 하얀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화면 가까이 가면 무엇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화면 전체를 보면 감상자의 눈에서 석양이 지는 갈대숲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짙은 녹색으로 점철된 화면의 하단은 갈대숲의 늪 혹은 가보기 힘든 갈대숲의 한 가운데로 시선을 이끌어준다. <Reed B> 역시 동일한 화법으로 한밤중에 갈대숲에 앉아 저 너머의 도시를 바라보는 듯하다. 그래서 <The Good Earth>와 <The Galaxy>는 직관적이고 힘이 넘치며, <Reed> 시리즈는 은유적이고 섬세하다.
임우, <Organism A>
임우, <Organism B>
울산 바위산을 그린 <Organism A>와 <Organism B>는 실경산수화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Organism A>는 부드러운 흙 위에 솟아오른 바위산의 기세를 먹을 깨트리듯 힘차게 긋고[파묵법] 그 위를 먹을 여러 번 칠함[적묵법]으로써 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서예를 배운 작가의 능숙한 필묵법이 잘 드러난다.
발묵법은 화면에 먹이 스며들도록 하는 방식이다. 화폭의 재질을 인정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도록 인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파묵법은 화폭의 재질에 대항하여 먹을 깨트리듯이 힘있게 밀고 나가는 방식이다. 울산 바위산을 그린 이 작품은 파묵법과 적묵법만으로도 작가가 바위산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과 산의 형태를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작가의 필력을 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부분적으로는 부벽준과 발묵법을 더함으로써 바위의 날카로운 단면과 입체감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였다.
<Organism B>는 <Organism A>보다 더 멀리 떨어져서 바라본 울산 바위산을 그린 작품이다. 하얀 호분과 여백으로 바위산의 표면을 표현한 <Organism A>와 달리 적묵법으로 산의 전반을 칠한 후 황토빛의 바탕을 간간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산의 생명력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산의 하단은 마치 조광효과를 쓰듯 하얗게 드러냄으로써 아득하고 높은 산의 기세를 은유하였다. 전반적으로 황토빛이 화면 전반을 감싼 가운데 진한 먹으로만 산을 그렸기 때문에 마치 봄기운이 완연한 울산 바위산처럼 보인다. 임우 작가는 갈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산의 얼굴을 먹의 오색(五色)과 히말라야 소금을 섞음으로써 더욱 변화무쌍하게 번지는 효과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표현하였다. 그리고 어느 기법에 무게를 더 두었는가에 따라 풍경과 산의 얼굴이 달라지는 기운생동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즉 실경산수이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대상을 잘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울산 바위산을 바라봤을 때의 감정을 그린 일종의 관념산수로도 볼 수 있다.
임우 작가는 발묵법과 파묵법, 그리고 적묵법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자신의 심상을 화폭에 온전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필묵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주었다. 더하여 주제의식에 맞는 먹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호분부터 셀룰러 테이프까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는 실험성도 과감하게 화폭에 펼쳤다. 임우 작가는 필묵을 기본으로 한 수묵화가이지만 한편으로는 화폭을 전시공간으로 삼은 설치작가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임우 작가는 필묵을 중심으로 하되 셀룰러 테이프 등 각종 재료에 뜻을 실어 화폭에 펼칠 줄 아는 작가로 여겨진다. 따라서 재료 자체에 마음을 두어 재치와 기예 그 자체를 돋보이도록 하는 게 아니라 정신을 펼친다는 의미인 ‘창신(暢神)’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