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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근에 산 책들(2020. 03)

2020. 4. 22.

 

 

 

이제서야 연구되기 시작하는 근대 공예사에 관한 책이다.

어떤 도자기는 미술이고, 어떤 도자기는 제품이라고 해야하나?

 

예전에 강의할 때 도자기에 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도자기는 당시의 '락앤락'인 경우가 많다.

요즘 우리가 냉장고에서 반찬을 담아놓을 때 쓰는

'락앤락'에 대해 일기, 하다 못해 그에 관한 메모조차 안남기지 않나.

그만큼 생활용기라는 얘기이다.

 

전통 도자, 공예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한다.

그래서 작가를 알 수 없는 장르에 대한 연구가 어려운거다라고 설명한 바가 있다.

 

갑자기 강의할 때 생각이 나네.

강의할 때는 몸은 지쳐도 보람되고 좋았는데 조금 아쉽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면서 아무 데나 펼쳤을 때 '이 책이다'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은 현재 우리 도시에서 모든 것을 한 곳에 모아놓은,

이를테면 멀티플렉스, 대형 상가와 같은 '점'이 아니라

상업 시설들이 '선'으로 이어져 자연스레 산책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내용을 보자마자 사게 되었다.

저자가 건축을 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 인문학적으로 건축을 바라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글에 대해

칭찬과 충고를 하는 내용을 보고 그 자리에서 사온 책.

 

 

 

 

요즘 아카이브에 관심이 많다.

 

현재 일하고 있는 문화역서울284라는 곳은

미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 아니라

사진 등의 아카이브 자료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런 아카이브를 관리하고, 해석을 더해

궁극적으로 '라키비움(Larchiveum)', 즉 도서관(Library) + 기록관(Archives) + 박물관(Museum)의 개념으로

만들어가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아카이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예전부터 아키비스트의 일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와서

아카이브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으면

일단 다 읽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본래 프랑스 원서인데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 살지, 말지 살짝 고민했다.

 

그러다가...

 

"근본적으로 아카이브는 추상적 명제의 연구, 이론 연구라는 쉬운 길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역사가의 소매를 붙드는 곳이다."(p. 119)

 

이 문장을 보고 사기로 결정했다.

현장 경험과 사료, 작품 분석을 등한시하는

미술사, 사학 연구자들에 대해 일침을 놓는 듯했다.

(이런 학자들과 학생들은 은근히 많다)

 

나는 다행히 학예연구사로 일을 해와서

실물(작품) 조사, 분석, 진위 감정 등에 대해 경험을 쌓을 수 있었지만,

가끔은 작품 분석없이 예술철학을 주로 다루는 미학과가 부러울 때도 있다.

 

한 땀, 한 땀 작품들을 조사하고, 분석해서 논문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꽤 지루하고 고단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눈에 잘 띄는 곳에 적어두고,

지칠 때마다 되새겨야겠다.

 

 

 

 

이 책이 간행되기 전에

출판사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우선 진행한다는 것을 접하고

전설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책이기에

망설임없이 펀딩에 참여했다.

 

업무지침서가 되어주리라 기대했다.

일을 하면서 관성에 빠져 수동적으로 하게 될 때

전시기획 일에 철학을 다시 부여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구입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사무실에 두고 틈틈이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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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등급이 떨어졌다.

2019. 10. 14.

최근 몇 개월간 정신없이 바뻐서 책을 못샀더니 고새 등급이 떨어졌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등급에 따른 혜택이 크지 않지만,

나에게는 내가 그간 책을 많이 읽었구나에 대한 기준이 되어준다.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은 3개월간 30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유지된다.

즉, 한 달에 10만원씩 책을 구매해야 된다는 말이다.

대개 미술사 전공서가 2~3만원이고,

일반 교양서가 1~2만원이니

한 달에 4, 5권씩은 사야된다는건데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바탕 정신없는 나날이 가시고 오랜만에 한가로운 오늘, 

그동안 사려고 했던 책 리스트들을 살펴봤다.

쟁여두기만 하고 아직 못산 책들이 꽤 많다.

 

이따가 한국미술사 강의하러 광화문에 나가는데 

간 김에 몇 권 사와야겠다.

이동진 평론가가 그간의 평론을 모은 책을 출간했다는데 

이 책부터 사볼까.

 

예전에 이동진 평론가가 기자였던 시절(벌써 10여 년이나 흘렀다),

어머니가 글 잘 쓴다며 한 번 읽어보라고

기사를 프린트해서 주신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알았는데 글 잘 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를 본인의 생각으로 

유려하게 이끈다.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여기까지이긴 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우선 처음 접했을 때 감정에 와닿는게 있어야 하고,

책을 덮은 이후에도 문장을 곱씹어가며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관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글은 아직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 평론가를 높이 여기는 이유는

글의 목적에 충실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즉,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어준다.

이 점만으로도 그의 글은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무슨 책을 살까?

 

댓글 2
  • 궁금해서 들어가보니 저는 플래티넘이군요. 음핫핫핫~ 그런데 백김치 돈까스는 안팔더라구요. 플래티넘이면 뭐하겠어요. 백김치 돈까스도 못먹어보고...

    • 예전에는 플래티넘 혜택이 참 좋았는데 요즘은 참 그냥저냥이네요. ㅎㅎ 그래도 계속 유지하시길. 백김치 돈까스도 그렇고 만두국도 메뉴에서 사라져서 아쉽습니다. ㅋ

희망을 떠올리는 날

2019. 8. 14.

1. 우산을 항상 들고다녀야 했던 날.

비에 젖으면서 색감이 진해지는 광화문, 정동을 좋아한다.

 

어떤 일을 겪어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장소 하나 쯤은 있어야한다는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까칠하지만 배려심 깊고,

가끔 잠수를 타서 동생들을 걱정시키지만 만나면 항상 편하고,

공부를 중단한 상태이지만 예전에 썼던 논문을 보면 아직도 감탄하게 만들고,

지금까지 만난 미술사 전공자들 중에 인문학적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그런 형이다.

지방으로 가신 이후 같이 술을 마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간다.

 

바쁜게 끝나면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요즘 설레게 만드는 논문 주제도 빨리 쓰고,

관련 프로젝트도 하고 싶다.

 

원래 나중에 뭐뭐 하고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가장 좋긴 하다. ㅋ

 

2. 돌아오는 길에 영풍문고 앞에서 판매 중인

잡지 『빅 이슈』를 샀다.

『빅 이슈』가 한국에서 출간한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잡지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기를 꿈꾸는 노숙인이 직접 판매를 하고

잡지 판매금 5,000원 중 2,500원은 판매한 노숙인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처음 『빅 이슈』를 접했을 때 아주 나이스하다고 느꼈다.

 

흔히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왜 거리를 떠도느냐.

심하게 표현해서 “사지가 멀쩡한데 왜 저러고 사느냐”는

인식이 기본 전제로 담겨있다.

 

이런 생각은 상당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타인을 인상만으로 재단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핏 생각해보아도

노숙인은 사회 시스템의 가장 외곽에 위치해있을 것 같다.

어디가 아픈 사람도 아니고,

노약자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복지 혜택 순위에서 차순으로 항상 밀릴게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한 기부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약간의 경제적인 도움과 함께 살짝 계기를 만들어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

이 희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하면 잘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은

스스로 움직이는 데 필요한 큰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빅 이슈』의 방식이 나이스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오랜만에 출근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다른 사람도 피하게 만들고 본인조차도 너무 싫을게 분명한

허름한 옷이 아니라 조직의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돈을 적게나마 모을 수 있다.

(2017년 당시, 『빅 이슈』 를 판매하는 700여 명의 노숙인 중 60명이 임대주택에 들어갔고, 40명이 재취업과 자립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굉장히 높은 성공률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오랜만에 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예전에는 카드 결제가 안돼서

현금을 잘 안들고 다니는 나로서는

『빅 이슈』를 못사고 지나칠 때도 많았는데

요즘은 카드 결제가 가능해졌다.

그래서 눈에 보일 때마다 구입을 한다.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왜 그동안 한 권씩만 샀을까라며 센스없음을 자책하게 된다.

다음부터는 그냥 두 권 사서 주변에 선물해야겠다.

 

처음 나왔을 때는 콘텐츠가 조금 빈약했는데

점점 서점에서 판매하는 잡지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주제 선택과 내용 모두 좋아졌다.

 

꼭 노숙인을 돕겠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살 만한 잡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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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대하여』, 『불가능한 누드』/ 프랑수아 줄리앙

2019. 6. 12.


동양회화와 서양회화의 차이를 알면 미술사 공부가 조금 더 친숙해집니다. 대학원에 들어가 논문을 쓰기 위한 공부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하나만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한쪽에만 치우친 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래도 틈틈이 반대편의 미술사도 공부하는게 중요하죠.

우선 기본적인 차이는 사용하는 도구의 차이입니다. 동양에선 글씨쓰는 붓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는 ‘서화용필동법론’이라는 동양회화의 기반이 되어주는 이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단어 그대로 서예와 회화를 사용하는 붓놀림은 같은 방식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글씨를 쓸 때 펜이 있고,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브러쉬가 따로 있습니다. 이 차이는 양식의 차이로 직결됩니다.

관념적인 면에서도 동양은 풍경을 ‘점차 보아간다’는 의식으로 바라 본 반면, 서양은 풍경을 ‘내가 여기서 본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룹니다. 서양에서 중요하게 여긴 원근법이 동양에선 전혀 사용되지도,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은 이유입니다.

이 기사에서 소개된 프랑수아 줄리앙 교수는 『풍경에 대하여』, 『불가능한 누드』라는 책으로 동서양 회화의 차이를 풀어냈습니다. 아무래도 서양인의 시각이기에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일일이 풀어쓴 감이 있지만 동서양 미술, 철학의 차이에 대해 공부하기에 좋습니다.

“줄리앙 교수의 책 '불가능한 누드'의 번역자인 박석 상명대 교수는 서양은 물질적인 관점에서 인체를 해부학적인 대상으로 보지만 동양에서는 기의 흐름, 에너지의 개념에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경락과 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체를 파악하기에 극동아시아에서는 누드가 발전할 수 없었고 대신 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옷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https://news.v.daum.net/v/20190524161129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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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산 이유

2019. 5. 19.

매력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말 중에는 뇌섹남이라는 단어가 있다.

단어 그대로 뇌가 섹시한 남자라는 의미이다.

 

아는게 많고, 지적인 사람 특유의 아우라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만고불변의 매력이라 할 만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일요일),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강의를 하러 광화문에 나왔다.

늘 그렇듯이 광화문역에 도착하여

교보문고를 한바퀴 둘러봤다.

 

책을 안살 때도 있지만

오늘은 꼭 한 권을 사고 싶었다.

대개 마음이 휑할 때 이렇다.

 

내 전공 공부만 하다보면

마음이 푸석푸석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뭔가 말랑말랑하고, 달착지근한 책이 땡기는 것이다.

 

마침 구글포토 속 ‘사고 싶은 책’ 앨범에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가 들어있었다.

얼마 전에 출간 소식을 보고 캡처해서 저장해놨던 책이다.

 

<알쓸신잡> 방송을 통해

저 작가의 책은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뇌섹남이 단순히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건 당연한 조건이고,

더 나아가서 자신이 아는 지식을 내비치는

행동양식도 중요하다고 본다.

 

안다고 듣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지식을 쏟아내기만 하는건 지식업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방송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이야기, 주장을 듣는 사람을 고려해가며

단어 선택을 하고, 태도를 결정하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뢰가 갔다.

저 사람의 지식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책을 처음부터 읽지 않는다.

우선 촤르륵 넘기다가 내 의식에 확 다가오는 부분부터 읽은 뒤에

전후 내용을 보충하는 식으로 읽는다.

 

『여행의 이유』 중간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김영하 작가가 배낭여행 중에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을 갈 때 우연히 만난 백인 여성 두 명과

밤기차를 같이 탄 스물다섯살 때의 이야기이다.

 

밤기차는 한 칸에 세 명만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있는데

백인 여성 두 명이 김영하 작가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대개 여기까지만 들으면

남자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삼을 것 같은 추억이다.

 

유럽에서!

그것도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을 가는 낭만적인 여정 속에서!

게다가 백인 여성 두 명과!!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시하고 있었다.

동양인 남자는 수줍고, 힘도 약하고, 예의가 바르기에

함께 밤을 지새도 결코 아무 일탈도 벌이지 않을 것이다는

백인 여성들의 선입견에 자신이 선택되었을 뿐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가 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불쾌감을 내비치거나,

‘내가 너희 속셈을 이미 다 알고 있느니라’며

자신의 지적 수준을 백인 여성들에게 과시하지 않았다.

 

알고 있음에도 백인 여성들이 안심하고 잘 수 있도록

조용히 제 역할을 해주고 다음 날 헤어져줬다.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철없게 백인 여성들과 추억을 쌓았다며 들떠하지 않고

그녀들의 의도를 간파한 그의 지식 수준을 높이 산다.

그럼에도 안전한 밤을 원하는 그녀들의 입장을 존중하여 티내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주었던 행동양식을 존경하게 되었다.

 

현재 이 내용만 본 상태인데

앞으로 읽어볼 다른 내용이 기대된다.

책을 잘 샀다는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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