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단상/큐레이터 26

큐레이터? 프로젝트 매니저?

올 초에 팀을 옮기고 벌써 2개월이 되어간다. 급작스러운 인사발령이었지만, 공예 관련 부서로 옮긴 지금 꽤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지난 1월에 이 팀으로 온 뒤로 업무 파악을 위해 지난 결재 문서를 보며 공부하고 업무에 투입되느라 정신없이 연초를 보낸 것 같다. 미술사 중에서 회화사를 전공했고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호림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있으며 했던 수많은 도자, 공예 전시를 했기 때문일까. 공예에 대한 매력을 갖고 있던 차였다. 큐레이터도 넓게 봤을 때 프로젝트 매니저 중에 하나이다. 다만 큐레이터에게 프로젝트는 평상시에 하는 유물 관련 일을 제외하고 전시기획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권한과 책임이 좁다는 느낌을 박물관에 있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 더 넓고 큰 프로젝트를 맡으려면 큐레..

팀을 옮겼다.

일을 하다가 가끔 전시실을 둘러보곤 한다.휴관 중이어서 딱히 체크해야할 작품들은 없지만공간 자체가 문화유산(사적)이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불까지 꺼져있어 고요한 전시실은 더 매력있다. 이곳으로 이직하고 어느덧 1년이 흘렀다.작년 1월에 산 조그만 달력이 벌써 한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그동안 월요일부터 표기된 이 달력 때문에 꽤 헷갈려했는데1년동안 잘 버텼다.다음에 살 때는 반드시 일요일부터 써있는 달력인지 확인해야겠다. 새해를 맞아 대대적인 인사발령이 났다.나는 본원에 위치한 공예 관련 부서로 옮기게 되었다.최근 3개월동안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이번 인사발령과 함께어느 정도 고민이 해결되어 다행이다. 새 팀에서 나는 공예주간이라는 행사와 해외 아트페어를 맡게 되었다.전 박물관에서..

큐레이터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

오랜만이네요. 블로그는 미디어의 지형이 변해가는 것과 상관없이 언제나 꾸준히 나의 생각을 전하고, 쓰고 싶은 글을 남기는 공간으로 남기고 싶은 곳인데 꾸준함이 참 어렵다는걸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가끔씩 제 블로그를 들러보는 분들이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말은 못해도 항상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_ _) 한 번 흐름이 끊기니 글을 쓰고 싶다가도 스스로에 대한 검열 때문에 머뭇거리게 되던 참이었는데 마침 그동안 저에게 질문을 해주신 분들이 꽤 계셔서 이 핑계로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Q. 큐레이터가 전시기획만 하는 게 아니라 이외의 부수적인 업무들을 겸해야 한다던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으신지 궁금해요. A. 을 할 때 항상 강조하던 부분이었습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일만 보고 큐레이터를..

큐레이터의 정체성

지난 6월 23일에 공식적으로 전시 오픈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에 들어갔다. 전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모든 신경과 시간과 육체적 노력을 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특징이 때로는 열정을 갖고 임하게 만들다가도 어떤 때는 허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되는건지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침잠해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큐레이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연구자형 큐레이터, 다른 하나는 행사형 큐레이터. 연구자형 큐레이터는 학예연구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참 어정쩡하다고 느끼는게 정체성과 나의 경향은 연구자형에 맞는 것 같은데, 또 달리 보면 행사형에도 어느 정도 발을 걸치고 있을 때가 있다. 광고, 미디어, 마케팅 등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

프랑스에서 큐레이터를 한다는 것은

프랑스에서 큐레이터(학예사)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프랑스에서 ‘미술관(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곳은 전부 국립 기관이기 때문이다. 즉 프랑스 미술관에서 근무하려면 프랑스의 공무원이 되어야하는데 당연히 한국 국적의 사람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프랑스 정부를 위해 일할 외국인을 정부차원에서 초빙하는 경우가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는 일반적인 취직과 다른 범주의 이야기이고 극히 드문 기회에 불과할 것이다. 갤러리에 취직하는 것은 가능하고, 충분히 도전할 만한 것 같다.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거래가 활발한 요즘이라면 한국 출신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집고 들어가다’는 표현을 굳이 사용한 이유는 가능성이 있을 뿐..

Prologue...내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이유

저는 미술사를 전공하고 현재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같이 전공과 직업을 일치시키기 어려운 때에 전공을 살려 일하고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아르뜨라는 필명으로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덕분에 많은 분들께서 이 분야에 대해 문의를 주고 계시는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 뿐입니다. 오히려 모든 분들에게 답변을 드릴 수 없어 죄송한 마음이 더 크네요. 대신 연재 형식으로 '내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할 예정이니 이 글을 통해 이 분야에 대해 맛보기로라도 아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선 위의 사진들은 현재 제가 일하고 있는 박물관의 2010년 전시 사진입니다. 고미술 전시하면 작품 자체가 워낙 중요하다보니 현대적이고, 세련된 전시 기..

갤러리 큐레이터(갤러리스트)의 자질 문제

오랜만에 큐레이터와 관련된 글을 올립니다. 큐레이터, 갤러리스트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에 관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와의 기 싸움에 밀리지마라." "작가와 친하게 지내지 마라." 등등. 이러한 말이 정말 맞는건지 저에게 묻더군요. 더 해괴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제 블로그에 올리기조차 민망할 정도라 이 정도만 밝힙니다. 한 마디로 큐레이터는 작가보다 위에 서야한다는 식의 강의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분명 틀린 말이며, 그릇된 사고방식이고, 큐레이터로서의 자질까지 의심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지간하면 이렇게 단호하게 제 생각을 밝히는 편이 아닌데도 이건 단호히 말할 수 있겠네요. 큐레이터는 작품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제..

큐레이터 뉴스 : 2013/05/06

HeadLine ☞ 5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숭례문 ☞ 숭례문의 어제와 오늘 표암 강세황 Art History 2013년의 미술사 관련 전시의 큰 화두는 조선후기 예원의 총수라 평가받는 '표암 강세황의 탄신 300주년'입니다. 조선후기 회화는 크게 남종문인화, 진경산수화, 풍속화의 대유행으로 구분지을 수 있는데 표암 강세황은 이 세 분야 모두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지요.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한 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간송미술관에서 먼저 그 시작을 알리네요. 그리고 6월 말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특별전이 열릴 계획이니 한국미술사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전시입니다. ☞ 조선후기 예술계의 총수이자 문인화가였던 표암 강세황의 예술세계 ☞ 탄신 300..

큐레이터/전시회 뉴스 : 20130425

4월이 되니 확실히 박물관, 미술관에서도 활기가 넘치네요. 보고 싶은 전시는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점점 많아지는데 언제 다 보러갈까요. 행복한 고민이 드는 요즘입니다. 이 외에도 추천해주고 싶은 전시 있으면 알려주세요 :) 은밀하면서도 적나라한 춘화로 본 일본과 중국 화정박물관 전시기간 : 2013/04/21 ~ 2013/09/29 (☞ read more) 한 권의 책이 주는 예술적 가치에 대하여 대림미술관 슈타이들전 전시기간 : 2013/04/11 ~ 2013/10/06 (☞ read more) 짧지만 풍부한 미국미술, 역사를 듣는다 국립중앙박물관 , 게빈 레일 교수 강좌 개최 일시 : 2013/05/01 14:00-16:00 (☞ read more) 'Love'로 뭉친 현대작가들 서울오픈아트페어 전시..

큐레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 대학원에서 인문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소위 인문학을 공부하는건 배고픈 길이라고 표현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인문학에 대한 지원이 열악한 나라에서는 펀드를 조성하기도 힘들고, 공대생들처럼 프로젝트를 따와서 그 돈으로 생활하며 연구할 기회도 별로 없다. 미술사 역시 인문학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현실이다. 원래 학부 때 꿈이 뉴욕 맨하은(맨하튼으로 부르면 안된댄다)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광고쟁이였고, 그 꿈에 맞춰서 나름 열심히 준비한 적이 있다. 결국 원하던 곳에 취직하여 차근차근 광고쟁이로서 일을 하며 점점 담당하는 광고주가 대기업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또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더 어릴 때에는 영화 같은 스포츠 에이전트를 꿈꾼 적도 있었기 때문에 광고 AE 경력을 살려서 우리나라 최고의 에이전트사에서 근무를 한 적도 있다.(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