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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단상/전시 소개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사월의 동행 April the Eternal Voyage> in 경기도미술관

2016. 5. 10.

58일 어버이날에 경기도미술관 <사월의 동행>에 다녀왔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추념전 <사월의 동행>展은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안산 화랑유원지 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어떤이에게는 이제 그만 좀 했으면 하는 듣다 지칠 이야기, 또 어떤이에게는 손에 잡으면 사라질 뜨거운 눈물 같은 416 세월호 참사.

전시는 희생자 가족과 참사로 인해 공동의 아픔을 갖게 된 이웃들과 서로를 위무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공감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되묻고, 예술이 무엇을 담아내고 표현할 것인지, 어떻게 모순된 사회와 함께 호흡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전시의 인상은 공동의 분노와 공포를 날카롭게 직시하면서도 잔잔하고 차분한 어조로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그 모습이 격노를 꾹 참고 침착한 어조로 희생자들을 위해 선언하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조소희, <봉선화 기도 304>, 2016, 혼합 재료, 가변 설치, (작품설명, 사진 : 경기도미술관)

봉선화기도는 손가락 전체에 봉선화 물을 들이고 기도하는 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인간의 염원에 담긴 아픔, 슬픔, 분노 등을 표현한 작업으로 작가가 2014년부터 진행되어 왔다. 그동안의 작업이 한 개인의 기도였다면,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된 304개의 손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고통과 분노, 그리고 애도가 담긴 공동의 기도이다.

작품을 보고 바로 든 생각은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들 하지만 누구나 유독 아픈 손가락은 있을 것입니다.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이들을 위해 304명의 자발적인 관객들이 공감과 연대의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습니다.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 손가락에 봉선화물을 들이는 <봉선화 기도> 토요프로그램이 마련되어있습니다.

장민승, <마른 들판>, 2014, 수용성 종이에 실크스크린, 제주 조약돌, 타원형 스포트라이트, 29×42×8cm 6피스, 가변 설치

(작품설명 : 경기도미술관)

장민승은 세월호의 비극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절제된 몸짓과 글로 표현했다. “〔…〕둘이서 보았던 눈, 올해도 그렇게 내렸을까 파도는 차갑고, 물새도 잠들지 못하는구나〔…〕손에 잡으면 사라질 눈물, 뜨거운 눈”(하이쿠 <마른 들판>) 그는 이 시를 물에 녹는 종이에 인쇄해 조약돌을 얹어 설치해 희생자들에게 보낸다.

안규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읽기>, 2016, 사운드 설치, 가변 설치(작품설명, 사진 : 경기도미술관)

좁은 골목 끝 저편에 글을 읽는 이가 있다. 글을 조근 조근 읽는 그를 바라 볼 수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 작가는 우리 아이들이 아마 지금쯤이면 읽을 수도 있었을 책”, “아름다움에 대해, 젊음과 우정에 대해, 인내와 슬픔과 고뇌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행위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추모를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언젠가는 우리의 목소리가 먼 곳까지 닿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리운 사람들에게 닿을 거라는 희망으로 읽기를 권한다.

우리 아이들이 아마 지금쯤이면 읽을 수도 있었을 책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젊음과 우정에 대해, 인내와 슬픔과 고뇌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입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는 우리의 목소리는 꿈결처럼 저 먼 곳에 있는 그리운 사람들에게로 갈 것입니다. 따스한 숨결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가 닿을 것입니다.” 안규철

전시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는 길목에 형광펜으로 책에 줄을 그어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싶은 문장을 기록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잠시 의자에 앉아 형광펜의 자취들을 살피며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빛이 나는 문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때나 봉기하진 않는다. 흔히 먹고 살기 힘들면 봉기한다고 하지만, 그건 일면적인 관찰이다. 역사 속의 허다한 봉기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사실은 그것이 더 많은밥과 더 좋은 옷을 목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봉기자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들이 무엇인지 증명하기 위해서 <죽음을 무릎쓰고> 일어난다.

전시 관람을 한 뒤 동행인과 함께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케익을 먹고 수다를 떨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렇듯이 아주 평온한 날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모순되고 이상하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현상 유지에 급급하며 살고 있는, 이렇게 느슨한 긴장감을 가지고 사는게 문득 맞는건가 하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특히 요즘 많은 분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우리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만나고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하지만 모두 바쁘고 하루하루가 치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이 잘못됨을 알고 표현하기에 너무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개인을 모아주는 것이 제가 바라는 예술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선동을 의미하는 것도, 사회에 투쟁하여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쥐자는 것도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에 맞춰 <사월의 동행>이 열리기 전에 많은 우려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미술관을 찾아주시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공감과 위로라고 생각이 듭니다. 전시는 06.26()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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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시간이 멈춰있는 공간

2016. 2. 6.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1층 왼쪽 문으로 들어가면(흔히 입장하는 정문은 2층에 있다) 검색대 옆에 간이 의자를 빌려주는 곳이 있다. 회화 학습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이 학생들 덕분에 우리나라 미술관과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명작 앞에 자리잡고 앉아 옛 거장의 필법, 채색법을 꼼꼼하게 분석하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려는 미대생들의 모습을 전시실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내셔널갤러리가 세계적인 박물관인만큼 관람객 수도 상당히 많아 전시실이 다소 시끄러운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의 화법을 찾기 위해 묵묵히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며 어떤 관람객들은 옆에서 그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있는데도 일절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모습을 뒤에서 보며 또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장들의 그림을 수없이 모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개성을 찾을 수 있다(고 옛 화가들은 말했다). 서양 근대미술의 효시로 평가받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도 옛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 위에 자신의 생각을 파격적으로 덧입혀서 탄생한 작품이 아니던가.


나는 내셔널갤러리에서 마주친 이 화가들이 미술 학습 방법의 정석을 걷고, 지루한 연마의 시간을 견디는 것 같아서 분명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만의 개성이 확고한 화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톡톡 튀는 센스와 감에만 의존하며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미술가들의 작품보다 이들의 작품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한 명의 장인이 탄생하기 직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들의 주위는 시끄러운 내셔널갤러리 속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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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What Else> 전시회 with 네스프레소

2016. 1. 30.










네스프레소에서 주최한 하정우 전시회를 다녀왔다. 박물관과 함께 있는 아트센터 지하 갤러리에서 하정우 전시를 하고 있다길래 근무 시간이지만 얼른 다녀왔다. 한파가 몰아치던 평일 아침이었는데도 오픈 시간부터 사람들이 많이 왔다. 박물관 큐레이터로서 전시회 흥행까지 고려해야하는 입장 때문인지 내심 부러운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고미술 전시도 이렇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정착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할까. 곧 다가올 듯하면서도 아직은 먼 이야기같다.


하정우의 전시를 보러 갤러리로 내려가면서 작품 자체에 대한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이미지로만 접해왔기 때문에 직접 작품을 보면 그만의 화풍, 개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직접 가서 꽤 꼼꼼하게 봤는데 전반적으로 어떤 화풍을 추구하는지 알 것 같았고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물론 천경자,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들이 많아서 아직 하정우 화풍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 진행중인 작가이니 미리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것은 무리이다.


작품의 세부적인 면에서 보자면 붓 터치 속도가 느리고 일관되며 너무 꼼꼼해서 아직은 범작에 머문 듯 보인다. 너무 공을 들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단계를 넘으면 자신만의 개성이 더 표출될 것 같다는 기대를 갖기엔 충분했다. 본래 격이 높은 작품은 그 전에 상당한 연마가 뒷받침되고, 선행되어야하는데 하정우씨는 현재 연마의 단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화가로서 길을 찾아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항간에 연예인의 미술 작품 활동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유명세에 기댔다는 점이 주된 이유인데 나는 연예인이 그림을 그린다고해서 일단 폄하하는 것은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명세에 기대면 왜 안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반 고흐의 신격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 고흐가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으면서 모름지기 작가라면 삶 속의 치열한 투쟁과 고통, 가난을 수반해야만이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생긴 탓이다.


이런 선입견은 전업 작가가 아닌 사람이 그린 것은 미술이 아니라는 것인데 미술의 범주, 정의에 대해서 과연 누가 자신있게 결정지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므로 출신을 떠나 한 작가에 대해 평가할 때는 작품만 가지고 논해야하는데 아직 하정우씨의 작품은 진행중인 작가이므로 평가를 뒤로 늦출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특이한 소재만 찾아서 긴 여운없이 순간의 감탄에만 집착하는 요즘 여느 작가들의 작품보단 훨씬 좋다고 본다. 하정우씨의 작품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와. 센스있다"며 좋아요 한 번 누르고나면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그런 작품들보다는 생명력이 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정우씨가 뉴욕에서 작품을 모두 판매한 일화와 작품 한 점당 2,000만원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이러한 모든 것들을 모두 유명세 때문으로 치부하는데 이를 두고 불공평하다, 특히 힘들게 고생하는 전업 작가들이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전혀 논리에 맞지 않다. 만약 무명 전업 작가들을 위한 생각에서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차라리 유명 작가들에게만 기대서 전시하는 갤러리, 미술관을 타겟으로 삼는게 맞지 않을까싶다.


더욱이 현대미술은 아서 단토가 "예술은 죽었다"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예술 자체가 죽은게 아니라 일정한 방향이 사라졌다는 의미) 가타부타 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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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전시 오픈!

2015. 11. 11.















국보, 보물을 중심으로 한 명품 전시를 오픈했습니다. 작품 포장, 운송, 포장 해체, 진열장 이동, DP, 조명 등까지 2주에 걸쳐 했네요. 워낙 보기 힘든 명품들이어서 DP하면서도(가장 긴장되는 순간임에도) 하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죠. 어제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는데 기자분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오늘은 공중파 촬영을 했습니다. 아마 제 인터뷰도 5초 정도 함께 나갈 듯합니다. ㅎㅎ 


명품전인만큼 많은 분들이 보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큐레이터의 보람은 많은 관람객으로 전시실이 북적일 때 가장 크니까요. 이제 조금 여유를 갖고 그동안 못 읽은채 책상 한 구석에 쌓아둔 책도 읽고, 다른 전시들도 보러 다닐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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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그녀에게 가는 길

2015. 11. 1.


중국인들이 장악해버린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와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이 마주보고 있는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 한숨부터 밀려나온다. 가까이에서 볼 수는 있으려나.



모나리자와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조금 민망하더라도 우직하게 밀고 나가야겠다고 잠시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면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며 나와주는 모습에 왠지 모를 동지애마저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나는 한 칸, 한 칸 장기말 옮기듯이 앞으로 전진해나갈 수 있었다. 장기에서 한번에 끝까지 갈 수 있는 車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녀를 만나기까지 오랜 기다림과 설레임이 그만큼 빨리 사라질 것 같아 이렇게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도 괜찮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얼른 다 먹어버리는 것보다 더 소중함이 느껴지는 '음미하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거의 다 와가요.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드디어 만났네요. 그 쪽 얘기 많이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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