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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단상/전시 소개

전시와 책은 일단 쟁여놓아야 한다.

2019. 4. 18.

https://kobalog.jp/burart/2019/02/kisonokeifu/

 

【超速レポート】混雑必至!?大満足の企画展「奇想の系譜展 江戸絵画ミラクルワールド」@東京都美術館

奇想の系譜展 江戸絵画ミラクルワールド 2019年2月9日(土)、雪の舞う東京上野、東京都美術館にて展覧会「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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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이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보고 싶었는데 당장 공부에 필요할까하는 마음에

그냥 안가기로 했다.

 

전시는 며칠 전에 끝났고,

나는 다음 주에 있을 학회 발표 준비를 하는 중이다.

발표 준비하다 보니 이 전시를 꼭 봤어야 했다는걸

점점 깨닫는 중이다.

하다못해 도록이라도 사다놓을걸. ㅠㅠ

 

역시 전시와 책은 일단 쟁여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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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전을 보고 / 서울시립미술관

2019. 3. 13.


1950년대는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이 유입되면서 서양화단뿐만 아니라 동양화단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시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양미술의 전통이 아닌 서화 중심의 동양미술 전통이 근간으로 발전해온 우리나라 화단에 갑자기 서양 현대미술이 들어온 문화적 충격이라 할 만하다. 생선은 당연히 구워먹는 것이라 여겨왔던 서양인들이 회를 처음 접한 격이랄까. 이럴때 당시 우리나라 화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떤 눈으로 추상회화를 바라봤을까.

이 의문은 현재 학계에서도 활발하게 논의중인 주요 논점이다. 이 논의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동양화단, 서양화단으로 양분하여 연구해온 풍토를 통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술사에서 전공을 구분할 때부터 한국미술사, 서양미술사로 구분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미술사 전공자들은 근대를 연구할 때 동양화단을 주목하고 배경지식도 지필묵의 동양회화가 근간에 깔려있어 서양미술을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서 오히려 서양미술사 전공자가 연구할 때 단점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근현대를 수놓은 대부분의 화가들은 처음 회화학습을 할 때 동양회화로 시작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론을 이해하려면 문인화론과 같은 동양회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강생들이나 후배들이 진학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오면 '만약 나라면?' 혹은 '만약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하라고 할까?'를 염두에 두고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인생에 중요한 것은 공부만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정말 공부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근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면 한국미술사 전공으로 진학하라고 이야기해줄 것 같다. 서양미술사를 깊이 공부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국 최종 연구할 대상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 의한, 한국미술, 한국문화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개 전공을 정할 때 시대로 구분하곤 한다. 그래서 서구권 외국 학자가 나에게 뭘 전공하냐고 물었을 때 "한국회화사를 전공한다", "중국불교미술을 전공한다"는 식으로 말해주면 갸우뚱거릴 때가 많다. 그들은 "18세기 미술을 전공한다", "르네상스시기 미술을 전공한다" 등 시대 전반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시대로 전공을 구분하면 그 시대의 미술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제작된 회화, 조각, 공예, 건축, 그리고 각종 시각이미지까지 모두 연구해야한다. 왠지 전공의 샤프함(?)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넓게 공부해야 외곬수적인 생각을 방지할 수 있다. 다채로운 학설 전개도 가능하다. 점차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랜만에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러 <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 전시를 보고 왔다. 급하게 미술관 2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을게 있어 갔다가 겸사해서 전시도 봤다. 한묵의 전성기를 장식한 작품은 그래픽적인 요소가 강한 기하학적 추상회화이다. 그러나 그의 회화전개를 전반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의 화업도 역시 붓과 먹을 사용한 경험이 묻어나오는 작품도 상당하다. 그리고 최소 조형요소인 색, 선을 통한 형태의 발현에는 도교적 세계관도 감지할 수 있다.

이 전시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 연세에도 회화혁신을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점에 놀랐고, 젊은 나보다 훨씬 젊은 감각에 놀랐다. 하지만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서양 미술사조라는 틀 속에 위치한 공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통 서화의 추상성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급하게 논문 한 편을 쓰고 있어 정신없긴 하지만 얼른 마무리짓고 다시 한 번 보러갈 예정이다. 전시는 3월 24일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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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전을 보고 /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

2018. 12. 1.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에서 하고 있는 <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전에 다녀왔다.


보통 전시를 가면 작품에만 집중해서 보는 편이다. 전시 디자인은 안타깝게도 '거기서 거기'라는 허무함을 갖고 있는 데다가 작품이 지닌 미적 가치가 전시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전시 역시 근대 명품들을 공부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방문했다. 그런데 제1실부터 이 전시를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전시는 작품 선정 및 설명, 전시 디자인, 전시 구성이라는 주요 3요소를 모두 성취했다. 전국의 국립, 사립 기관, 그리고 개인소장가들의 근대 대표작들을 대여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작품 하나를 보러 지방 먼 곳까지 가기란 논문 쓸 때 아니고서는 꽤 어려운 일인데 이 전시가 한 번에 해결해줬다. 특히 해강 김규진의 그림을 바탕으로 수를 놓은 <자수매화병풍>은 최초로 공개되는 것으로 전시의 수준을 한껏 올려주었다.


전시 구성 역시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센스와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해줬다. 미술사 전시는 언제나 초점을 어디에 맞출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당시의 시대상을 증명해주는 도구로서 작품을 내놓을지, 아님 작품의 예술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출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 전시는 대한제국이라는 암울한 시대상을 한 꺼풀 벗겨 재조명하는 것도 목표로 삼았기에 역사적 맥락 역시 중요했다. 그렇다고 근대 거장들의 대표작들을 단순한 사료로 취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1실부터 제7실까지 이어지는 전시공간의 앞 부분은 근대 사진자료들과 함께 우리가 왜 대한제국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충실한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후반부는 근대미술의 미술사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 근대 서화가들의 요람인 '서화미술연구회', '동연사' 섹션이 대표적이다.


마지막 공간에는 개인적으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스케일면에서, 작품 수준에서 자랑할만 하다고 여기는 창덕궁 대조전 벽화를 미디어아트로 대신하였다. 현실적으로 벽화를 대여해서(비단에 그린 작품이긴 하지만) 전시하기란 꽤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 왕실 미술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마감하는 이 작품들은 대한제국 전시의 필수이기에 미디어아트로 대신하여 그 스케일을 눈과 귀로 만끽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시 공간 역시 꽤 큰 정성을 들인게 느껴졌다. 왕실 내부의 모습을 심플한 벽체로 꾸몄는데 마치 평일 한 낮에 아무도 없는 종묘에 들어선 듯한 고요한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의관을 정제해야만 될 것 같았다.


사진찍기 좋도록 꾸미고 전시 공간 디자인에만 집중하는 전시 풍토에 국립기관으로서 모범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 세 번 봐야할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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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공간>전을 보고 / 세화미술관

2018. 11. 8.


저녁노을이 질 때쯤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에 서서 노을이 지는 쪽을 바라보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망치질 하는 사람(Hammering Man)>을 볼 수 있다. 망치질 하고 있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너무나 고요해서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고 있는 느낌마저 드는 조각상이다. 구스타프 쿠르베가 19세기 파리의 노동자들을 성스럽게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몸짓이랄까.


조각상 옆에는 흥국생명 빌딩이 있는데 이 건물 3층에 세화미술관이 들어서있다. 광화문을 자주 가면서 세화미술관 방문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빠르게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지나다니며 언제 가봐야겠다고 다짐만 했다가 이번에 처음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꼭 봐야겠다고 생각을 한 이유는 전시 소개글에서 찾을 수 있다.


관람객은 화이트큐브의 경직된 공간 대신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미술관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직조 등 전통 섬유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에서부터 광섬유를 활용한 오브제, 실을 연결하여 공간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 작품, 패브릭을 활용한 공간 드로잉, 실로 감싼 집 등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섬유의 물성을 활용하여 공간과 적극 소통하며 각각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대개 회사 빌딩에 입주한 미술관들은 전시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 어쩔 수 없는 한계이며 큐레이터들은 전시를 할 때마다 고생하게 되고, 아쉬움이 많다. 세화미술관 역시 흥국생명 빌딩 3층에 있어서 같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가장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으로 화이트큐브형으로 공간을 꾸미는 것을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창문을 가린 직육면체 공간에 하얀 페이트칠을 한 벽으로 마감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면 전시는 단조로워질 수 밖에 없다. 벽에 회화작품을 높이만 통일해서 걸어버리거나, 마치 무심한 손길로 놓은 듯 조각상을 비정형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끝내기 때문이다. 나처럼 전시기법 보다는 작품에 더 집중하는 미술사 연구자들은 작품만 보면 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전시 자체는 심심해져 작품이 주는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전시 소개글에서 말한대로 이런 한계가 있는 공간을 어떻게 채웠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섬유 재료를 공간 연결에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도 보고 싶었다.


<유연한 공간>전은 섬유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공예작가 5인(강은혜, 노일훈, 박혜원, 정다운, 차승언)을 선정하여 각 공간을 담당하게 한 전시이다. 작가들은 작품을 세화미술관 속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제작했다. 집 속에서 뻗어나오는 빛을 벽에 비춰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인연에 대해 보여주거나(박혜원), 공간을 마치 고구려 고분벽화인 <수렵도>의 무대처럼 꾸며 새로운 산수, 풍경을 선보였다(노일훈). 서울역사박물관 쪽에서 비춰오는 햇빛으로 패브릭의 화려한 원색을 강조하여 시각적 즐거움을 보여주는 공간(정다운)은 전시실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찾아보게 만들었다.


전체 전시공간 역시 제목(유연한 공간)에 걸맞게 잘 구분했다. 전체 공간은 작지만 많은 것을 보고 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조용히 생각에 잠긴채 관람하기 좋은 전시였다. 특히 설치미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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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전시 中

2018. 7. 27.


이달 초에 일본미술 2차 전시를 오픈했습니다. 이로써 작년 말부터 해온 이번 특별전의 전시기획이 모두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동안 쪼금 바쁘긴 했습니다. ㅎㅎ

전시는 크게 3개의 섹션으로 구분을 했어요. 화파별로 할지, 시기별로 할지 등등 섹션 구분에 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일본미술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지, 가장 최적의 조합과 동선은 무엇일지를 두고 말이죠.

그렇게 해서 나온게 1. 중세부터 근대까지의 수묵화, 2. 채색화를 통한 일본의 풍속, 3. 동아시아 회화교류 섹션입니다. 담당 큐레이터 입장에서 어느 섹션이 가장 인기가 많을지 내심 기대됐는데 확실히 채색화가 인기가 많더군요.

역시 일본 느낌, 감성은 채색화를 통해 더욱 강하게 느껴지나봅니다. 이번 2차 전시 때는 곳곳에 눈을 즐겁게 해줄 공예품도 추가했습니다. 큐레이터로서 전시는 일단 재밌어야한다가 기본 생각이거든요. 전시 찾는 중이시라면 이번 전시도 한번 고려해주세요. 참고로 내일(토요일) 3시엔 오랜만에 제가 전시해설을 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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