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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단상/전시 소개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강연 안내

2019. 6. 10.

종로 계동에 있는 배렴 가옥에서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강연을 합니다. 배렴 가옥 가보신 분들도 계실텐데 우리나라 근현대 수묵화단을 대표하는 배렴의 집을 관람 공간으로 보존 중인 곳이죠. 배렴은 이상범의 대표적인 제자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간간히 좋은 강연을 열고 있는데 이번에는 미술사 공부를 갓 시작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하게 됐네요.

 

강연자는 예전에 제가 소개해드렸던 책을 쓰신 두 분 선생님입니다.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를 공부할 때 안보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책과 논문을 쓰신 분들이라 강연에서도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대학원 진학 예정인 분들 그리고 대학원생들도 미술사 연구의 ABC를 배울 수 있을테니 시간되시는 분들은 꼭 가셔서 들어보세요 :)

 

신청은 02-765-1375 / 00hanok88@gmail.com으로 받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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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필시대>전의 디테일 / 국립현대미술관

2019. 6. 9.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금요일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왔다.

시청역의 출근 인파가 갓 사라진 9시 15분쯤 도착했다.

 

나는 출근 시간대를 지난 직후의 시간을 꽤 좋아한다.

번잡함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회색빛 도시의 안도의 한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가장 많이 들리는 카페의 직원들이

겨우 여유를 찾고 미소짓는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뿌듯해진다.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전시를 본격적으로 보기 전 눈과 뇌를 재부팅했다.

 

그러고 카페를 나와 내겐 이례적으로 전시를 보기도 전부터

좋은 전시라는 확신을 갖게 해준

<절필시대>전을 보러 덕수궁관에 들어갔다.

 

무슨무슨 시대전, 누구누구 거장전, 누구부터 누구까지 등

1차원적인 분류에 의한 전시를 주로 보게 되는

우리나라 전시 풍토에 경종을 울릴 만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나도 내가 기획한 전시는 전부 ‘거장전’이라고 했다.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전시를 해도 괜찮은건지 불안해하시고,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신

결재 상위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전시 개최를 성공시키는게 더 중요했기에.

 

<절필시대>전은 어떤 연유로 인해 붓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화가들만 따로 모아 이들의 작품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해주는 전시이다.

 

나도 잘 몰랐던 작가들이 있어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일본 교토의 사생화풍을 수용한 작품들도 그렇지만,

요즘 내게 화두로 부상한 1950년대 초기 추상회화를 이끌어간

이규상의 작품 세계도 간단하게나마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논문을 쓸 때도 그렇고, 평상시에도

누구의 ‘회화 세계’ 혹은 ‘작품 세계’라는 말을 지양하는 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꽤 오글거리는 표현이라 싫어한다.

특히 논문 제목에는 적합하지 않은 용어라고 생각하는데

이규상의 섹션은 ‘작품 세계’를 조망하다는 말을 사용해도 괜찮을 정도로

초기 추상회화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구상적인 화면구성에서 물감으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마티에르 기법까지

이규상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요소들을 중심으로 선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도 그랬지만, 한국 근현대미술 전공자들에게 공부를 시켜주는 전시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꼭 소개하고픈 부분은 전시 디자인에 있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인 1950년대가 시대적 배경이다.

우리에겐 1950년대만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양철 도시락, 붉은끼가 감도는 목재, 마룻바닥 등.

 

작품은 본래 놓여있었던 장소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련되고 현대적인 공간, 진열대 속에 있는 것도 멋있을 때가 있지만

때로는 작품을 둘러싼 공기를 함께 느끼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1950년대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소소한 전시 용품, 전시벽 페인팅을

단순한 화이트큐브형이 아니라 당시 느낌이 나게끔 디자인했다.

 

진열대 속 네임택을 고정한 저 못은 누가 봐도

1950년대스러운 못이다.

다양한 기능을 지닌 요즘 못이 아니라

오로지 바닥이나 벽에 박는 용도만 있는 미끈한 못으로

네임택을 고정한 것을 보며 한참을 감탄했다.

 

그리고 벽 페인팅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균열을 그려넣었다.

 

이런 시도는 실무자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순간적인 느낌과 인상만으로 뒤집으려 하지 않는 오너의 역할도 꽤 중요하다.

전시 개최 직전에 다 해놓은걸 뒤집는 경우를 하도 많이 봐온터라

더 감탄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밖에는 비가 내리는 금요일 오전 시간에

쾌적한 전시실 속에서 홀로 유유히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유달리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진 식사와 커피 한 잔도.

댓글 4
  • 태희 2019.06.11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명을 들으니 더 좋은 전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
    전시의 제목 단어선택이 참, '어쩜 저리 딱 ~맞나' 싶은 그런 느낌입니다.
    집에 붙여둔 리플렛에 못을 따라 해 보고 싶네여.

  • Jack 2019.07.03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바쁘더라도 추천해주시는 전시는 전부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오랜만에 강추하고픈 전시 - <절필시대>전 / 국립현대미술관

2019. 5. 30.

내가 석사를 수료하고 학교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학예사로 계시던 선생님이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이다. 오늘이 개최일이다. 전시 소개만 하면 일을 굳이 기획자와의 인연을 강조한 이유는 전시 주제를 얼마 전에 처음 접했을 머리가 ~ 정도로 기획이 참신해서이다.

 

항상 작가전, 시대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전시의 관습을 과감히 벗어났다. <절필시대>라는 타이틀의 전시는 어떤 연유로 인해 그림을 그리지 못한 때가 있던 화가들만 모은 전시이다.

 

전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근현대화가들의 이력을 꿰차고 있어야 한다. 안에서도 수준높은 작가들만 따로 추려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전시를 기획한 분과 알게 된지 벌써 10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기억에는 분이 차분하고, 성실하게 공부 하는 학자의 이미지였는데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획 능력까지 갖추고 계셨을 줄은 미처 몰랐다. 예전에 열렸던 <이쾌대>전도 분의 작품이다. 당시 유족들을 만나 , 전시 성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직 전시를 보지는 못했지만, 전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백윤문이다. 김은호의 제자였던 백윤문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과 입선을 거듭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많은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승과의 불화도 있었는데 이런 이유들이 겹쳐 무려 36년간이나 기억상실증에 걸려 붓을 놓을 밖에 없었던 화가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수준은 편차가 편이다.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작품 수준이 파도처럼 너울거린다는건 미술가의 작업이 단순히 손재주에 의지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예전에 근대회화전을 준비할 소장품으로 있던 백윤문의 작품도 내놓을까 하다가 작품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포기한 적이 있다.

 

이후 백윤문은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 되었지만 현재에 이르러 다시 조명받을 있게 것은 전적으로 둘째 며느님 덕분이다. 시아버지의 작품을 처분하지 않고 36년간 간직했다가 나중에 시아버지의 성인 자신의 성인 합쳐 <백송화랑> 운영하며 세상에 시아버지의 작품을 다시 선보일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지난 주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대서화전> 보고 그닥 감흥을 못느낀 터였다. 안중식 특별전이라 하기도 뭣하고, 근대회화전이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어정쩡한 구성과 컨셉이었기 때문이다. 작품도 짜임새있게 배치했다기 보다는 되는대로 가져다 벽에 듯했다.

 

전시를 보지 않았음에도 전시는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큐레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기획의 참신성과 이를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고, 미술사 전공자들에겐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는 여러 방향에서도 접근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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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와 책은 일단 쟁여놓아야 한다.

2019. 4. 18.

https://kobalog.jp/burart/2019/02/kisonokeifu/

 

【超速レポート】混雑必至!?大満足の企画展「奇想の系譜展 江戸絵画ミラクルワールド」@東京都美術館

奇想の系譜展 江戸絵画ミラクルワールド 2019年2月9日(土)、雪の舞う東京上野、東京都美術館にて展覧会「奇…

kobalog.jp

작년 말에 이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보고 싶었는데 당장 공부에 필요할까하는 마음에

그냥 안가기로 했다.

 

전시는 며칠 전에 끝났고,

나는 다음 주에 있을 학회 발표 준비를 하는 중이다.

발표 준비하다 보니 이 전시를 꼭 봤어야 했다는걸

점점 깨닫는 중이다.

하다못해 도록이라도 사다놓을걸. ㅠㅠ

 

역시 전시와 책은 일단 쟁여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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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전을 보고 / 서울시립미술관

2019. 3. 13.


1950년대는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이 유입되면서 서양화단뿐만 아니라 동양화단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시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양미술의 전통이 아닌 서화 중심의 동양미술 전통이 근간으로 발전해온 우리나라 화단에 갑자기 서양 현대미술이 들어온 문화적 충격이라 할 만하다. 생선은 당연히 구워먹는 것이라 여겨왔던 서양인들이 회를 처음 접한 격이랄까. 이럴때 당시 우리나라 화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떤 눈으로 추상회화를 바라봤을까.

이 의문은 현재 학계에서도 활발하게 논의중인 주요 논점이다. 이 논의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동양화단, 서양화단으로 양분하여 연구해온 풍토를 통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술사에서 전공을 구분할 때부터 한국미술사, 서양미술사로 구분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미술사 전공자들은 근대를 연구할 때 동양화단을 주목하고 배경지식도 지필묵의 동양회화가 근간에 깔려있어 서양미술을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서 오히려 서양미술사 전공자가 연구할 때 단점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근현대를 수놓은 대부분의 화가들은 처음 회화학습을 할 때 동양회화로 시작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론을 이해하려면 문인화론과 같은 동양회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강생들이나 후배들이 진학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오면 '만약 나라면?' 혹은 '만약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하라고 할까?'를 염두에 두고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인생에 중요한 것은 공부만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정말 공부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근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면 한국미술사 전공으로 진학하라고 이야기해줄 것 같다. 서양미술사를 깊이 공부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국 최종 연구할 대상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 의한, 한국미술, 한국문화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개 전공을 정할 때 시대로 구분하곤 한다. 그래서 서구권 외국 학자가 나에게 뭘 전공하냐고 물었을 때 "한국회화사를 전공한다", "중국불교미술을 전공한다"는 식으로 말해주면 갸우뚱거릴 때가 많다. 그들은 "18세기 미술을 전공한다", "르네상스시기 미술을 전공한다" 등 시대 전반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시대로 전공을 구분하면 그 시대의 미술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제작된 회화, 조각, 공예, 건축, 그리고 각종 시각이미지까지 모두 연구해야한다. 왠지 전공의 샤프함(?)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넓게 공부해야 외곬수적인 생각을 방지할 수 있다. 다채로운 학설 전개도 가능하다. 점차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랜만에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러 <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 전시를 보고 왔다. 급하게 미술관 2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을게 있어 갔다가 겸사해서 전시도 봤다. 한묵의 전성기를 장식한 작품은 그래픽적인 요소가 강한 기하학적 추상회화이다. 그러나 그의 회화전개를 전반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의 화업도 역시 붓과 먹을 사용한 경험이 묻어나오는 작품도 상당하다. 그리고 최소 조형요소인 색, 선을 통한 형태의 발현에는 도교적 세계관도 감지할 수 있다.

이 전시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 연세에도 회화혁신을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점에 놀랐고, 젊은 나보다 훨씬 젊은 감각에 놀랐다. 하지만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서양 미술사조라는 틀 속에 위치한 공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통 서화의 추상성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급하게 논문 한 편을 쓰고 있어 정신없긴 하지만 얼른 마무리짓고 다시 한 번 보러갈 예정이다. 전시는 3월 24일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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