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큐레이터의 단상/전시 소개

전시 오픈 안내

2020. 7. 23.

ⓒ김잔듸

 

ⓒ김잔듸

전시 오픈하고 바로 휴관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에 조심스럽게나마 개관하기로 했습니다.

 

전시는 크게 미디어아트 · 설치 · 가상현실(VR) 체험 · 회화 등의 시각예술과 여행 프로젝트, 공연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했으며, 주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요즘 같이 일상에 제약을 받는 시대에 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한겁니다.

 

저는 이 전시에서 이응노의 드로잉과 근현대 철도, 여행 관련 아카이브 섹션을 맡았어요. 주말에 전시볼 계획 있으신 분들은 함 놀러오세요.

 

이번 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하림과 블루카멜 앙상블> 공연이 있어요. 좌석에 앉아서 관람하는 것은 예약이 모두 찼지만, 그래도 전시 관람하면서 서서 볼 수는 있습니다.

 

사전예약제이니 혹시 오신다면 미리 예약하고 오세요. ^^

 

■ <여행의 새발견> 전시관람 사전예약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63717/items/3476265

 

네이버 예약 :: <여행의 새발견> 전시관람 사전예약

역을 중심으로 한 여행을 메타적 관점에서 다루는 메타 투어(Meta-tour) 전시입니다. 미디어아트, 회화, 설치 등 시각예술 작가들의 작품과 철도 및 여행 관련 아카이브, 연계 프로그램 등 다양한 ��

booking.naver.com

 

댓글 0

큐레이터의 정체성

2020. 7. 21.

지난 6월 23일에 공식적으로 전시 오픈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에 들어갔다.

 

전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모든 신경과 시간과 육체적 노력을

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특징이 때로는 열정을 갖고 임하게 만들다가도

어떤 때는 허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되는건지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침잠해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큐레이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연구자형 큐레이터,

다른 하나는 행사형 큐레이터.

 

연구자형 큐레이터는 학예연구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참 어정쩡하다고 느끼는게

정체성과 나의 경향은 연구자형에 맞는 것 같은데,

또 달리 보면 행사형에도 어느 정도 발을 걸치고 있을 때가 있다.

 

광고, 미디어, 마케팅 등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일도 해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 둘 사이에 위치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양 손의 무기처럼

둘 모두 갖춘다면 좋겠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액티브한 행사(전시, 공연, 페스티벌 등)를 기획하고 추진하다 보면

정작 내 연구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년까지 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을 하다가

이 시점에서 변화를 주지 않으면

평생 박물관에서 매 끼니를 챙겨먹듯

타성에 젖은채 50대, 60대까지

고미술 전시만 하다가 늙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 공부, 즉 미술사 연구는 어차피 내가 알아서 잘 해나가면 되고

일은 일대로 다양함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미술사 전공자이지만,

현대미술, 디자인 전시도 할 수 있는 사람.

 

전통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무게 중심을 갖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미술계의 변화를 일로서 접근해보고 싶었다.

이게 성공할 수만 있다면

개념이 설익고, 너무 즉흥적이며,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벼운 현대미술 전시가 아니라

조금이나마 무게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이곳으로 와서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디자인 전시를 겪고 있다.

현재까지 겪어본 바 내린 결론은

자칫하면 공부에서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과

확실히 지금까지 해온 전시와는 관점, 스타일, 일 진행 방식 등이 다르다이다.

 

아직 뭐라 결론을 내릴 수 있을만큼

시간이 오래 지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일이 더 손에 익으면

앞으로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과 더 소통하고,

그들의 작업 세계에 대해 들여다 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미술사 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들의 작업에 덧입힐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소위 "미술사의 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중국계 교수가 있다.

우홍이라는 교수인데

중국미술사의 필독서 중 하나인 『순간과 영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주 전공은 한나라 화상석을 중심으로 한 고대 중국미술이다.

당연히 그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자이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가 또 현대미술계에서도

아주 명망 높은 비평가, 미술사학자로도

통한다는 점이다.

『작품과 전시』라는 책을 읽으면

이 사람이 고미술 전공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중국 현대미술을 아주 예리하고, 적확하게 해석한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호도하기 쉬운

현대미술을 정확한 시선과 논리로 해석했는데

이를 보며 '나도 하고 싶다!'라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가끔 직장에서 왜 박물관에서 나왔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들이 보기에도 의아스러울 정도로

나의 경력이 지금 직장에서는 좀 튀는 모양이다.

 

에둘러 "그냥 현대미술, 디자인 전시도 하고 싶어 왔다"고 둘러대지만,

실은 더 큰 욕심과 10년 후를 바라보고 움직인 것이다.

고미술, 특히 나의 전공인 동아시아 회화사 연구자로서도 열심히 연구하는 한편,

일에서는 현대미술 등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들 줄 아는 기획자? 큐레이터?를

한 번 해보고자 한다.

'안되면 그냥 미술사 공부하면 되지 뭐' 라는 마음으로 ㅎㅎ

 

 

p.s.

 

사진은 드디어 이번 주 토요일(7/24)에 오픈하는

이번 전시 속 설치 작품이다.

 

댓글 6
  • 태희 2020.07.22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업을 하면서 들인 시간이, 전시를 올린 후 찰나로 지나가는 관람자와의 거리감을 느끼는 것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습니다. 어쩜. 관람하는 분들이 제일 누리는 거란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 그쵸. 미술이 정말 좋다면 큐레이터도, 작가도 아닌 컬렉터를 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ㅎㅎ 그래도 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야 뭐..라는 생각이긴 합니다. ^^

  • 김용수 2020.07.24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십니다! 사람이란게 원래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인데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 모습이 대단하세요.

    • 에이 아닙니다. 그냥 지루할까 두려울 뿐이라 ㅎㅎ 그나저나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계시죠? 화이팅입니다 :)

  • 최서연 2020.10.08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진짜 대단하신것같아요! 응원합니다!

모두의 소장품 / 서울시립미술관

2020. 5. 30.

 

며칠 전 서울시립미술관 도서관에 자료찾을 일이 있어 출장을 다녀왔다.

가까운 곳에 미술관, 박물관들이 모여있으니 새삼 편하고 좋다.

평일 오전이어서 관람객은 거의 없었고,

온 김에 전시부터 보자는 생각으로 전시실로 들어갔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모두의 소장품> 전시를 하고 있었다.

1층은 미디어 아트 작품들이 많았는데

차분히 볼 시간은 없어 훓어보고 나왔다.

 

2층 전시에서는 전통 회화, 도자를 현재의 시점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많았다.

동아시아 미술사를 전공한 나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나중에 전시할 때 참고할 생각으로

금세 보고 나오리라는 생각은 금세 잊은채

작품들과 작가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나왔다.

 

 

2층 전시실 입구에 있는 전시 설명.

획이 끊긴 듯이 보이는 컷팅 글자들이 가독성은 낮지만

디자인적으로 괜찮아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홈페이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선의 끊김을 MI(Museum Identity)로 삼고 있는 듯하다.

 

암튼 전시 내용은 이러하다.

 

이수경, <이동식 사원 2008>, 2008

 

예전에 근대회화 전시를 할 때 깨달은 것인데,

유독 그 시기에 산 길을 걷는 나그네 등 인물의 뒷모습을 자주 그렸다.

스산함, 향토적인 풍경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그린게 아닐까?

그만큼 사람의 뒷모습만큼 쓸쓸함을 상징하는 것은 없을테니.

 

고려불화의 부처, 보살들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

막연한 상상으로 그린게 아니라 실제 전해지는 고려불화들을 기반으로 그린 것이다.

기법도 석채 등 최대한 고려불화 원작 기법에 맞게 그렸다고 한다.

뒷모습의 종교화라니.

불교 신자가 아님에도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주었다.

 

신미경, <트랜스레이션 : 청화백자 시리즈>, 2009-2013

 

처음에는 흔한 도자기를 복원하듯 만들어

고급스러운 좌대가 아닌 유물 박스 위에 놓음으로써

문화재란 무엇인가, 명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흔한 작품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싶어 작품 캡션을 보니

세상에..

이게 도자기가 아니라 비누로 만든 것이란다.

설명문에는 이렇게 써있다.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해석될 때, 아무리 정확하게 번역한다 해도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의미의 변화나 이해의 차이를 드러낸다."

 

가까이 가서 마스크를 벗었다.

비누향이 감돌았다.

 

마스크 얘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

SNS에서 떠도는 말 중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던 날들이 전생같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파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감각 중 2개를 차단한채

살아가는 요즘을 생각하면 기묘하고, 서글픈 느낌이 든다....

는 무슨.

 

필요한 때니까 쓰는거고, 필요없게 되면 안쓰면 되는거지 뭐. ㅎㅎ

이럴 때일수록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무던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어제부터 코로나19 때문에 다시 휴관에 들어갔는데,

다시 오픈하면 꼭 가까이 가서 마스크를 벗어보시길.

 

최해리, <무중력설죽하매한란사방위>, 2016

 

중국 원대 조맹견, 왕면 등 미술사에서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모티프로 삼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위치를 자유분방하게 배치한 작품이다.

원본과 복제라는 구분, 상위와 하위라는 위계가 사라진 지금의 문화를 보여준다.

 

나는 미술 작품의 위계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사라져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강의할 때 늘 예시로 드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이름 모를 아프리카 원주민의 토속 마스크를 놓고 본다면

어느게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드는가?

 

살아오면서 받은 교육의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다빈치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문화는 수평과 수직의 측면에서 고루 구분하여 봐야되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토속 마스크는 아프리카의 역사 · 민속사 측면에서 중요하다.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 역사 · 미술사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수평 즉, 다양성의 가치에서만 보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다 좋은 것이 된다.

이러면 미술 작품의 특징이 모호하게 된다.

 

반대로

수직의 측면, 즉 그 중에서도 조금 더 가치가 있는 것을 본다면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문화사에 기여한 점이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후 500여 년간 서양문화사의 트렌드를 바꿨고,

미술기법의 전형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술 문화에는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위계가 존재한다.

모든 것이 다 똑같이 가치있다는 생각은

문화의 퇴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처럼 생명력이 긴 음악이

분명 존재하는 반면,

언제 나왔는지도 모를 사라진 음악도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우리는 현재 평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성별, 나이, 경제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은 가치있는 존재라고 여기는,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까지는 옳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문화에도 강제 적용하는 것은 반대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문화의 위계를 억지로 없애려는 시도는

결국 문화의 무미, 무취, 그리고 무의미를 가져올 것이다.

 

최해리, <자서전>, 2016
최해리, <실재가 되지 않은 수선화라니>, 2016
최해리, <후사의 징후>, 2016
최해리, <훼>, 2020

댓글 0

미술관에 書 : 한국 근현대 서예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20. 5. 7.

"書者, 散也."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오는데 마지막 벽에 써있던 문장입니다. 중국 한나라의 채옹이 쓴 문장으로 직역하자면, "글씨는 흩뜨리는 것이다"는 의미이죠. 흩뜨리는 것의 대상은 마음입니다. 즉 글씨란 솔직한 마음을 풀어야 제대로 된 글씨라는 얘기입니다.

우선 이 전시는 근대의 서예가들의 작품부터 그들을 계승한 현대의 서예까지 전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럽 · 미국의 추상회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화용필동법(글씨와 그림은 붓 쓰는 방식이 같다), 서화동원(글씨와 그림의 근원은 같다)의 전통 위에 받아들여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이응노 등의 문자추상, 서체추상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술사적 의미가 깊은 작품들이 주를 이루지만, 서예의 필선을 재기발랄하게 펼쳐낸 작품들도 많아 '선의 향연' 속에서 안복(眼福)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안복(眼福)' 이런 말, 오글거려서 회피하는 편인데 어제 본 이 전시는 이 단어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더군요. ㅎㅎ

서체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섹션까지 총 4개의 전시섹션을 모두 보고 나오는 데 마지막 벽에 써있는 채옹의 "書者, 散也."를 의역한 "서는 내면의 정감을 토로하는 예술이다"는 문장을 보고 전시의 마침표를 잘 찍었다는 감탄을 하게 되었죠. 많은 작품들을 보고 나오던터라 자칫 머릿속이 와글와글해질 수 있던 차였는데 이 전시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보여주며 서예가 지닌 미적 가치의 근본을 다시 상기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에게 마지막 이 문장 누구 아이디어냐, 참 센스있고 전시 감상의 마무리를 잘 매조지을 수 있게 해주더라며 물으니 쑥스러워 하더군요. ㅎㅎ

코로나19로 전시 준비를 다 마쳐놓고도 휴관 상태에 있다가 어제 개막을 했습니다. 아직은 위험하기에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한 사람들만 관람할 수 있는데 예약이 어려운건 아닌 듯합니다. 신분증과 마스크는 필수이고요.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전시 디자인도 기존의 단조로운 화이트큐브형에서 벗어나 입체감있는 공간으로 꾸몄기에 전시실 다니는 맛도 좋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동아시아 서화 전통의 본령이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댓글 0

과거와 현재의 경계

2020. 5. 1.

 

처음 올라가 본 서울역 옥탑.

옛 모습과 현재의 건축 설비가 얼기설기 혼재되어 있다.
여기로 이직할 때 면접에서

"이곳의 전시를 보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서있는 느낌이 좋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경계를 관람객에게 보여주는게 내 큐레이팅의 목표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