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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단상/미술사 이야기

Art History...베르니니, 아폴론과 다프네, 1622-1625

2014. 3. 6.

 

Gian Lorenzo Bernini, <Apollo and Daphne>, 1622-1625, Marble, height 243cm, Galleria Borghese, Rome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 같아 보이지만 결국 별 반 차이 없는 감정선으로 나뉘어 있는게 아닐까. 첫 만남에서 상대방이 우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금세 다다를 것만 같고, 반대의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사랑과 사랑하지 않음은 사소한 차이에 기인한 것 같다. 특히 짝사랑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듯 하다.

   

마치 사랑에 빠지는 금화살을 맞은 아폴론과 사랑을 거부하는 납화살을 맞은 다프네 같이 말이다. 아폴론은 어느 날 활을 가지고 놀고 있던 큐피드에게 어린 아이가 가지고 놀 것이 아니라며 활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자 큐피드는 자신을 무시한 아폴론에게 그래도 내 화살은 당신의 가슴을 꿰뚫을 수 있다고 자신하며 아폴론에게는 사랑에 빠지는 금화살을, 숲의 요정 다프네에게는 사랑을 거절하는 납화살을 쏘았다.

   

금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다프네를 보자마자 사랑의 감정이 불 끓듯 끓어올랐고, 다프네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그런 아폴론을 거절하였다. 금화살의 힘에 사로잡힌 아폴론은 주체하지 못한 사랑의 감정을 분출하며 다프네를 쫓기 시작하였고, 다프네는 반대로 아폴론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다녔다.

   

결국 아폴론에게 붙잡힌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이오스에게 소리쳤다. 땅을 열어 자신을 숨겨주던가,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바꿔달라며. 그 순간 다프네는 온 몸이 나무 껍질로 뒤덮이며 월계수로 바뀌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아폴론은 월계수를 자신의 성수(聖樹)로 삼아 금관 대신 월계수로 만든 관을 쓰겠다고 하였고, 이 때부터 월계수는 아폴론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큐피드의 어떤 화살에 맞았느냐는 지극히 단순한 차이로 인해 우리들은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하고, 무관심해지기도 한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그 열병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건만... 그러나 사랑이란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만큼 인간이 지닌 감정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게 아닐까.

 

댓글 2
  • soo 2014.03.08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서양사에서 신화에 얽힌 이야기는 재미있는 것 같네요. 베르니니 조각에 얽힌 이야기를 아르뜨님의 감성으로 해석하신 글 흥미롭게 잘봤습니다:)

Art History...에두아르 마네, 발코니, 1868

2014. 3. 2.

 

Edouard Manet, <The Balcony>, 1868, Oil on canvas, 170×124cm, Musee d'Orsay, Paris

 

근대화가 한창 진행되어가던 1868년 어느 날,

파리의 거리는 언제나 활력이 넘쳐 흘렀다.

제국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파리는 급속하게 발전해갔고,

파리 시민들의 일상도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파리의 뒷 골목은 여전히 할렘을 이루고 있었고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져가기만 했다.

따라서 파리 거리에는 알듯 모를듯

은밀하게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파리 시민들은 풍요로운 일상을 누리는 것만큼

대도시 특유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두아르 마네는 이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그림들은 <The Balcony> 속 인물들처럼

화려한 부르주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눈은 한 없는 공허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을 뜬 채

각기 다른 곳을 응시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겉만 화려해져 갔던 파리 특유의 공허함을 상징하는 듯 하다.

 

마치 토이의 <A Night in Seoul>을 들으며

한 밤 중의 한강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원문 : http://bit.ly/ONf0QV)

 

댓글 1

Art History...클로드 모네, 까미유 부인의 죽음, 1879

2014. 2. 21.

요즘 네이버 포스트에 작품에 대한 감상을 한 편씩 올리고 있습니다.

글의 호흡은 짧게, 사실에 바탕을 두되 최대한 느낌 위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네이버 포스트에 올린 글들은 블로그에도 올릴께요.

그림에 대한 느낌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Claude Monet, <Camille on her Death Bed>, 1879, Musée d'Orsay

 

1879년, 모네는 자신의 아내이자

이상적인 모델이 되어주었던 카미유를 떠나보냈다.

임종을 지켜보던 모네는 아내가 점점 생기를 잃고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나보다.

 

창백한 블루톤으로 칠해진 그녀의 모습.

하지만 마지막 삶의 희망을 지켜주려는 듯

그림 오른쪽에서 살포시 내려 앉는 스탠드의 따뜻한 불 빛.

 

하얀 드레스를 입고, 모네와 함께 야외로 나들이를 갔던

생기발랄한 아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녀는 모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채 침대 속으로 사라져갔다.

 

(원문 : http://bit.ly/1bQNtIz)

 

댓글 2
  • 야간비행사 2014.02.22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잡아낸 모네...
    이제 영원히 모네의 곁을 떠나려는 카미유의 마지막 모습을 잡으려는 듯...
    순간에서 영원으로...

  • starrysky 2014.02.25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년 오르세전에 왔던 작품이네요..
    마음에 담게 되는 그림 중 하나였어요..
    이 그림 앞에서 아무말 없이 서있다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 그림들

2014. 1. 21.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뉴욕 MoMA


1888년 2월, 반 고흐는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프로방스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프로방스 특유의 온화한 날씨와 자연을 접한 반 고흐는 컬러와 명암의 대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자신만의 컬러 체계와 화풍을 확립할 수 있었고 프로방스 아를에서 본 화려한 풍경과 꽃, 열매, 나무, 전원 생활 등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반 고흐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그림들 중 저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불우한 천재였던 그가 그린 '나무' 그림들 위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는 반 고흐가 사랑한 동생 테오 부부의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즉 이 그림의 의미는 '새로운 생명'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은 유명한 화가가 된 반 고흐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단 한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할 정도로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이 그림마저도 이발을 해준 대가로 지불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반 고흐는 누구보다 '생명'에 대한 감탄과 경외를 표현했던 화가였습니다. 그에게 자연이란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이 그림에서는 반 고흐가 태어날 조카에게 느끼는 새로운 생명에 대한 감격이 단아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워 실제로 꽃이 피어나고 있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꽃 핀 아몬드 나무(Almond Tree in Blossom), 1888,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다른 버전의 <꽃 핀 아몬드 나무>입니다. 위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와 마찬가지로 그림의 표현 방식이 일본 그림을 연상케합니다. 반 고흐가 활동하던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는 일본 우끼요에(우끼요에=일본 목판화)가 매우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반 고흐 역시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와서 지내는 동안 일본 우키요에에 매료되었었죠.


일본 우키요에는 반 고흐에게 파격적인 구도와 새로운 각도에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습니다. 포장지로 사용된 일본 우키요에를 버리지 않고 벽에 붙여놓을 정도였다고 하니 우키요에에 대한 반 고흐의 애정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

 

꽃 핀 복숭아 나무(The Pink Peach Tree), 1888,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이 작품은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아마 내가 그린 풍경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풍경화가 될 것 같다." 라고 썼을 만큼 매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제 막 봄 기운을 느끼고 피기 시작하는 복숭아 꽃은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 전반적으로는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준 안토 모베가 죽은 뒤 그의 부인에게 선물하였다고 합니다. 그림의 왼쪽 하단에는 '모베를 추억하며' 라는 짧은 문구와 그의 서명이 있습니다.

 

싸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Road with Cypresses), 1890, Oil on canvas, Kröller-Müller Museum

 

최근에는 옆으로 별 하나가 보이는 실편백 나무 그림을 그리고 있네.눈에 뜨일락말락 이제 겨우 조금 차오른 초생달이 어두운 땅에서 솟아난 듯 떠 있는 밤하늘, 그 군청색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그 사이로 과장된 광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있네.

 

 분홍색과 초록의 부드러운 반짝임이지. 아래쪽에는 키 큰 노락생 갈대들이 늘어선 길이 보이고 갈대 뒤에는 파란색의 나즈막한 산이 있지. 오래된 시골여관에서는 창으로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그리고 아주 키 큰 실편백나무가 꼿꼿하게 서 있네.

 

 길에는 하얀 말이 묶여 있는 노란색 마차가 서있고, 갈 길이  저물어 서성거리는 나그네의 모습도 보인다네.

아주 낭만적이고 프로방스 냄새가 많이 나는 풍경이지.

-1890.06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영혼의 편지)


1889년 5월부터 일년 가까이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반 고흐에게는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희망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 만이 그의 깊은 절망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삶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창조에 열정에 사로잡힌 심리 상태를 대변하듯이 매우 격렬한 느낌을 줍니다.

 

<싸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은 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꽃 피는 나무를 표현한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밝고 가슴 속에 나비가 날아 오르는 듯한 설레임을 느끼게 해준다면 이 그림은 다소 거칠고 혼란스러운 반 고흐의 내면을 보는 듯 합니다.


'검은 불꽃'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그림은 고흐가 아를의 저녁 풍경에 얼마나 도취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반 고흐는 싸이프러스 나무에 애정을 넘어선 집착을 보였다고 하는데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놓은 책인 영혼의 편지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싸이프러스가 줄곧 내 생각을 사로 잡고 있어. 지금까지 내가 본 방식으로 그린 사람이 하나 없다는 것이 놀라워. 싸이프러스는 그 선이나 비례해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만큼 이나 아름다워. 그리고 그 녹색에는 아주 독특한 특질이 있어. 마치 해가 내리쬐는 풍경에 검정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데, 아주 흥미로운 검은 색조라고 할 수 있어. 정확하게 그려내기가 아주 어렵지."

 

실제로 반 고흐는 작품 속에서 '싸이프러스 나무'라는 주제를 과하다 싶을 만큼 핵심적 주제로 사용했습니다. 반 고흐는 그림을 그릴 때 자연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림의 언어라기보다는 자연의 언어이다." 라는 그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을 향한 반 고흐의 관심은 일생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댓글 3
  • Eunhye Park 2014.01.21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흐 탄생 160주년에 발 맞게 고흐를 소개하는 센스!
    맞아요.. 보통 고흐 그림 하면 자살이라는 극적인 생의 마감 때문에 죽음의 이미지가 강한데
    사실은 누구보다 생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화가죠..목사님이 되려고 했던 시절도 있었고요..
    그러나 역시 고흐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려면 제시해 주신 그림들을 잠자코 봐야 할 것 같네요.
    술에 취하지 않은 담담한 삶의 눈으로..

  • 한재선 2018.04.12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정하고 존경하는 반 고흐의 특히나 아름답고 생각하는 나무를 집중조명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분이 선택한 색채와 붓 터치감을 정말 좋아해요. 그의 나무 그림들을 보면 그 가지와 잎사귀에서 특히 생명력이 넘치는 것 같아요.

    • 반 고흐의 작품세계에서는 역시 나무에 깃든 상징성 같아요. 그 표현도 그렇고요. 생명력이 분출하죠. 때로는 사그라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요 :)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폴라로이드 사진

2014. 1. 2.


<Andy Warhol with Camera>, 1974, Oliviero Toscani


Isn't Life a series of images that changes as they repeat themselves?

인생은 스스로 되풀이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의 연속이 아닐까?


-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특별한 부연 설명이 없어도 될 정도로 한국에서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오늘 저는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앤디 워홀의 폴로라이드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아르뜨님의 앤디워홀 관련 트윗을 보다가 최근에 읽은 가디언』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 중 세간에 한번도 공개된 적 없던 300점의 데생 작품을 공개한다는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Andy Warhol's unseen early drawings unveiled next week). 이제는 작년이네요. 이 기사는 2013년 1월에 올라왔던 것입니다. 혹시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한국에도 같은 내용으로 올라온 기사를 첨부해드립니다(☞ 앤디워홀 '미공개' 데생 300점 무더기 공개)


<Andy Warhol with Camera>, 1974년경


앤디 워홀하면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 마릴린 먼로, 캔들, 통조림, 바나나 등 여러 오브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아래에 제가 보여드리는 사진들은 1970년부터 1987년의 기간동안 앤디 워홀이 왕족, 운동선수, 뮤지션 등 그와 교유를 맺었던 인물들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중 그의 셀카입니다. 즉 앤디 워홀의 자화상인거죠. 그가 생전에 스스로 모델이 되어 찍은 사진들을 중심으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Andy Wahol, <Self Potraits series>, 1977




<Andy Warhol Self-Portrait in Drag(Platinum Pageboy Wig)>, 1981


<Andy Warhol Self-Portrait with Skull>, 1977


가발을 쓰고 붉은색 립스틱을 칠한 앤디 워홀의 모습을 낯설다 못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워낙에 특이하고 기발한 그의 그림들을 봐왔던터라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는 알고 있었지만 보는 이에 따라 충격적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그의 팝아트적인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몽환적이고 마치 오래된 초상화 처럼 보입니다. 폴라로이드 사진의 특성때문에 더 뚜렷하게 부각되는 메이크업과 사진을 보는 이를 뚫어질 듯 바라보는 그의 눈은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듯 합니다. 참고로 마지막 사진의 해골과 함께 찍은 앤디 워홀의 사진은 해골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찍은 다른 버전도 있습니다.


<Caroline, Princess of Monaco>, 1983


미국 버클리 대학 미술관은 2012년 1월 27일부터 5월 20일까지 앤디 워홀의 비공개되었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그 중 하나인 모나코 공주인 캐롤라인의 사진입니다. 다른 사진도 많지만 저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반해 많은 사진 중 그녀의 사진만 눈에 띄더군요. 앤디 워홀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보면 피사체에서 가장 피사체다운 모습을 끌어내려고 했던 노력이 보입니다.


앤디 워홀은 피사체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포즈나 표정을 위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사진의 분위기를 위해 사진을 찍기 전 피사체가 되어 줄 인물들과 저녁식사를 같이하며 친밀한 분위기를 미리 형성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앤디 워홀과 사진 속 인물들의 개인적인 관계를 생각한다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타이트한 프레임의 사진이 아니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저도 앤디 워홀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그의 잘 알려지지 못했던 작품들을 보며 앤디 워홀과 한 걸음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매번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포스팅할 때마다 '내가 과연 그들이 생존했던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들의 작품을 보고 지금 현재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앤디 워홀은 왠지 그 시대의 '괴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잘 알려진 그의 명언 중 "Be famous! and They will give you tremendous applause when you actually pooping.(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쳐줄 것이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천둥 벌거숭이'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된 앤디 워홀.

괴짜도 앤디 워홀같은 괴짜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p.s. 앤디 워홀의 폴라로이드 사진 ☞ Andy Warhol: Unseen Polaroids from 1970 to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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