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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단상/미술사 이야기

영화 <her>를 보니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떠오른다.

2014. 6. 26.

 RAFFAELLO Sanzio, The School of Athens, 1509, Fresco, width at the base 770 cm, Stanza della Segnatura, Palazzi Pontifici, Vatican

 

영화 <her> 를 보고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이 떠올랐다.

 

영화 <her>는 주인공 시어도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지는 얘기이다. 다시말해 그는 컴퓨터 속에 사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와의 달콤한 대화도 다정한 그녀의 목소리도, 그녀에 대한 그의 확실한 감정도 그녀의 몸이 실재하지 않음에 좌절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보자. 소실점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두어 시선을 집중하게 하였다. 플라톤은 저기 먼 높은 이데아를, 소크라테스는 '지금 여기'를 가리킨다. 굳이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육체와 정신의 우위를 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육체가 없으면 정신을 담을 그릇이 없고, 육체가 있더라도 정신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결국 인간은 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성, 행동과 감정이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그녀 (2014)

Her 
8.5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루니 마라, 에이미 아담스, 올리비아 와일드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미국 | 126 분 | 20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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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미륵반가사유상을 보면 그리스 로마 조각상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초월성이 느껴진다.

2014. 6. 17.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표현한 여러 모델의 조각들을 접해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상, 로마시대의 뛰어난 조각, 기독교적 사랑을 표현한 조각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각들에는 아직 완전히 초극되지 않은 어딘지 지상적인 감정과 인간적인 자취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성과 미의 이데아를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신상도 로마시대 종교적인 조각도 인간 실존의 저 깊은 곳까지 도달한 절대자의 모습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미륵반가상에는 그야말로 극도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지상의 시간과 속박을 넘어서 달관한 인간 실존의 가장 깨끗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날까지 몇십년간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 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불상은 우리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평화의 이상을 실로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3, p. 27-28 재인용.

 

우리나라 최고의 불상으로 대개 석굴암 본존불상과 국보 83호 미륵반가사유상을 꼽는다. 두 작품 모두 신라의 불교미술품으로 이상적인 사실미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일본의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류지(廣隆寺) 목조미륵반가사유상 역시 신라가 일본에 선물로 준 작품으로 추정된다. 일본에 없는 적송으로 제작된 점, 국보 83호 미륵반가사유상과 양식상 유사한 점 등을 이유로 말이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마인드도 여느 한국의 젊은 사람답게 철저히 서양적이다. 좋아하는 미술도 서양미술이다(전공은 동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륵반가사유상을 보면 인간성을 초월한 신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이 땅 위에 안치된 것 자체가 이 조각상들을 욕보이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 이유는 이런 내게도 수 천년간 형성되어 온 한국적 DNA(유교, 불교, 도교에서 비롯된)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즉 나의 껍데기가 아무리 서양적이라 해도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서 비롯된 철저한 한국성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스, 로마의 조각들을 보면 마치 조각같은 현대 이탈리아 남자들을 보는 듯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이지, 그리스, 로마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신성성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인체의 극사실적인 표현 때문으로 생각했었는데, 카를 야스퍼스 역시 같은 것을 느꼈나보다.

 

오늘 그동안 별러왔던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교토편을 읽고 있는데 역시 명쾌하고 일본사에 대한 그 어느 책보다 재밌다. 이런 책을 보면 단순히 Job으로서 미술사를 선택하는게 아니라 진짜 학문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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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세상에 실망하고, 세상을 등지고 싶은 문인의 마음이 잠 자는 새로 표현되다.

2014. 6. 6.

조지운, <숙조도>, 1637년, 종이에 수묵, 50X78cm, 개인소장

왜란과 호란으로 인해 전국토가 황폐화되었던 조선 중기.
설상가상으로 당쟁까지 심화되던 그 시절.
문인화가 조지운(1637-?)은 잠자는 새를 그림으로써
세상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표출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마 마음 한 켠이 좀 누그러졌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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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달을 바라보는 소년 : 박노수, 류하(柳下), 1980

2014. 3. 31.

박노수, <류하(柳下)>, 화선지에 수묵담채, 1980, 179×97㎝


해가 지고 달이 뜬다.

낮이 가고 밤이 온다.

달이 뜨는 밤이 오면

수 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머리 속을 떠돈다.

 

한국화의 1세대로 불리는 박노수(1927년~2013) 화백의 작품,

<류하(柳下)>.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년은

길게 늘어선 청색과 녹색의 버드나무 잎 사이에서

노란 달을 바라본다.

 

작가의 감정이입 대상이기도 한 고고한 이상을 지닌 소년.

두 팔을 살짝 내려놓고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소년도

나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 꿈과 희망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달을 친구 삼아 말하고 있는 것일까.

 

4가지의 색으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세상에 어둠이 내려왔을 때 버드나무 잎 속에서

밝은 달을 보는 소년의 옆모습이 슬프다.

 

밤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대신

이 그림을 선물하고 싶은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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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신>, 왜 민화를 차용했을까?

2014. 3. 30.

영화 <만신> 포스터

 

영화 <만신>은 중요무형문화재인 김금화의 생애를 다룬 판타지 다큐멘터리이다. '만신'이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단어이다. 필자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기대감이 가득 찼다. 포스터가 민화의 종류인 <문자도>의 모습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영화 <만신>에 관한 평가 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은 "전통 민화를 차용하여 애니메이션화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영화 <만신>에 녹아든 민화의 의미와 차용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화란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를 의미한다.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서민들의 작품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즉 서민들의 삶의 관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고 있는 그림이기에 정답고 친숙하다. 그림의 주제는 행복 · 부귀 · 장수 · 다산 등을 바라는 길상적인 내용이 많으며 밝고 발랄한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영화 <만신>은 해와 달 그리고 굽이치는 파도의 이미지를 전통 궁중회화에서 차용하여 애니메이션화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해와 달은 음양의 근원이며 우주의 핵심이다. 해는 임금을 상징하고 달은 왕비를 상징한다. 이를 담은 <일월오봉도 병풍>은 조선시대의 왕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어좌 뒤에 설치되었다. 또한 야외 행사 때에도 왕의 자리는 이 병풍으로 장식되기도 하였다.

 

김금화의 내림굿 장면에서는 부리부리한 인상과 신비스러운 모습의 신선들을 그린 신선도, 털 짐승의 우두머리로서 병을 막고 악귀를 쫓는 영험한 짐승 호랑이를 그린 민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 제목 캘리그래피에 차용되고 충효나 삼강오륜의 교훈적 의미나 글자를 통해 소망을 이루고자하는 의도를 지닌 문자도까지 민화는 영화 곳곳에 등장하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조선시대 문자도의 유행, 글자도 예술이다)

 

 

영화 <만신>에서 민화를 차용한 이유?

 

민화는 생활화로 혼례, 회갑, 생일잔치 등 여러 목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다. 생활 속에서 쓸모가 많던 민화는 수요도 많았다. 많은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그림 공부를 제대로 한 적 없는 서민들이 민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민화는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자유분방하고 솔직하며 틀에 얽매지 않은 그림이다. 오랜 시간동안 주도 계층의 신분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민화는 저급 문화로 치부되며 폄하되었다. 하지만 서민들의 삶과 시대상을 가장 가까이 반영한 그림이기에 미적 공감대가 폭넓고 누구라도 좋아할만한 그림이 민화이다.

 

바로 이 점에서 민화는 민속 신앙과 맞닿아 있다. 민화, 민속 신앙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미신을 믿고 허무맹랑한 '굿판'을 벌이는 것을 저속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민속 신앙을 무시하는 반면에 거사를 앞두고 집안의 평안을 빌고자 할 때는 남몰래 무당에게 굿을 의뢰하기도 하였을 정도이다.

 

 

영화에서 민화를 차용한 또 다른 이유는 민화의 상징에 있다.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는 부귀를 상징하고, 수 많은 물고기를 그린 어해도는 다산을 상징한다. 영화 포스터에 쓰인 문자도는 글자 자체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기에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적었는데, 그 예로 효(孝)자를 그린 문자도는 효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믿음에서 사용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문자가 대상 자체를 대신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현재 우리들이 연인과 이별한 뒤에 그동안 함께 찍었던 사진을 찢어 버리고, 주고받은 선물을 버리는 행동들이 흔적이 사람을 대신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런지.

 

김지평, <만신 포스터 영문 문자도>, 옻칠장지 위에 안료와 먹, 60×90cm, 2014

 

김지평, <만신 포스터 한글 문자도>, 옻칠장지 위에 안료와 먹, 32×60cm, 2014

 

어쩌면 영화 제목 '만신'이라는 글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 민화와 민속 신앙의 역사와 의미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문자도로 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서민들 곁에서 존재 자체로 위로와 소망이 되어주는 그림이었던 민화 만큼이나 한을 풀어주고 복을 기원하는 민속 신앙과 성격이 비슷한 장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만신>은 한판 굿을 통해 만신 김금화의 생애와 그를 통한 한국의 현대사를 보여준다. 또한 민화와 민속신앙에 대한 재조명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아름답고 한국적인 전통 민화가 다양한 변용과 차용을 통해 현재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되어 서구화 된 일상속에서 한 송이 금화(비단 꽃)가 되어 피기를 바란다.

 

댓글 6
  • 재미있어요!! 영화를 보고 글을 읽으니 제가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을 볼 수 있네요!!

    • 영화를 혼자 집중해서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같이 보고 서로 좋았던 장면 주목 했던 장면을 함께 나누는 것도 큰 재미 인것 같아요. 전 마지막 쇠걸립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였거든요. 사라진 공동체의 의미와 김새론양의 연기가 뭉클하더라구요. 댓글 덕분에 좋은 영화를 또 다시 곱씹어봅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 문자나 물건이 대상을 대신한다는 거 흥미롭네여~ㅎ 만신...아직보지않았는데 기대되요^-^

    • 문자나 물건이 대상을 대신하는 것을 크게 보면 하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랑의 상징으로 반지를 주고 받으며 영원을 약속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 부분을 공감해주시고 흥미있게 봐주시니, 저와 아주 잘통한 것 같습니다. 영화 지금은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보셨다면 좋은 기대감이 만족으로 바뀌셨길 바랍니다.

  • 이똥이 2014.03.31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보고싶어지네요 ^.^ 기대됩니당

    • 저도 영화가 상영되고 시간이 흐른뒤에 본거라 혹시 상영이 끝났을까 혼자 조마조마 했답니다. 영화 <만신> 인기가 대단하여 아직 상영하고 있네요. 영화라는 장르가 취향이 많이 반영되고 개인적 경험과 생각이 평가에 많은 영향을 주는지라 영화 추천을 하는게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