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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단상/미술사 이야기

하늘 빛 청자

2014. 10. 7.

<청자동녀형연적>, 12세기,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 맑은 하늘 빛이 산뜻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하늘 색의 미묘한 아름다움은

곧잘 청자의 푸른 빛깔에 비유되어

'우후청천색(雨後晴天色)'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무심코 고려 청자의 이 푸른 빛을 들여다 보노라면

정말 비 갠 후의 먼 하늘처럼 마음이 한결 조용해진다.


마치 고려 사람들의 오랜 시름과 염원,

그리고 가냘픈 애환을 한꺼번에 걸러낸 것만 같은 푸른 빛.


으스댈 줄도, 빈정댈 줄도 모르는

그리고 때로는 미소하고, 때로는 속삭이는

또 때로는 깊은 생각에 호젓이 잠겨 있는

이 푸른 빛이 자랑스러워

고려 사람들은 '비색(翡色)'이라고 이름지어 불렀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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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받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2014. 10. 6.

유명 작품들을 본다는 들 뜬 마음으로 오르세미술관에 들어왔다가

자신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동받는 빈센트 반 고흐.


닥터 후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한 에피소드로 나왔던 반 고흐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께요. 반 고흐가 어떤 일을 계기로 현대에 오게 되었는데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오르세미술관에 갔다가 상처받았던 마음이 치유되고 세상과 자아에 대한 불신이 녹으면서 결국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답게 우리는 반 고흐가 내면에 상처를 입었고, 죽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불우하게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요. 반 고흐가 평범한 사람들처럼 세상에 따뜻함을 느끼고 기뻐했던 때는 자신의 조카가 태어났을 때가 유일했을 것입니다.

큐레이터가 반 고흐는 세계 최고의 화가이자, 세계 최고의 한 사람이라고 하자

결국 눈물을 흘리는 빈센트 반 고흐.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반 고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세상과 대립각을 세운채 힘겹게 삶을 살아갔고, 그 과정에서 받은 내면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공감한다는 말과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반 고흐가 자신이 죽은 후에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안심이 되고 그림을 통해 그에게 받기만 한 감동을 조금이나마 돌려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반 고흐에게 마음의 빚을 덜었다고나 할까요? 비록 동영상 속 이야기가 픽션이고,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그동안 우리들은 반 고흐의 작품을 향유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픽션을 통해서나마 그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하는 것을 보니 인간이란 본래 따뜻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지네요. 아래 영상을 보여준 제 지인들 모두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p.s. 아래 영상은 드라마에 나오는 OST입니다. 처음 알게 된 그룹인데 음악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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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음악으로 휴식을 취한 화가

2014. 8. 23.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많은 사람들은 본업이 아닌 취미 생활이나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내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할지 영 감이 안잡히기도 한다. 우리가 시간의 주인이 아닌 시간의 대리인으로 살아 가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목적있는 배움이나 투자가 아닌 즐기기 위한 시간들이 사치스럽다고 느끼는 것같다. 하지만 나의 선택에 의한 시간은 큰 의미를 갖는다. 자유의 시간은 현실의 골칫거리는 생각나지 않고 일종에 황홀경에 빠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한다. 또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한다. 이처럼 멋진 '딴 짓'에서 나오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영, 정조의 문예부흥기에 시 잘 짓고, 글 잘 썼던 화원이 있었다. 18세기 조선 예원의 총수 표암 강세황은 "음률에 두루 밝았으며 거문고, 젓대며 시와 문장도 그 묘를 다하여 풍류가 호탕하였다"고 「단원기」 에서 적었으며,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성대중은 그의 퉁소 연주 솜씨를 듣고 신성을 연상케 할 만큼 걸출한 것이라 감탄하였다. 그가 바로 <씨름>과 <무동>처럼 조선적인 토속미 넘치는 풍속화를 그린 화가 김홍도이다.


단원 김홍도는 실제로 음악의 대가였고, 빼어난 시인이었으며, 또한 일찍부터 평판이 높았던 서예가 였다. 이를테면 그는 시서화 삼절에 음악까지 더하여 시서화악 사절이라는 없던 말을 지어서 형용해야 할 인물이었던 것이다. 김홍도는 그의 그림에서처럼 음악에도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가 농익게 배어나게 하였다. 


김홍도, 단원도, 종이에 수묵 담채, 78.5 x 135 cm, 개인소장


단원 김홍도가 자신의 집에서 가졌던 조촐한 모임을 회상하여 그림 <단원도>를 보아도, 김홍도는 우리 겨레만의 고유 악기인 거문고를 타문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자화상적인 성격이 매우 짙은 <포의풍류도>에는 당비파라는 점잖은 악기를 뜯는 모습을 그려져 있고, 비슷한 성격의 또 다른 작품인 <월하취생도>에는 맨발 차림으로 생황을 부는 소탈한 모습의 인물이 보인다. 그 밖에도 신선도나 풍속도를 막론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을 그린 작품은 여타 화가에 비하여 단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오주석,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 pp. 108-112


김홍도, 포의풍류도, 종이에 수묵 담채, 27.9 x 37 cm, 개인 소장


김홍도, 월하취생도, 종이에 수묵 담채, 23.2 x 27.8 cm, 간송미술관 


문인들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여기로 그렸던 그림이 도화서 화원인 김홍도에게는 일이었다. 조선의 천재 화원에게도 탈출구이자 해우소가 필요 했을 것이다. 음악과 시짓기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퉁소를 불고 음악을 즐기는 일의 수준이 아마추어 이상의 대가의 수준이었다는 기록에 의하면 그만큼 김홍도가 음악에 열중한 많은 시간을 짐작해 볼 수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하는 책 사이에 껴서 읽는 것만큼 재밌을 때가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짜릿한 시간이 없으리라. '쉼'이 저당 잡힌 자유를 회복하는 시간이라 짧고 소중한 것 같다. 강신주 철학 박사가 자유에 대해 집약적으로 자신의 책에서 역설한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진정한 자유라는 건 선택지 자체를 자기가 만들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 

강신주, 『강신주 다상담 3』, p.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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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조각상들의 셀카 모음

2014. 8. 18.

The Fighting Gladiator, 1816, 162×98×66cm, Italian School Plaster cast from the roman copy in the Vatican Museum


그리스, 로마 미술을 생각하면 특유의 장엄함이 떠오를 것입니다. 더불어 더 이상 완벽할 수 없을 정도의 육체미와 콘트라포스토 자세에서 우러나오는 당당함 때문에 어떤 이들에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같은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고대 올림픽 우승자들을 칭송하기 위해 그들의 조각상을 만들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리스, 로마 조각상 제작의 이유는 본래 최고의 인체미를 통한 신의 이미지 창출이었습니다. 인체의 비례를 가장 완벽한 비례로 여겼던 그들에겐 당연한 제작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미지의 원천이 인간에 있었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흘러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 인간적인 감정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조각상들이 유행하게 되면서 그리스 조각상들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될 것 같은 고고한 표정이 사라지고,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다양한 포즈와 표정, 모두 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 조각상은 사실적인 인체 표현 때문에 본래 의도했던 신의 이미지가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과 재기 넘치는 이미지들이 각광받는 요즘, 그리스 로마 조각상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사진도 나왔습니다. 다름아닌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의 셀카이지요.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이 셀카를 찍는다면?






셀카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일직선의 팔입니다(요즘은 셀카처럼 안보이게 해주는 셀카봉도 나왔다고 합니다만). 셀카를 찍으면 팔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이 정말 셀카를 찍은 것으로 생각하고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이지 않나요? 괴로워하는 표정에선 삶이 너무 힘겹고, 세상에 대한 근심으로 고뇌에 차 있는 중2의 셀카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ㅎㅎ


근엄하기만 한 그리스 로마 조각상에서 어떻게 이런 발상이 나왔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센스를 지닌 사람들, 정말 부럽습니다. 펜을 잡았는데 어느새 멋진 스케치를 완성하는 사람이 부러운 것처럼 말이죠. 종종 이런 센스 넘치는 이미지들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


☞ 원문 http://www.whudat.de/statues-taking-selfies-at-crawford-art-gallery-in-cork-ireland-4-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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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로댕, 아스라한 카미유 클로델

2014. 7. 25.

오귀스트 로댕, 지옥의 문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 <스펙트림-스펙트럼>전을 보러 다녀왔다. 플라토 미술관은 1991년 로댕컬렉션을 상설전시한 이후 로댕갤러리로 시작하여 2011년 5월 플라토 미술관으로 재명하여 재개관 하였다. 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과 <깔레의 시민>의 에디션이 있는 한국에서 유일한 전시공간이다.

 

로댕의 작품은 기대이상이었다. 비애와 고통을 호소하는 절규에 찬 인물상들이 빼곡하게 배치되어 통렬하게 울부짖고 있었고 오를 수 없는 고지를 오르며 하강하는 이미지는 안타까웠다. 문 맨 꼭대기 중간에 익숙한 조각인 각하는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있었다.

 

홍대 앞에만 해도 로댕의 이름을 딴 여러 미술학원들이 있고, 지옥에 문에서 차용되어 독립의 입상으로 만들어진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대표작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로댕의 연인, 로댕의 조수. 로댕의 협력자, 뛰어난 여성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이름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카미유 클로델은 누구이며, 로댕과 어떻게 만났을까? 또 그녀는 로댕과 만나면 안될 연인이었을까?


  카미유 클로델은 거물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아름답고 재능 넘치는 조수로 시작해, 훗날 그의 연인이자 영감의 원천, 그리고 친밀한 협력자가 되었다. 카미유 클로델은 미술 공부를 하러 1881년 파리로 왔다. 이때 로댕은 이미 성공한 조각가였다. 그녀는 스물여섯이었고 그는 마흔이었다. 두사람은 연애를 시작했다. 로댕은 집에서 쫓겨난 끌로델에게 작업장을 제공하고 그녀를 일터로 데려와 무보수로 조수 겸 모델로 썼다. 

 

  사람이 함께한 10년 동안 클로델은 로댕을 도와 주문받은 중요한 작품들을 함께 완성했고, 자신의 역작들도 창조했다. 그들의 조각은 선명한 성애를 표현했고, 이를 기반으로 로댕은 근대 미술사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똑같은 성적 표현이 여성의 작품에서 드러나면 충격적이고 외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때문에 카미유 클로델은 더이상 주문을 받을 수 없었다.

 

  이 지나면서 클로델은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고, 두 사람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도 꺼리는 로댕 때문에 힘들어했다. (불행하게도 로댕에게는 20년간 사귄 연인 로즈 뵈레가 있었다.) 결국 클로델은 로댕과 헤어졌다. 로댕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가는 반면 끌로델은 점차 세상에서 잊혀 쓰라린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클로델을 부양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그녀의 오빠는 클로델을 정신병동에 넣어버렸다. 클로델의 어머니는 딸과 말을 섞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그녀는 죽기 전까지 30년의 세월을 정신병동에 갇힌 채 쓸쓸히 보냈다. 현재 로댕은 미술사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끌로델은 세련된 프랑스 영화에 등장한 희생자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다.

게릴라걸스(우호경 옮김), 『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p.102-103


영화 카미유 끌로델

 

『그림보다 아름다운 그림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그 책의 제목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야기라는 책을 쓴다면 오귀스트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를 실어야 하지 않을까? 미술사에서 우뚝솟은 대가들은 작품이외에도 개인사에 대한 연구와 여러 관심에 대상이 된다. 나도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인연은 알았어도 그녀의 작품은 잘 알지 못했다. 이번 기회를 비롯하여 그녀의 작품을 천착하여보았다.

 

내가 작품을 평가하고 논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소양과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은 로댕의 작품과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로댕의 연인이라는 이름보다 조각가로서의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이 그녀의 진정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끝으로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을 소개한다. 카미유의 작품들 중 상당수는 그녀 손에 의해 파괴되어 온전하게 남아있는 작품이 많지 않는 것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Camille Claudel, The Waltz. 1895, Bronze, height 43cm, Musée Rodin, Paris


Camille Claudel, The Age of Maturity(성숙기), 1898, Bronze, 114x163x72cm, Musée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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