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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단상/미술사 이야기

영화 <her>를 보니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떠오른다. 영화 를 보고 라파엘로의 이 떠올랐다. 영화 는 주인공 시어도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지는 얘기이다. 다시말해 그는 컴퓨터 속에 사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와의 달콤한 대화도 다정한 그녀의 목소리도, 그녀에 대한 그의 확실한 감정도 그녀의 몸이 실재하지 않음에 좌절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보자. 소실점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두어 시선을 집중하게 하였다. 플라톤은 저기 먼 높은 이데아를, 소크라테스는 '지금 여기'를 가리킨다. 굳이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육체와 정신의 우위를 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육체가 없으면 정신을 담을 그릇이 없고, 육체가 있더라도 정신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결국 인간은 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 더보기
우리나라 미륵반가사유상을 보면 그리스 로마 조각상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초월성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의 최고로 완성된 모습을 표현한 여러 모델의 조각들을 접해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상, 로마시대의 뛰어난 조각, 기독교적 사랑을 표현한 조각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각들에는 아직 완전히 초극되지 않은 어딘지 지상적인 감정과 인간적인 자취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성과 미의 이데아를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신상도 로마시대 종교적인 조각도 인간 실존의 저 깊은 곳까지 도달한 절대자의 모습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미륵반가상에는 그야말로 극도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지상의 시간과 속박을 넘어서 달관한 인간 실존의 가장 깨끗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날.. 더보기
혼탁한 세상에 실망하고, 세상을 등지고 싶은 문인의 마음이 잠 자는 새로 표현되다. 조지운, , 1637년, 종이에 수묵, 50X78cm, 개인소장 왜란과 호란으로 인해 전국토가 황폐화되었던 조선 중기. 설상가상으로 당쟁까지 심화되던 그 시절. 문인화가 조지운(1637-?)은 잠자는 새를 그림으로써 세상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표출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마 마음 한 켠이 좀 누그러졌으려나. 더보기
Art history...달을 바라보는 소년 : 박노수, 류하(柳下), 1980 해가 지고 달이 뜬다. 낮이 가고 밤이 온다. 달이 뜨는 밤이 오면 수 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머리 속을 떠돈다. 한국화의 1세대로 불리는 박노수(1927년~2013) 화백의 작품, .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년은 길게 늘어선 청색과 녹색의 버드나무 잎 사이에서 노란 달을 바라본다. 작가의 감정이입 대상이기도 한 고고한 이상을 지닌 소년. 두 팔을 살짝 내려놓고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소년도 나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 꿈과 희망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달을 친구 삼아 말하고 있는 것일까. 4가지의 색으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세상에 어둠이 내려왔을 때 버드나무 잎 속에서 밝은 달을 보는 소년의 옆모습이 슬프다. 밤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대신 이 그림을 선물하고 .. 더보기
영화 <만신>, 왜 민화를 차용했을까? 영화 은 중요무형문화재인 김금화의 생애를 다룬 판타지 다큐멘터리이다. '만신'이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단어이다. 필자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기대감이 가득 찼다. 포스터가 민화의 종류인 의 모습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영화 에 관한 평가 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은 "전통 민화를 차용하여 애니메이션화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영화 에 녹아든 민화의 의미와 차용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화란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를 의미한다.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서민들의 작품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즉 서민들의 삶의 관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고 있는 그림이기에 정답고 친숙하다. 그림의 주제는 행복 · 부귀 · 장수 · 다산 등을 바라는 길상적인 내용이 .. 더보기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 트라우마가 피어낸 재능 툴루즈 로트렉, 완벽한 조건이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1864-1901)이 태어난 시기는 파리의 황금기라고 불리던 '벨 에포크'(1890~1914),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던 때죠. 에펠탑이 지어지고, 첫 번째 지하철이 개통됐으며 인상주의 대표 화가인 고흐와 고갱이 활동한 시기입니다. 게다가 그는 12세기부터 내려오는 유명 귀족으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건강'이라는 선물은 받지 못했습니다. 서로 사촌 간이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툴루즈 로트렉은 유전적 결함을 물려받아야 했네요. 뼈가 약했던 로트렉의 키는 152센티미터 정도에서 멈췄고, 그나마도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승마나 왈츠같은 귀족적인 취미를 즐길 .. 더보기
Art History...베르니니, 아폴론과 다프네, 1622-1625 Gian Lorenzo Bernini, , 1622-1625, Marble, height 243cm, Galleria Borghese, Rome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 같아 보이지만 결국 별 반 차이 없는 감정선으로 나뉘어 있는게 아닐까. 첫 만남에서 상대방이 우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금세 다다를 것만 같고, 반대의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사랑과 사랑하지 않음은 사소한 차이에 기인한 것 같다. 특히 짝사랑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듯 하다. 마치 사랑에 빠지는 금화살을 맞은 아폴론과 사랑을 거부하는 납화살을 맞은 다프네 같이 말이다. 아폴론은 어느 날 활을 가지고 놀고 있던 큐피드에게 어린 아이가 가지고.. 더보기
Art History...에두아르 마네, 발코니, 1868 Edouard Manet, , 1868, Oil on canvas, 170×124cm, Musee d'Orsay, Paris 근대화가 한창 진행되어가던 1868년 어느 날, 파리의 거리는 언제나 활력이 넘쳐 흘렀다. 제국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파리는 급속하게 발전해갔고, 파리 시민들의 일상도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파리의 뒷 골목은 여전히 할렘을 이루고 있었고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져가기만 했다. 따라서 파리 거리에는 알듯 모를듯 은밀하게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파리 시민들은 풍요로운 일상을 누리는 것만큼 대도시 특유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두아르 마네는 이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그림들은 속 인물들처럼 화려한 부르주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눈은 한 없는 공허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