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단상/미술사 이야기 79

혼탁한 세상에 실망하고, 세상을 등지고 싶은 문인의 마음이 잠 자는 새로 표현되다.

조지운, , 1637년, 종이에 수묵, 50X78cm, 개인소장 왜란과 호란으로 인해 전국토가 황폐화되었던 조선 중기. 설상가상으로 당쟁까지 심화되던 그 시절. 문인화가 조지운(1637-?)은 잠자는 새를 그림으로써 세상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표출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마 마음 한 켠이 좀 누그러졌으려나.

Art history...달을 바라보는 소년 : 박노수, 류하(柳下), 1980

해가 지고 달이 뜬다. 낮이 가고 밤이 온다. 달이 뜨는 밤이 오면 수 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머리 속을 떠돈다. 한국화의 1세대로 불리는 박노수(1927년~2013) 화백의 작품, .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년은 길게 늘어선 청색과 녹색의 버드나무 잎 사이에서 노란 달을 바라본다. 작가의 감정이입 대상이기도 한 고고한 이상을 지닌 소년. 두 팔을 살짝 내려놓고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소년도 나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 꿈과 희망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달을 친구 삼아 말하고 있는 것일까. 4가지의 색으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세상에 어둠이 내려왔을 때 버드나무 잎 속에서 밝은 달을 보는 소년의 옆모습이 슬프다. 밤이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대신 이 그림을 선물하고 ..

영화 <만신>, 왜 민화를 차용했을까?

영화 은 중요무형문화재인 김금화의 생애를 다룬 판타지 다큐멘터리이다. '만신'이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단어이다. 필자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기대감이 가득 찼다. 포스터가 민화의 종류인 의 모습을 빌려왔기 때문이다. 영화 에 관한 평가 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은 "전통 민화를 차용하여 애니메이션화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영화 에 녹아든 민화의 의미와 차용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화란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를 의미한다.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서민들의 작품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즉 서민들의 삶의 관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고 있는 그림이기에 정답고 친숙하다. 그림의 주제는 행복 · 부귀 · 장수 · 다산 등을 바라는 길상적인 내용이 ..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 트라우마가 피어낸 재능

툴루즈 로트렉, 완벽한 조건이었습니다.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1864-1901)이 태어난 시기는 파리의 황금기라고 불리던 '벨 에포크'(1890~1914),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던 때죠. 에펠탑이 지어지고, 첫 번째 지하철이 개통됐으며 인상주의 대표 화가인 고흐와 고갱이 활동한 시기입니다. 게다가 그는 12세기부터 내려오는 유명 귀족으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건강'이라는 선물은 받지 못했습니다. 서로 사촌 간이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툴루즈 로트렉은 유전적 결함을 물려받아야 했네요. 뼈가 약했던 로트렉의 키는 152센티미터 정도에서 멈췄고, 그나마도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승마나 왈츠같은 귀족적인 취미를 즐길 ..

Art History...베르니니, 아폴론과 다프네, 1622-1625

Gian Lorenzo Bernini, , 1622-1625, Marble, height 243cm, Galleria Borghese, Rome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 같아 보이지만 결국 별 반 차이 없는 감정선으로 나뉘어 있는게 아닐까. 첫 만남에서 상대방이 우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금세 다다를 것만 같고, 반대의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사랑과 사랑하지 않음은 사소한 차이에 기인한 것 같다. 특히 짝사랑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듯 하다. 마치 사랑에 빠지는 금화살을 맞은 아폴론과 사랑을 거부하는 납화살을 맞은 다프네 같이 말이다. 아폴론은 어느 날 활을 가지고 놀고 있던 큐피드에게 어린 아이가 가지고..

Art History...에두아르 마네, 발코니, 1868

Edouard Manet, , 1868, Oil on canvas, 170×124cm, Musee d'Orsay, Paris 근대화가 한창 진행되어가던 1868년 어느 날, 파리의 거리는 언제나 활력이 넘쳐 흘렀다. 제국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파리는 급속하게 발전해갔고, 파리 시민들의 일상도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파리의 뒷 골목은 여전히 할렘을 이루고 있었고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져가기만 했다. 따라서 파리 거리에는 알듯 모를듯 은밀하게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파리 시민들은 풍요로운 일상을 누리는 것만큼 대도시 특유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두아르 마네는 이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그림들은 속 인물들처럼 화려한 부르주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눈은 한 없는 공허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Art History...클로드 모네, 까미유 부인의 죽음, 1879

요즘 네이버 포스트에 작품에 대한 감상을 한 편씩 올리고 있습니다. 글의 호흡은 짧게, 사실에 바탕을 두되 최대한 느낌 위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네이버 포스트에 올린 글들은 블로그에도 올릴께요. 그림에 대한 느낌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Claude Monet, , 1879, Musée d'Orsay 1879년, 모네는 자신의 아내이자 이상적인 모델이 되어주었던 카미유를 떠나보냈다. 임종을 지켜보던 모네는 아내가 점점 생기를 잃고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나보다. 창백한 블루톤으로 칠해진 그녀의 모습. 하지만 마지막 삶의 희망을 지켜주려는 듯 그림 오른쪽에서 살포시 내려 앉는 스탠드의 따뜻한 불 빛. 하얀 드레스를 입고, 모네와 함께 야외로 나들이를 갔던 생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 그림들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뉴욕 MoMA 1888년 2월, 반 고흐는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프로방스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프로방스 특유의 온화한 날씨와 자연을 접한 반 고흐는 컬러와 명암의 대비에 대해 더욱 민감해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자신만의 컬러 체계와 화풍을 확립할 수 있었고 프로방스 아를에서 본 화려한 풍경과 꽃, 열매, 나무, 전원 생활 등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반 고흐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그림들 중 저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불우한 천재였던 그가 그린 '나무' 그림들 위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꽃이 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폴라로이드 사진

, 1974, Oliviero Toscani Isn't Life a series of images that changes as they repeat themselves?인생은 스스로 되풀이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의 연속이 아닐까? -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특별한 부연 설명이 없어도 될 정도로 한국에서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오늘 저는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앤디 워홀의 폴로라이드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아르뜨님의 앤디워홀 관련 트윗을 보다가 최근에 읽은 『가디언』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 중 세간에 한번도 공개된 적 없던 300점의 데생 작품을 공개한다는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Andy Warhol's unseen early draw..

렘브란트, 그의 인생의 빛과 어둠

렘브란트, , 1632년, 캔버스에 유채, 169.5×216.5cm 바로크 미술은 르네상스나 인상주의보다 시기가 짧고 지역마다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한 바로크의 본 뜻은 “일그러진 모양의 진주”, “불규칙하고 뒤틀린 괴상한 모양”, “허세부리고 지나치게 과장된다” 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했지만 이제는 바로크 미술 특유의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부각되고 유명한 화가들과 작품들의 위상이 높여지면서 위대한 미술사조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이 균형을 중시하고 평면적이고 선, 이상미를 중시했다면 바로크 미술은 리듬감과 관능적, 감각적이고 극적인 긴장감을 중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 미술은 대각선 구도와 강렬한 명암대비, 단축법, 스포트라이트 조명 효과 등 작품을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