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단상/미술사 이야기 76

EBS 다큐프라임 콜로세움편

그 어떤 공부이건 마찬가지겠지만 역사, 미술사 공부도 재밌게 공부해야 더 잘 되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대개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개설서부터 펼쳐본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용어들, 잡히지 않는 흐름 등으로 인해 내가 지금 이것을 이해하고 넘어가는지, 아닌지조차 모른체 계속 1장만 들췄다 말았다하는 일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 분위기상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 지식을 쌓긴 쌓아야겠고, 그래서 서점에서 가장 핫한 책들을 사오지만 끝까지 공부해나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책들은 본래 그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읽어야 이해가 가능한 책들이 많기 때문에 책 선택부터 잘못된 시작인 경우가 많다. 수익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책이라고..

에드워드 호퍼, 호텔방, 1931

Edward Hopper, , 1931 호텔 특유의 새하얗고 푹신한 침대에 반쯤 누워 한 손은 머리 뒤에 넣은채 다른 쪽 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평소에는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휴대폰 목록에 숨어있는 옛 친구들을 떠올리며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낮에 다녀온 미술관 전시 티켓과 엽서를 보며 오늘의 일정은 어땠는지를 돌아보기도 한다. 집이었다면 분명 다음으로 미뤄뒀을 행동이지만 여행이라는 시공간적 한계에 스스로를 넣어둔 탓인지 오늘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형태만 다르게 생겼을 뿐,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같은 시계 알람에 눈을 뜨고, 같은 TV를 보고, 같은 음식을 먹지만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집에서와는 달리 깊은 생각에 ..

빈센트 반 고흐의 노트

이게 몰스킨에 쓴 반 고흐의 노트인지는 모르겠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도 보인다. 글씨를 보면 우리가 선입견처럼 알고 있는 다혈질적인 성격의 반 고흐는 온데간데 없고, 아주 섬세하며 차분한 반 고흐만이 보일 뿐이다. 물론 두 가지 성향 모두 지니고 있었겠지만 최소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거나 습작 노트를 적을 때 만큼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썼던 것은 아닐런지. (via diamondheroes)

알폰스 무하, 모두에게 사랑받는 친구같은 예술가

꽃과 풀과 나무, 그리고 미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방금 언급한 소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모두를 매료시키는 소재라는 표현이 지나치다면 적어도 이 소재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본전’은 건질 수 있는 무난한 소재라는 의미죠. 그래서 일까요. 식물과 미녀라는 소재는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디자인 산업에 자주 활용됩니다. 생각해보세요, 꽃무늬 패턴이 제품 디자인에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지 말입니다. 아름다운 여성이나 잎사귀 등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우리가 폭넓게 사용해왔던 무늬의 효시는 바로 ‘아르누보 양식’입니다. 그리고 이 양식과 함께 오늘은 체코의 미술가 알폰스 무하(Alfons Maria Mucha, 1860-1939)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선 ‘아르누..

미술사 공부의 기본 자세에 대하여

1.동양 회화를 분석할 때는 그림 뿐만 아니라 그림 위에 써있는 제발과 인장을 모두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전공자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종종 제발과 인장 해석에 더 집중한 나머지 정작 그림의 양식 분석은 뒷전으로 미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발이라는 텍스트와 소유자가 확실한 인장을 해석하면 그 내용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림에 나타나 있는 화가 특유의 필선이라던지, 채색하는 방식 같은 것들을 간과하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그 작품이 최근에 발견된 작품이라면 더더욱 확실하게 양식 분석을 해서 일단 그 작가의 진작이라는 것을 규정지은 다음에 제발과 인장이라는 그림의 부연 요소들을 해석해야 한다. 미술사에서 작품 분석을 등한시해도 된다면 왜 미술사라는 학문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어문 계열 전공자들이 번..

시간의 끝을 공유하다. 세기말의 상징주의 그리고 연말

시간의 끝을 살며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막연한 새로움을 맞는 들뜬 마음일까? 아니면 지난 시간을 회상해보고 돌이켜 보며 오롯이 내면세계에 침잠하는 모습일까? 마지막을 보내는 우리들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이 그 마음 역시 다 제각각 일 것 같다. 이제 곧 매체에서는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라는 매번 반복되는 돌림노래처럼 같은 어구를 다시 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된 세상 속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세우기 위해 또다시 고뇌할 것이다. 이런 시대적 절망감을 개인의 내적 진실 탐구, 매혹적인 죽음, 성, 악마주의등 정신성으로 관심을 바꿔 쏟아 붓은 문예운동이 있다. 세기말의 상징주의 이다. 상징주의는 188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 중심의 문학..

추사 김정희, 법고창신의 정신을 말하다.

추사의 천재성은 그의 평생에 많은 신비스런 전설을 남겨 놓지만 그의 출생에 붙여진 이야기만큼 거창한 것은 없다. 추사는 팔봉산의 정기를 타고났다고 한다. 어머니인 기계유씨가 추사를 잉태한지 24개월만에 그를 낳았는데 그가 출생하던날에 후정의 우물물이 줄어들고 팔봉산의 수목이 모두 시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사는 나면서부터 팔동산의 정기를 타고난 비범한 사람으로 주변의 촉망을 받았던 듯한데, 과연 그 정기설은 헛되지 않아서 아기 때부터 신동소리를 듣게된다. 그가 6세 되던 해에 입춘첩을 써서 서울 장동에 있던 경저인 월성위궁 대문에 붙인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북학의 기수인 정유 박제가가 지나다 이를 보고 깜짝 놀라서 일부러 그 아버지 유당 김노경을 찾아보고 '이 아이가 장차 학문과 예술로써 크게 세..

앙리 마티스, 나는 예술가로소이다

장인이 꼼꼼한 기교뿐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서 무심한 경지에 가는 것이다. 노자는 이를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고 해석했다. 큰 재주는 졸해 보인다, 영어로 얘기하면 'Great mastership is like foolish.' 큰 재주는 재주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 그 속에 재주가 들어 있는 것이다. 추사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 했다. 잘됐는지 못됐는지 계산이 안 되는 것, 잘되고 못되고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조선의 달항아리가 가진 아름다움은 완벽한 원이 아니고 일그러진 것 같지만, 너그럽고 손맛이 있고, 여백이 있고,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대교약졸에 있다. 출처 : 조선비즈, [지식 콘서트] 名作의 공통점은 디테일… 엄청 꼼꼼한 匠人정신 있어야 나오는 것, ..

로코코 미술의 대표작,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

프랑스 역사에서 1767년은 사치와 향락이 극에 달해있던 시기였습니다. 덕분에 대혁명의 기운이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음침하게 거리를 뒤덮고 있었지요. 당시 프랑스의 상류층은 루이 15세를 중심으로 공기를 부술 듯한 굉음을 내뿜으며 멈추는 것을 잊어버린 증기 기관차처럼 점점 더를 외치며 쾌락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 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약에 절은채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그런 이미지와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덕분에 당시 귀족층들이 즐겼던 미술 작품들은 회화, 조각, 건축 등 전 분야에 걸쳐서 마치 그들의 생활상을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결코 실용적이지 않은 화려함 만을 담고 있었습니다. 겉보기엔 이쁘지만 과할 정도로 미끈거리기만 해서 결코 아름답다고 하기 어려운 로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