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단상/미술사 이야기 82

공예는 미술인가, 아닌가라니...?

"공예는 미술이 아니다." "공예도 (당연히) 미술이다." 아무래도 공예쪽에 있다보니 일하면서 이 두 문장이 화두에 올라올 때가 많다. 나는 이럴 때면 한 발짝 떨어져서 쉽게 답을 내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대신 장르로 위계를 정하는 어리석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라는 한탄이 앞서곤 한다. 17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 문인화 우월론이 화단을 지배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래도 그 때는 작품을 제작할 때 기법에 치중하는 것보다 학문을 하고 인격을 성숙하게 하기를 바랬다는 점에서(최소한 말뿐이라도) 단순한 장르 싸움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금은 재질로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이고, 앞으로는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단순히 공예를 미술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은 참 용감하다는 생각 밖..

콘텐츠와 미술기법의 완성도

18세기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인 변상벽(1730-?)은 영조의 어진을 그릴 정도로 초상화로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이다. 도화서 화원이라고 하면 일단은 그 실력이 보장되는 화가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여야만 맡을 수 있는 왕의 초상을 그렸다고 하니 프로 중에 프로인 것이다. 변상벽은 이같은 공식 업무 외에 '변 고양이'라는 별명까지 가질 정도로 일생에 걸쳐 고양이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왕의 초상과 고양이 그림이라는 화제에서 받는 느낌의 무게감은 서로 너무 다르다. 같은 화가인가 싶을 정도로 하나는 너무 진중한 주제이고, 하나는 일상의 유희에 가깝다. 특히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소위 '남의 집 고양이'를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 요즘의 눈으로 보니 그 유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참..

때로는 작품을 직접 만져봐야 알 때도 있다.

전시를 위해 작품을 만지다보면 새로운 힌트를 얻을 때가 종종 있다. 이 작품은 라는 이름의 국보 281호이다. 워낙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조선 전기에 제작된 수 많은 주자(주전자) 중에서 유일하게 몸체가 병의 형태로 되어 있는 희소성 덕분에 국보로 지정된 작품이다. 전시를 할 때 가장 긴장되고 어지간해서는 만지기 싫은 작품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였다. 보기에도 갸냘픈 주구(注口)와 손잡이 때문에 포장하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포장을 푸는 것도 가장 천천히 도 닦는 심정으로 해야했기 때문이다. 국보라는 상징성도 긴장에 무게를 더해주었다. 무엇보다 눈으로 볼 때는 잘 모르지만 직접 만져보면 병 하단이 엄청난 두께감과 함께 무거웠다. 즉 이 작품은 실제 사용하기 위해 만든게 아니라 의례를 위한 ..

공예와 미술의 관계

한창 개관 준비로 바쁜 서울공예박물관에 다녀왔다. 요즘 협업을 위해 여러 기관, 기업들을 만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술에서 공예만 떼어다가 이렇게 해도 괜찮은걸까?" 공예의 특장을 살리고 공예문화가 발전하기 위한 노력은 좋으나, 이런 노력들이 오히려 미술로부터 유리되어 가는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건 아닐까라는 우려가 들었다. 미술과 공예의 관계에 대해서 아직 명확하게 개념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다. 앞으로 해결해야될 문제다. 흔히 회화와 조각은 순수미술, 공예와 건축은 응용미술로 보고는 있는데 이 역시 동양화와 서양화의 관계처럼 불분명한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미팅을 마치고 나오며 직장에서의 일을 떠나 공예비평, 논문 등 할게 많다는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우리 교수님이 ..

미술품 물납제에 대하여

"삼성이 상속세를 내야하는 마감일이 다가오자 언론들 총출동" 등의 이야기를 굳이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람들이 한 가지 알아줬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미술품 물납제'의 취지는 불의의 일격으로 세금 폭탄을 맞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에 있다. 쉽게 예를 들자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남으로 살아왔는데 알고보니 부모 중의 한 명이 유명한 미술가였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하는 상황에 처한 유가족을 배려하고, 동시에 문화유산도 지킬 수 있다는 명분으로 생긴 제도이다. 국가가 예술을 관리하는 프랑스가 대표적인 물납제 적극 시행 국가이다. 법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 기능해야 하는데 ..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대하여

오늘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배현진 의원이 '박물관자료'의 대출이나 열람서비스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대출 및 열람 서비스 제공을 막고 있기에 국민들이 이를 누릴 수 있도록 일부 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아. 박물관의 도서관에 있는 도록, 해외논문집을 의미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박물관의 도서관에서는 열람은 가능해도 대출은 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불편할 때가 있어 가능하게 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개정안을 읽어보니 배현진 의원실 측에서 '박물관자료 = 유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 제2조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3. “박물관자료”란 박물관이 수집ㆍ관리ㆍ보존ㆍ조사ㆍ연구ㆍ전시하는 역사ㆍ고고ㆍ인..

옥션 대표의 위엄

당연한 말이지만 내 주변에는 연구자들이 많다. 같은 전공인 미술사 전공자들과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다. 직업군으로 분류하자면 당연히 각 박물관, 미술관의 학예사들이 많고, 이외에도 문화재청 선생님들, 젊은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를 하고 술자리를 종종 가지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이렇게 연구자들 외에 교분을 나누는 사람들 중에는 대학원, 박물관 업무 등을 통해 알게 된 미술품 매매업 대표(대개 고미술상이라고 부른다. 부르기 쉬운 공식 명칭이 생겼으면 좋겠다), 경매회사 대표도 있다. 이들 중 한 분은 내 고등학교, 대학원 선배(대학원에 입학해서 처음 뵈었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도 선후배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인데 내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신다. 나로서는 매번 감사한 마음과..

볼 때마다 아쉽게 만드는 작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경산수화 전시하면 언제나 섹션 서두에 나오는 노영 필 이다. 그 레퍼토리가 이젠 좀 식상하지만 그걸 상쇄할 정도로 명품인 것은 맞다.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랄까. 나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대체 고려시대 회화는 어떠하였길래 이런 참신한 구성을 보이는걸까 하는 아쉬움이다. 예배도 형식인데 주존불 하나가 아니라 상하단으로 나누어 담무갈보살과 지장보살을 모두 담고 있다. 이와 동시에 예배도이면서 금강산을 한 켠에도 담은 이런 구성은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감히 표현할 수 없어 빈 의자만 그렸는데 이 작품에는 대놓고 왕을 그려 넣었다. 그것도 엎드린채 말이다. 또 혹시나 누가 왕인걸 모를까봐 떡하니 '太祖'라는 메모도 써줬다. 또 휑하게 보일까..

로코코 미술 탄생과 미술시장의 변화

​​​ 17세기 전반 루이 14세 때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독창적인 자기 문화라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네덜란드로부터 시작된 중국 도자기 수입이 전유럽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무언가를 담는 목적의 도자기를 본연의 용도로 바라보지 않고 인테리어 장식으로 쓸 정도였다. 당시 사료들을 보면 중국 도자기를 벽에 덕지덕지 붙이는 것은 기본이고, 항아리가 막 지붕 위에 붙어있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왕실,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자 당연히 대량으로 수입을 하기 시작했고, 중국 수입 도자기는 당시 미술상인들의 주요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루이 15세 시절에 그토록 염원하던 자기 생산에 성공하게 되었다. 독일 마이센 자기 생산에 자극받아 루이..

히틀러 나치의 <퇴폐 예술>전과 일본

일본의 철거를 위한 집요함(이라 쓰고 천박한 찌질함이라 이해하면 된다)을 보면서 1937년 나치의 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인체를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국가의 예속 하에 두려했던 파시즘은 예술을 대하는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 목적 때문에 인체를 왜곡하고, 개인의 주관성을 표출한 모더니즘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는 언제나 공격 대상이 필요했고, 이를 선전하기 위한 파시즘 미술에서는 언제나 고전주의 양식이 악용되었다. 정치적으로 나치에게 필요한 공격 대상이 유대인과 집시 그리고 공산주의자였다면, 이를 은유적으로 푼 나치 미술에서는 여성을 타자화하고 소름끼칠 정도로 무결한 남근 숭배적인 고전주의 양식을 표출하였다. 발터 벤야민의 나치 미술에 대한 평가를 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