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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내가 경계하는 것

2020. 7. 11.

나는 이유없이 나를 싫어하고, 음해하는 건 당연히 싫지만,

나에 대해 알아갈 시간도 없었음에도 특별한 이유없이

나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 좋게 보고, 자기 사람인양 여기는 것도 싫다.

 

또 다른 형태의 무례함이라 생각한다.

 

내가 별 뜻없이 한 언행에 대해 마음대로 해석하여 좋게 본 자라면,

자기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금세 등을 돌릴게 뻔하다.

 

그래서 좋은 얘기랍시고 누군가가 '그가 너 좋게보더라'며 전해줄 때마다

의아스러움을 감추지 못한채 이러곤 한다.

 

"엉?? 왜?? 날 뭘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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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의할까?

2020. 5. 31.

며칠 전 회사 공지게시판에 내부 규정 몇 가지가 개정됐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지금까지는 외부 강의를 하려면
사전 신고가 원칙이었지만,
이제는 강의하고 10일 이내만 신고하면 된다고 한다.

굉장히 큰 변화다.
사전 신고였을 때는
강의 의뢰를 받아도 언제 된다는 말은 물론,
이걸 허락받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여서
확답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슬슬 해볼까.
하게 되도 기관에서만 가능하겠지만,
강의하던 때가 그리워지던 요즘으로선
감지덕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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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스킨을 바꿨다.

2020. 4. 18.

항상 거창하게 제대로 된 글을 올려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되레 더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서
짤막한 글에 어울리는 스킨으로 바꿨다.

가끔 긴 글을 올리는 것보단
짧더라도 자주 남기는게 좋겠지.

...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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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간의 기록 vol. 2

2020. 4. 4.

우지영, <라토나: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딱히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침에 출근하면 조용한 전시실을 체크하며 한바퀴 돌아보고 온다.

습관이 되었달까.

 

전시실에 올라가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다.

우지영 작가가 베르사유 궁전에 조성돼 있는

라토나 분수대를 서울의 제작 환경에서

흔히 발견되는 자재와 재료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오픈 전이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졸졸졸 흐르고 있는

이 욕조를 보면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적막을 깨는 조용한 물소리와 힘을 빼고

겨우 솟아오르는 물을 볼 때마다 묘해진다.

힘있게 솟구치면 오히려 관심도 안가졌을 것 같다.

초현실주의 작품의 'uncanny(낯선 두려움)'하달까.

날계란을 손에 쥐고 있으면 괜히,

아무 이유없이 바스라뜨리고 싶은 기분과 비슷한 느낌이다.

전시 철수할 때 작가를 만나게 되면 명함이라도 교환해볼까.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일하다가 만년필 잉크가 다 떨어져서 세척중.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담아와서 만년필을 담궜더니 잉크가 물 속에서 선을 이루며 떨어진다.

 

묘하다.

 

 

다른 학교 석사생들이 이번에 졸업했다며 석사논문을 들고 퇴근 시간에 찾아왔다.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내게 미술사 수업을 들었고,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학생들이다.

 

나한테 미술사 수업을 듣고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이 꽤 많다.

학회에 가면 종종 만나게 되는데

그때 감사했다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유달리 고맙게 느껴진다.

 

고마운건 고맙다고 표현할 줄 알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겉과 속이 투명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공공기관에 와보니 크고 작은 민원,

업체와의 분쟁 등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만지는 예산도 커져서

항상 신중하되 미리 방어막을 쳐둘 필요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10년간 써오던 아이폰은 통화녹음을 할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는 쓰면 쓸수록 운영체제가 지저분해져서 정말 싫었는데..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갤럭시노트10으로 바꿨다.

공기계가 아니라 SKT에서 구입하면

자동으로 T전화 어플로 통화녹음을 할 수 있다.

이 참에 갤럭시노트의 S펜이 유용해보이기도 했다.

 

내 돈으로 산 최초의 삼성 제품이다.

삼성꺼 정말 사기 싫었는데.

 

블랙베리가 통화녹음이 가능했다면,

고민없이 블랙베리로 갔을텐데 아쉽다.

 

 

갤럭시노트10으로 처음 찍은 사진.

 

 

이건 아이패드로 찍은 프랭클린플래너와 갤럭시노트10의 조합.

디자인은 마음에 든다.

역시 둥글둥글한거보다 각진게 멋있음.

 

 

어느 주말에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하는

<한국 근현대인물화-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전을 보러 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해 질 녁>이 목적이었다.

이 작품은 도쿄예술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도쿄미술학교(도쿄예술대학의 전신)로 유학간 우리나라 화가들은

졸업할 때 자화상과 함께 졸업 작품을 제출해야 했는데

그 때 그린 작품으로 당시 아주 높은 평가를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이다.

 

수면, 하늘, 바위, 피부를 자세히 보면

인상주의 회화의 병렬적인 원색 터치를 찾을 수 있다.

한국 근대회화의 인상파 수용 연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해 질 녁의 대동강을 배경으로 여인 2명의 전신 누드가

고즈넉한 풍광 속에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야해서 자꾸 쳐다보는게 아니라

1차적인 본능을 넘어 아름다워서 자꾸 보게 만든달까.

 

진짜다. 음.

 

 

마스크 안쓰면 관람이 안된다고 했는데 마스크가 없었다.

이 때만 해도 마스크가 별 효력이 없다는 WHO, 미국 CDC의 의견을 믿었기 때문에

거추장스럽기도 해서 쓰지 않고 다녔다.

 

그래서 목도리로 칭칭 감겠다고 사정사정해서 관람을 허락받았다.

아침에 홈페이지 확인하고 간건데

홈페이지에라도 공지 좀 해놓지라며 속으로 궁시렁거렸지만,

일단 내 불찰도 있고 해서 "한 번만 봐주세요" 했다.

 

지금은 WHO, 미국 CDC 다 안믿는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만 믿고 마스크 잘 쓰고 다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선진국의 개념도 바꿔주고 있고,

WHO와 같은 UN 산하의 연합기구도 별거 아니구나라는 걸 처음 깨닫게 해준 듯하다.

 

이번처럼 모든 것을 뒤집어 엎는 재난이 아니었다면,

즉, 거꾸로 들어서 탈탈 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WHO 같은 기구에 중국과 일본의 자본이

그렇게 많이 잠식되어 있을줄 누가 알았겠나.

 

IOC, FIFA와 같은 스포츠 관련 단체에

일본의 입김이 크다는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WHO까지 이랬을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

 

그리고 미국 CDC가 이렇게 우왕좌왕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재난 영화 보면 미국 CDC가 다 해결해주던데.

역시 전쟁,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건 비디오임.

 

신학철, <지게꾼>, 2012

 

사람의 뒷모습처럼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또 있을까?

 

 

작품의 주인공일지도 모를 나비.

진정한 씬스틸러.

 

 

종로2가에 있는 종로정.

일본 음식을 파는 곳인데 가게만 보면 일본에 와있는 듯.

들어가서 먹지는 않았다.

나중에 가봐야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식 초정장을 보내왔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내 생일날 개막식갔다가

선생님들이랑 술 한 잔 했을텐데.

아쉽구만.

 

 

코로나로 인해서 구내 식당도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서울스퀘어에 있는 중국집에서 먹은 납작 짜장면이다.

난 면요리를 좋아하는데 면발은 납작한 면, 오동통한 면 순으로 좋아한다.

 

 

재택근무 첫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집 앞 카페에 왔다.

부랴부랴 노트북에 회사 메신저 설치하고

전자 결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들 설치하는 데 진을 다 뺐다.

 

이 날 이후로 한 달째 재택근무 중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2, 3일은 출근 중이다.

 

 

전 직장에서는 민화전을 준비 중이랜다.

미디어 아트도 설치한다고 팀장님이 보내준 사진이다.

 

나 있을 때 하지 좀.

 

 

기억안남.

분명 뭐 건수잡아서 마셨겠지.

 

 

갤럭시노트10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 지점이다.

카메라를 프로 모드로 설정하면

실제 카메라처럼 ISO, 조리개, 화이트밸런스, 셔터 스피드 등을

직접 조절해서 촬영할 수 있다.

 

굳굳!

 

 

선물받은 책.

모든 미술사 연구가 마찬가지이지만,

근대처럼 자료가 많은 시대는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 건축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한다.

 

그래야 예술계의 흐름이 보이고,

그 속에서 미술계는 어떤 분위기였는지 감이 온다.

 

넓게 보는 데서 시작하지 않으면

오류가 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작가를 독립 투사화시키는 그런 소리 말이다.

직접 독립운동을 했다면 모를까.

미술로 드높은 결기,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다며

그들을 지사(志士)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내가 다 창피하다.

 

피카소는 나치 독일, 파시스트들을 작품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이유 때문에 피카소를 위대한 화가로 평가하는가?

 

미술사를 위인 전기로 쓰지는 말자.

 

 

우연히 유튜브 프리미엄 가입자에게 구글이 <홈 미니>를 무료로 배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완전 초창기부터 유튜브 프리미엄 써왔는데. ㅎㅎ

이 기계가 뭐하는 데 쓰는건지는 모르지만

구글이 준다길래 바로 신청했다.

 

받아보니 아이폰 시리같은거였다.

주로 사용하는 멘트는

 

"헤이 구글, 오늘 날씨 알려줘."

"헤이 구글, LOFI 힙합 재즈 틀어줘."

"헤이 구글, 볼륨 줄여줘."이다.

 

막상 써보니 무지 편하다.

 

 

3월 초에 지난 전시 때 대여해온 호텔 관련 유물을 반납했다.

반납하기 전에 유물 포장하고, 리스트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재택 근무 중이기도 하고,

다른 직원들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워낙 유물 수가 많아 일일이 직접 확인해야 안심이 돼서 혼자 진행했다.

 

밤 늦게까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팟캐스트 틀어놓고 작업을 했는데

포장 도구들이 있는 곳과 수장고까지의 동선이 꽤 길어서

수레로 나르면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동선 때문에 하얗게 칠한 아주 긴 지하 복도를 지나

창고 같은 곳을 통과하고,

기찻길 옆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밤이 되니까 굉장히 오싹할 때가 많았다.

 

100년된 건물이라는 점,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때의 건축이라는 점,

직원들 사이에서 도는 썰 중에 시체보관실도 있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오싹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는.

 

다음부턴 같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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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간의 기록 vol. 1

2020. 3. 21.

 

 

1. 새 직장으로 첫 출근하는 날.

9시까지 본원으로 출근하라고 해서 일부러 서둘러서
8시 20분쯤 도착해 옆의 커피빈에 있다가 들어갔다.

나는 지금까지 직장이 대부분 강남이었다.
대학원에 가기 전에 다닌 광고대행사도
한 때 광고대행사의 메카라 불리던 신사역이었고,
박물관도 그 근처였다(돈도 많으면서 왜 그곳에 지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ㅎㅎ).

광화문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로 출근할 것이었다.
그래야 어차피 뻔한 직장 생활에서 버티는 힘을 갖게 되고
그 가운데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광화문으로 출근하면 퇴근하고 교보문고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그렇게 갖고 싶었다.
이번에도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것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 언저리까지 다가갔다는 점에 만족을 찾기로 했다.

최전방 연천에 있는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후배에게
형은 어김없이 서울 중심으로 가냐며 부럽다는 말을 듣고
더욱 만족감을 갖기로 했다.

동생아~ 좀만 더 고생해라. ㅋㅋ

 

 

 

2.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자문

원래대로라면 3월 12일에 개막했을 한국 근현대 서예전의 자문을 했다.
자문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하고 왠지 교수님이나 해야 할 것 같아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망설여졌지만,
그냥 내가 아는 한도에서 아이디어 공유를 한다 생각하고 참여했다.

나처럼 한국, 동양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은
굳이 시서화 일치 사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예는 당연히 미술 장르 중 하나라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사람들 중에
서예는 미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를 처음 접하고 '헛공부했구만'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내가 대학원에 가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할지, 한국미술사를 할지를 놓고
한창 고민하던 시절, 지금의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서양미술사를 하게 되더라도 한국미술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마라"고 하셨었다.

아무리 본인 전공이 서양미술사다 하더라도
한국미술사에 대해 너무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상관없으려면 길이 하나 있긴 하다.
한국을 떠나 살면 된다.

이번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중에는
"왜 서예는 미술인가"도 담겨 있다.

사진은 국현 회의실에서 찍은건데 중요한 내용들이 많아서 블러처리를 했다.

 

 

 

3. 전시 준비

첫출근해보니 전시 준비가 막바지였다.


그것도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큰 전시였다.
여기 시스템도 낯설고, 사람들 이름도 못외운 상태에서
전시 오픈 직전에 투입되어야하는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조금 빡세도 전시 오픈하고 나면
다른 때보다 더 빨리 이 조직에 녹아들어 있겠다는 장점도 생각났다.

나는 전시의 일부분이 근대 호텔, 철도 관련 아카이브 섹션을 맡았다.
전시실 내에 있는 화장실 위치도 모른 상태에서 시작하느라 꽤 난감했지만,
'에이~ 그냥 하면 되지'라는 내 특유의 무덤덤함이 발동했다.

그래서 그냥 했다.

가만히 보니 기존에 있던 진열장은 쓰기 어려울 듯해서
물어보니 저~~기 일산 가는 길목에 있는 컨테이너에 다른 진열장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트럭을 수배해서 진열장들을 가져왔다.

 

 

 

가져온 진열장들이다.
견고해보이지 않아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시간과 돈이 없었다.
보다 어서 새로 .
이번엔 어쩔 수 없지.

 

 

 

 

전시실 시공할 때 이 정도 규모는 처음 봤다.
아예 건물 자체를 새로 짓는 것 같았다.
내 전시였다면 이 돈 아껴서 더 좋은 작품들 구입하는데 썼겠지만,
기존 기획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지라는 생각과
이런 경우에 전시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나라면 겪어보지 못했을 사례를 하나 채운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지켜봤다.


 

 

호텔들을 돌며 호텔의 사료들을 대여해왔다.
나름 자기들의 역사이기에 생각보다 사료들을 잘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도 학예사까지 갖춘 호텔은 많지 않아서
작품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대여하는 날, 원래 사료들의 상태가 어땠는지 체크하느라 바뻤다.
이 사진도 원래 이 정도 찢어져 있었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해 촬영해놓은 것이다.

근대 전공자라면 관심을 가질법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 많았다.

 

 

 

여기는 반얀트리호텔 로비이다.
스파, 헬스 클럽 중심의 호텔답게 호텔 로비의 컨셉이 다른 호텔들과 많이 다르다.
번잡한 서울 도심 속에서 여유롭게 쉬기 좋은 곳이었다.
장충단 근처에 있는 장소성도 한 몫했다.

 

 

 

워커힐 호텔에서 내려다 본 한강의 전경이다.
이번에 안 사실인데,
워커힐 호텔이 우리나라 공연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더라.
공연 무대 디자인도 선도적이었다.
수십 년 전에 제작한 무대 모형들과 공연 관련 여러 사료들을 빌려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19금 공연들이 많았는데
전시에 내보일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판 물랑루즈로 소개할 수 있었는데.. 아까비.

 

 

 

하루 종일 유물을 대여하고 다니느라 꽤 피곤했다.
이런 날은 역시 삼겹살에 소주지.

 

 

 

전시 오픈하고 이제 좀 여유있게 밀린 행정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의 홍보 담당자들을 보니 꽤 분주해 보였다.
회도 .

전시 오픈 직후에 늘상 봐오던 허무함과 몽롱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며칠 후에 있을 포럼 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했다.

알고 보니 우리 팀에서 디자인 관련 박물관 준비도 함께 하고 있었다.
요즘 박물관, 도서관 등에서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예전에는 작품을 보완하는 자료로서 종속적인 위치였다면,
이제는 독립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중이다.

사진 등 여러가지 자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정리하고,
가치를 부여해서 사람들에게 선보일까가 화두다.

이에 대한 포럼을 준비 중이라고 하길래
마침 아카이브, 특히 '라키비움(Library + Archive + Museum)' 개념에 관심이 있던 차라
현장 지원하겠다며 참석하기로 했다.

 

 

 

학회 형식으로 진행된 포럼을 간간히 진행상황에 맞춰 현장 업무를 도와주며 들었다.
해외 사례(홍콩)의 경우에는 일단 나는 홍콩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곳의 미술관 운영을 엿볼 수 있어 재밌게 들었다.

아카이브에 대한 관점, 디자인 분야의 생각 등을 알 수 있는 점도 좋았지만,
자신이 기획했던 전시 소개, 성과만 늘어놓는 발표자도 있어 '저 사람은 뭐하러 여길 나온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그 전시 소개라는게 다른 지면에서도 익히 봐오던 내용의 반복이었다는 점이다.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스스로도 경계하는 태도 중에 하나는
"왕년에 내가 뭐뭐했다"이다.

가끔씩 쓰면 도움이 되지만
남용하며 현재의 상황을 자주 비교, 불만하는 사람을 보면
'그럼 그냥 그 일 하지, 왜 여기와서 이러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3년을 일하다가 미술사로 방향을 틀었다.
미술사 대학원에 들어온지 3년이 지난 후부터는
이제는 광고계에 있던 날들보다 미술사쪽으로 온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을 의식하며
광고 일할 때의 이야기는 안하기로 마음 먹은 적이 있다.

큐레이터도 광고기획자와 마찬가지로
기획일 중의 하나이기에 일하면서 아예 없었던 일처럼 할 수는 없었지만
가능하면 옛날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포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찍은 숭례문 야경.
카메라를 수동으로 촬영하는 재미에 빠진지 얼마 안되었는데
이 사진이 수동으로 촬영한 첫 야경사진이다.

후지 카메라 특유의 물 빠진 색감을 아주 좋아한다.

 

후지 XF10을 쓰고 있는데

후지 색감은 그대로 표현해주되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56만원에 구매).

소위 가성비 좋은 카메라이니 후지 색감을 좋아한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전시 오픈을 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박물관에 있을 때의 습관대로
하루에 두 번씩은 꼭 전시실을 둘러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인 '길종상가'의 설치 작품들이다.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이었던 공간을 채워줬다.

 

 

 

 

근대 호텔과 경성 관련 아카이브를 엽서로 만들었다.
사진에 보이는 온실 같은 저 곳은 조선호텔의 '선룸'이다.
당시 사람들이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하는 명소였다.

 

 

 

 

전시 오픈을 했을 때와 논문을 다 마친 직후가 가장 여유롭다.
오랜만에 크레마 사운드를 꺼내 출퇴근하며 전공과 관련없는 책을 읽는데
이 때가 가장 행복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 자문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기에 주말이나 저녁에 퇴근하고 가곤 했는데
지금 회사 규정을 보니 업무 관련된 회의, 강의는
신고하고 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진짜 허용해주는건지, 형식적인 규정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주중 업무 시간 중에
외부 회의 신고서를 제출해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준비도 막바지라 자문 회의도 빨리 마치는게 좋아서
어차피 주중에 시간내는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들어온지 얼마 안됐는데 허락해줄지,
들어온지 얼마 안된 사람이 이렇게 나가는 것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의 반응은 어떨런지 함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결재도 빨랐고, 내부 구성원들도 '그런가보다~'하는 분위기였다.

나이스.

 

 

 

여유로운 날에는 교보문고를.

딱히 살 책이 없어도 이런 때는 가야지.
이 코너, 저 코너 돌아다니며 새로 나온 책들을 구경하다 보면
트렌드가 무엇인지 감이 올 때가 많다.

단순히 출판계의 트렌드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요즘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요즘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감이 온다.

 

사진 속 공간은 교보문고 내에 있는 갤러리다.
소규모 공간임에도 짜임새있는 전시를 할 때가 있어
가끔 들어가서 구경하다 나오곤 한다.

 

 

이 사진은 내가 먹을 때 촬영한 것은 아니고
조만간 가고 싶어 담아놓은 사진이다.
맛있겠다.

소주 한 잔을 입에 탁 털어놓고
두툼한 삼겹살 한 점을 먹고 오이고추에 쌈장을 찍어서 딱 먹으면!!
크아~

 

 

전시 공간에 프릳츠 커피가 입점했다.
시간대별 선착순으로 관람객들에게 커피를 나눠줬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가끔 마셔봤는데 진한 커피를 좋아해서인지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전시는 무엇보다 작품의 가치를 선사하는 데 집중해야지 이게 뭐하는거여...
라고 잠시 생각한 적도 있으나
체험형 전시라는 용어도 있는만큼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어느 한 쪽이 매몰되지 않도록 잘 하면 되지 머.

 

 

요즘은 확실히 복고주의 시대인듯.

8, 90년대 문화를 다들 좋아하네.
8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요즘 20대들이 이렇게 소위 '레트로'한 것을 좋아하는걸 보면

단순히 '추억 소환'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합정도에 있는 일본 라멘집 <하카타 분코>
이름은 서점인데 라멘집이다.
일본 불매운동 분위기에 맞춰
일본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글이 써있다.
더불어 '나눔의 집'에 기부도 한다니 나이스하네.

 

 

스산한 정초의 합정동 골목

 

 

<하카타 분코> 내부 모습.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었나?
SNS 둘러보다가 사진이 이뻐서 다운 받아놓은 것이다.
잭슨 폴록의 무아지경을 바라보며
저 연인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별거 아닌 일상적인 대화였을지라도
그들에겐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호텔에서 트롤리를 빌려왔다.

 

 

전시 마감할 때의 서울역 풍경.
맞은 편의 옛 대우빌딩을 보면 드라마 <미생>의 감동이 밀려온다.
저기에 오차장과 장그래가 있을 것만 같다.

 

 

요즘 애용하고 있는 로이텀 노트.

종이질도 몰스킨보다 좋고,

사이즈도 몰스킨과 미묘하게 다른데(세로 길이가 조금 더 길다) 샤프한 맛이 있다.

페이지 번호가 적혀있는 것도 장점이다.

 

 

서울역 근처에 있는 <이이네(いいね)>라는 라멘집에 갔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 중에 하나가

점심 시간에 나오면서 "오늘 뭐 먹을까요?"라고 묻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가 아닌 '끼니를 때운다'에 가까워서인지

메뉴 정하고 가서 음식을 기다리는 행복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예전부터 다음에 이직하는 곳에는 회사 식당이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는 말을

노래해왔는데 이번에 구내 식당이 있는 곳으로 왔다.

(정확하게는 다른 회사의 식당이지만 우리도 들어가서 먹을 수 있음)

 

암튼 사람은 역시 꿈을 꿔야한다. ㅎㅎ

 

덕분에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주로 하지만,

가끔씩 날씨 화창한 날, 술 마신 다음 날 등

어쩌다 다른 곳에 가면 그때는 정말 외식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먹을 정도로 좁은 곳이었는데

요리 만드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요리사의 패턴화된 움직임, 푸짐한 식재료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시킨 규동 라멘.

 

나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해서

덮밥도 소고기 덮밥인 규동보다는

부타동을 좋아하는데 신기한게 우리나라에는 부타동 파는 곳이 많지 않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와 전시실부터 둘러보러 왔다.

칵테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 수영장도 호텔 수영장을 모티브로 한 설치작품인데

작품 해석을 더 보완해서 관람객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안하면 테마 파크와 다를 바가 없기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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