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투어 후기

2022 일본 아트투어(도쿄) / 1, 2일차

20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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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나가사키와 교토에 간 게 마지막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매년 자료를 구하러, 전시를 보러, 박물관 출장으로 등등 여러 핑계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코로나가 확산되며 꽤 오랫동안 갈 수 없었다. 올해 아트앤팁미디어랩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만들며 목표했던 일 중에 하나가 ‘아트 투어’였다. 그래서 해외 출국 상황이 진전되는지 주시하고 있었다.

마침 가을부터 예전처럼 비자없이 일본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추진할 때라고 여겼다. 마침 도쿄국립박물관 개관 150주년 기념 <국보>전이 열려서 망설이던 마음을 잡게 해주었다. 근대 미술뿐만 아니라 시각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던 근대 박물관의 발전과정도 볼 수 있어 일을 떠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일본 역시 우리처럼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듯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들이 좋은 전시를 경쟁하듯 개최하고 있어 이번에 가면 좋은 전시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최고의 효과를 얻기 위해 답사 코스를 짜며 두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 번째는 명품을 많이 볼 수 있는 전시일 것, 두 번째는 고대-중세-근세-근대로 시대 배분을 하는 것이었다.

이 기준에 따라 라인업을 정할 수 있었다. 고대 유물은 도쿄국립박물관, 중세와 근세 명품은 네즈미술관과 산토리미술관, 근대 명품은 도쿄국립근대미술관과 야마타네미술관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회화 위주다 보니 도자기도 함께 보면 좋겠다 싶어 찾아보니 이데미쓰미술관에서 동서미술 교류를 주제로 도자기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단체 관람을 절대 허용하지 않고 1인당 최대 2장까지만 예약이 가능하여 일단 예약을 걸어두고 상황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12/2(금)


네즈미술관

네즈미술관에서는 《쇼군가의 후스마에(将軍家の襖絵)》 전시를 봤다. 현재 일본문화의 정체성과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부분 무로마치 시대(1333-1573)까지 도달하게 된다. 선종, 다도, 수묵화 등 많은 장르들이 이 때 완성되어 유행이 시작되었다.

이 전시는 당시 가장 강력한 컬렉터이자 미술 후원자였던 쇼군의 저택에 설치되었던 병풍 그림이 주제였다. 건축의 내부 공간을 구획함과 동시에 화사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이런 병풍 그림을 장병화라고 하며 후스마에(襖絵)는 그 중 한 종류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정점에 오른 최고 권력자의 미적 취향도 유추할 수 있다. 이를 제작할 때 당연히 주문자의 요구와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스케일 큰 병풍도 좋았지만 셋슈가 남송대 원체화풍을 수용한 초기의 양상을 볼 수 있는 <방이당목우도(倣李唐牧牛図)>가 좋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그의 걸작들에 비해 붓놀림이 어색하고 인위적으로 따라하려 했던 흔적이 보이지만 자주 접할 수 있는 걸작들보다 오히려 흔하지 않은 초기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외에 <타타르인수렵도병풍(韃靼人狩猟図屏風)>이 주목되었다. 무로마치 시대는 쇼군부터 시작하여 지방 다이묘까지 중국 취향을 과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무사 출신이지만 앞서 헤이안 시대 귀족들처럼 고상한 취향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중국에서 수입해온 차를 마시며 중국 회화를 감상하곤 했다. 일본 화가들도 중국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이 작품 역시 중국 취향의 일환으로, 몽골 고원에 살고 있던 기마 민족의 사냥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마 아시카가 쇼군이 중국 취향도 가지는 한편, 사냥이라는 모티브로 무사의 정체성도 함께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닐까 추정된다.

나는 전시를 볼 때 일단 휙휙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둘러본다.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를 확인하고 중점적으로 볼 작품을 정한다. 명품과 내 개인 연구에 필요한 작품, 그리고 몰랐지만 괜찮아 보이는 작품을 주로 선정한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 이렇게 정한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시간의 한계를 고려하면 꽤 괜찮은 방식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전시를 보고 네즈미술관의 명소인 정원까지 둘러보자 어느덧 폐관 시간이 다가왔다. 로비에 일행분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쉬울 것 같은 작품 한 점만 다시 보자는 생각에 얼른 전시장에 다시 들어가 그 작품만 더 보고 나왔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마침 도쿄에 출장와 계시던 다른 박물관 학예사 선생님들, 일본 학예사 선생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가졌다. 도쿄의 부촌 중에 하나인 오모테산도 거리를 걸어가 마음껏 먹고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셋슈 도요(雪舟等楊), <방이당목우도(倣李唐牧牛図)>(牧童), 15세기, 네즈미술관

시키부 데루타다(式部輝忠), <타타르인수렵도병풍(韃靼人狩猟図屏風)> 6폭 1쌍, 16세기, 규슈국립박물관

네즈미술관 입구

네즈미술관 로비. 3년만에 왔는데 저 불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폐관 시간이 다가오자 일행들이 로비로 모이기 시작했다.

네즈미술관의 정원. 단풍의 색감이 참 진했다.

네즈미술관의 정원

네즈미술관의 정원

오모테산도의 거리 풍경.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오모테산도 까르티에 매장 앞 크리스마스 트리

역시 난 취하지도 않고 배만 부른 생맥주보다 하이볼(위스키 + 탄산수 + 얼음)이 더 좋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12/3(토)


야마타네미술관

야마타네미술관 로비. 로비 한 켠에 카페를 설치해서 관람객들이 마치 호텔에서 조식먹듯 식사를 할 수 있게 했다.

2일차 오전에는 시부야 근처에 있는 야마타네미술관에 가서 《다케우치 세이호(竹內栖鳳)》 특별전을 관람했다. 다케우치 세이호(1864-1942)는 일본 근대회화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교토 지역에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오던 사생화풍을 바탕으로 서양회화의 사실성을 접목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청신하고 명징하여 보는 맛이 꽤 좋다.

야마타네미술관이 자랑하는 그의 대표작 중에는 <얼룩고양이>가 있다. 다케우치 세이호가 시즈오카에서 지낼 때, 이웃이 키우던 고양이를 보고 중국 북송(北宋)의 휘종(徽宗)의 고양이 그림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이웃에게 양해를 구하고 고양이를 데려와 며칠동안 관찰한 후에 그린 작품이다. 항간에는 고양이의 동세를 담고 싶어 등에 꿀을 발라 고양이가 뒤를 돌아보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자세히 보면 고양이의 눈동자와 머리에 금니를 칠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일본화법을 구사한 것이다. 배경에도 곳곳에 금니를 칠하여 몽환적인 공간으로 처리한 것 역시 그러하다. 전시에서는 이 작품만 촬영할 수 있게끔 해놨다.

전시 구성은 크게 두 개로 구분하여 앞 섹션에서는 다케우치 세이호의 작품을, 뒷 섹션에서는 그에게 배우거나 영향을 받은 후배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게 해놨다. 근대 교토화단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전시여서 이에 관심이 많은 내 공부에도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야마타네미술관은 마지막에 추가한 곳인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케우치 세이호, <얼룩 고양이(班猫)>, 1924, 야마타네미술관

뮤지엄샵에서 이 책을 보고 이 책을 내가 갖고 있는지 아리송해졌다. 같은 제목의 다른 출판사 것이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사지 않고 돌아왔는데 이 책을 갖고 있는 게 맞았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

에비스역 앞. 야마타네미술관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도쿄국립박물관

오후에는 우에노로 이동하여 이번 답사의 하이라이트인 도쿄국립박물관의 《국보, 도쿄국립박물관의 모든 것(国宝 東京国立博物館のすべて)》 전시를 봤다. 마침 좋은 연이 닿아 이곳에서 일하는 선생님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일본 우키요에를 연구하러 오신 분이다. 처음 뵙는데도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주시고, 도록 선물도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챙겨간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도록,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도록, 그리고 에도시대 남화 관련 내 논문을 선물로 드렸다.

이번 전시는 1부에서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국보들을 모두 보고, 2부에서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철저하게 서구 열강을 따라갈 때 우에노공원에서 처음 개최한 박람회부터 시작한 박물관의 역사를 살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본관 옆 효케이관(表慶館)에서는 《150년 후의 국보(150年後の国宝)》전도 하고 있어 미래의 국보가 될만한 상품들을 볼 수 있었다. 건담, 고질라, 소니, 닌텐도 등과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상품들이 전시되었다. 지난 반세기동안 이룩한 경제성장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회화, 도자, 서예, 공예 등 명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 답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다만 관람객이 너무 많았고 시간의 한계가 있어 예전에 자주 봤던 작품들은 과감하게 건너뛰고 처음 보는 작품들 위주로 관람했다. 특히 그동안 매번 나를 피해갔던 셋슈의 <파묵산수도>를 드디어 접할 수 있었는데 감탄의 감탄이 내내 이어졌다. 옆에 관람객이 밀려오면 잠시 비켜줬다가 다가가서 보고, 다시 비켜줬다가 또 보는 식으로 한참을 봤다.

그동안 도판으로 볼 때는 ‘셋슈의 붓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상당히 평면적인데 먹의 농담 조절을 통해 원근을 줬다’ 정도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직접 보니 마치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처음 봤을 때처럼 사람 손으로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신묘했다. 단순히 실력좋은 화가가 속도감있게 일필휘지하듯이 그린 게 아니었다. 빠른 붓놀림 속에서도 구성력을 확실하게 잡고 있었다. 평면적이면서도 볼륨감이 느껴졌고 먹의 색은 아주 윤택했다. 이 작품을 직접 본 것만으로도 이번 답사는 성공적이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셋슈(雪舟, 1420-1506), <파묵산수도> 부분, 1495년, 도쿄국립박물관

본관의 근대 섹션

“나의 보물, 미래의 보물. 150년 후의 국보전”

고질라

다마고치의 변천사

퍼스트 건담

닌텐도. 나도 어릴 때 이 게임기로 슈퍼마리오를 엄청 많이 했다.

포카리스웨트도 자랑스러웠나보다.

2004년에 일본에서 나는 폴더폰을 사용했는데 바형으로 생긴 이 휴대폰이 너무 이뻐서 바꿀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의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문양으로 꾸민 기모노 프로젝션.

박물관 경내에 야끼소바 트럭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점심 식사를 못해서 전시를 보기 전에 이곳에서 사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던 돼지마요 야끼소바.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밖에서도 먹을 만했다.

후발대로 오신 분들과 만나기로 한 우에노 광장의 스타벅스.

전시를 모두 보고. 우에노역 앞 거리.

2022 일본 아트투어(도쿄) 후기 2부(국립근대미술관, 이데미쓰미술관, 산토리미술관)는 다음 주 화요일(12/13)에 뉴스레터 웹사이트에서 이어집니다. 내년 아트 투어는 중국 서화의 핵심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대만으로 갈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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