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거리
공항에 도착해서 가이드님과 만나 버스를 타고 우선 식사를 하러 갔다. 가면서 본 대만의 거리 풍경이다. 일본스러운 면과 동남아시아의 어느 도시같은 면이 공존하여 묘하게 느껴지는 거리 풍경이었다.
대만의 음식은 중국 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중국 특유의 쉰내(?)같은 향신료 냄새가 나지 않아 먹기 좋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잘 어울리는 중국요리들이었다.
일본에 갈 때는 일행 모두가 한 데 앉아 함께 회식할 수 있는 식당을 수배하기가 늘 어려웠다. 개인 테이블 혹은 매우 비좁은 테이블로만 구성된 식당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만을 와보니 대부분의 대형 식당들은 중국요리집이 그러하듯 큰 원형 테이블이 잘 갖춰져 있어 단체 여행하기에 분위기를 낼 수 있어 좋았다.
타이베이시립미술관
타이베이시립미술관에서는 《A One & A Two Edward Yang》, 《吾之道:何德來回顧展》, 《崎》 전시를 봤다. 《A One & A Two Edward Yang》는 양덕창(에드워드 양) 감독의 회고전이고, 《吾之道:何德來回顧展》는 何德來(카 도쿠라이)라는 근현대 화가의 회고전이다. 《崎》는 종이로 만든 설치미술 전시다.
귀국하는 마지막 날을 제외하곤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고(어지간하면 잘 안쓰는 편이다) 분무기로 뿌리는 것 같은 빗방울이었다. 듣기로는 대만은 365일 중 200일 정도가 비가 내린다고 한다.
첫 전시 관람을 위해 설레며 들어가는 우리 일행들.
(1) 《A One & A Two Edward Yang》
양덕창(에드워드 양, 1947-2007) 감독은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를 주도했던 감독으로 마틴 스콜세지, 봉준호 감독이 극찬했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8위로 꼽힌 <하나 그리고 둘>로 유명하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양과 관련된 수많은 아카이브, 주요 영상을 소재로 삼아 보는 맛이 좋게끔 꾸려졌다.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카이브, 작품, 미디어 설치 등을 세심하게 DP했다.
이런 아카이브를 볼 때마다 어릴 때 사용했던 물건들을 잘 모아두지 않은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노트도 그렇고 이런 사소한 물건들을 잘 모아두는 사람들은 끈기와 성실함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에드워드 양 감독이 갖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영향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7, 80년대 LP 음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축의 바늘이 돌아가는 LP를 긁으며 나는 특유의 떨림이 음악과 조화를 이룰 때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난다.
영화 <공포분자>에 나오는 장면을 재현한 사진이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이렇게 스토커스러운 사진이 그대로 나온다. 전시에서는 하나의 설치작품처럼 붉은 빛에 물들다가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사선으로 내려오기도 하는 등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체험을 하게 해준다. 이 영화는 본 적이 없지만 작품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줘서 꽤 센스있게 전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자필로 쓴 극본(번각본)이다. 만년필로 한자를 잘 쓰고 싶은데 한자를 펜으로 직접 쓸 일이 없는 나로선 꽤 어려운 일이다. 필사라도 꾸준히 해야 하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 자체의 크기는 작다. 하지만 동선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게 하다보니 이렇게 오밀조밀(?), 쫀쫀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동선은 관람객이 알아서 만든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직접 다녀보니 다른 사람들과 크게 부딪치지 않았고 보고 싶은 곳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2) 《吾之道:何德來回顧展》
‘나의 길’이라는 제목의 전시로 何德來(카 도쿠라이, 1904-1986) 작가의 회고전이다. 뮤지엄샵에 가보니 이번 전시말고 예전 도록에는 ‘호 테라이’라고 써있었다. 아마 작가의 일본 유학의 성과, 일본 신남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에 주목하여 ‘카 도쿠라이’라는 일본식 발음을 내세운 게 아닐까 싶다. 실제 전시 공간에서도 중국어와 일본어를 병치시켜 놨고, 작가의 아카이브에서도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화가들도 그러했지만 대만의 화가들도 일본에 가서 새로운 경향을 배우고 돌아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카 도쿠라이도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자신의 성과를 보여주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강한 원색의 선으로 그리는 것과 일본 신남화풍의 영향을 받은 고운 채색 감각이 돋보이는 것으로 양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3) 《崎》
예전에 어느 공예 작가의 작업을 두고 ‘노동집약적’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다. 그 작가는 단어 그대로 실을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노동집약적’이라는 표현만큼 적확한 표현이 없어 보였다. 그 후로 이 표현을 강의할 때 종종 빌려다 쓰는데 타이베이시립미술관의 3층 설치미술도 ‘노동집약적’이었다.
오로지 종이만으로 이렇게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부드러운 구름 같은 형상, 천주름 같은 형상 등 종이로 가능한 형태가 이토록 다양하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종이 조형물로 가득한 공간이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다워 충분히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 되었다.
지하에 가니 뮤지엄샵과 중정이 보이는 휴식 공간이 있었다. 중화권 사람들 중정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하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찍은 거리풍경이다. 어둑어둑한 시간대, 낯선 거리풍경,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씨 등 아마 혼자 왔으면 꽤 긴장되었을 것 같다. 막 집에 가고 싶어지고, 괜히 어머니 보고 싶고 그랬을 것 같다.
성품서점
우리나라의 교보문고와 일본의 츠타야 서점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세련된 공간이었다. 환전한 돈을 현지에서 출금하지 못한 상태여서 덕분에 문구류 과소비를 차단시킬 수 있었다.
타이베이의 밤거리
딘타이펑 본점(101타워 지하)
성품서점을 나와 101타워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롯데월드타워, 일본의 모리타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지하 1층에는 샤오롱바오로 유명한 딘타이펑 본점이 있었다. 가보니 이미 식사 대기 중인 관광객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다행히 가이드님이 미리 예약을 시간 예상해서 잘 해주셔서 우리는 15분 정도만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더구나 룸으로 예약을 해주셔서 아주 편하게 다 같이 둘러앉아 회식 분위기를 내며 첫날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낮에 전시를 각자 보다가 마주쳤을 때도 그랬고, 이 식사자리에서도 멤버들이 많이 해준 말이 있다.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다들 인품도 좋으시고 ‘미술’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금세 친해져서 좋다는 이야기였다. 전시도 너무 좋다는 말에 투어를 준비한 입장에서 다행스럽고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평소 중국요리에 소주나 고량주를 즐기는 내 취향이 합쳐지며 기분 좋게 술을 곁들일 수 있었다. 대만을 대표하는 술 중에는 금문 고량주가 있다. 금문도 특산물로 38도짜리도 있고, 58도도 있는데 둘 다 마셔본 결과 38도가 고량주 특유의 쓴 목넘기도 적당히 있으면서 향을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58도는 아무래도 목넘김이 도전적이어서 향을 느낄 새 없이 넘기느라 그저 도수 센 술이라는 느낌만 강했다. 그래도 둘 다 숙취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여 앞으로도 종종 찾아 마실 듯하다.
101타워 전망대
식사를 마친 후에는 취기가 약간 오른 가운데 야경을 보러 전망대로 올라갔다. 사진에 있는 노란색 거대한 구체는 101타워의 중심을 잡아주는 축 역할이다. 건물이 왼쪽으로 흔들리면 구체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잡아주는 원리다. 몇 년 전에 대만에 큰 지진이 왔을 때 이 타워에 있던 사람들은 이 구체가 중심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한다.
전망대는 특별할 건 없었다. 별다른 감흥없이 야경을 둘러보며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듣기로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조도가 낮은 편이라고 한다. 확실히 밤 거리는 우리나라보다 어둡고 가로등이 없는 곳도 많았다. 건물들도 불이 꺼진 곳이 많아 전반적으로 어두운 도시였다. 그래서 서울이나 도쿄같은 ‘불야성’은 아니었지만 대신 고요한 도시의 밤 느낌이 들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대만의 거리
공항에 도착해서 가이드님과 만나 버스를 타고 우선 식사를 하러 갔다. 가면서 본 대만의 거리 풍경이다. 일본스러운 면과 동남아시아의 어느 도시같은 면이 공존하여 묘하게 느껴지는 거리 풍경이었다.
대만의 음식은 중국 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중국 특유의 쉰내(?)같은 향신료 냄새가 나지 않아 먹기 좋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잘 어울리는 중국요리들이었다.
일본에 갈 때는 일행 모두가 한 데 앉아 함께 회식할 수 있는 식당을 수배하기가 늘 어려웠다. 개인 테이블 혹은 매우 비좁은 테이블로만 구성된 식당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만을 와보니 대부분의 대형 식당들은 중국요리집이 그러하듯 큰 원형 테이블이 잘 갖춰져 있어 단체 여행하기에 분위기를 낼 수 있어 좋았다.
타이베이시립미술관
타이베이시립미술관에서는 《A One & A Two Edward Yang》, 《吾之道:何德來回顧展》, 《崎》 전시를 봤다. 《A One & A Two Edward Yang》는 양덕창(에드워드 양) 감독의 회고전이고, 《吾之道:何德來回顧展》는 何德來(카 도쿠라이)라는 근현대 화가의 회고전이다. 《崎》는 종이로 만든 설치미술 전시다.
귀국하는 마지막 날을 제외하곤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고(어지간하면 잘 안쓰는 편이다) 분무기로 뿌리는 것 같은 빗방울이었다. 듣기로는 대만은 365일 중 200일 정도가 비가 내린다고 한다.
첫 전시 관람을 위해 설레며 들어가는 우리 일행들.
(1) 《A One & A Two Edward Yang》
양덕창(에드워드 양, 1947-2007) 감독은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를 주도했던 감독으로 마틴 스콜세지, 봉준호 감독이 극찬했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8위로 꼽힌 <하나 그리고 둘>로 유명하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양과 관련된 수많은 아카이브, 주요 영상을 소재로 삼아 보는 맛이 좋게끔 꾸려졌다.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카이브, 작품, 미디어 설치 등을 세심하게 DP했다.
이런 아카이브를 볼 때마다 어릴 때 사용했던 물건들을 잘 모아두지 않은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노트도 그렇고 이런 사소한 물건들을 잘 모아두는 사람들은 끈기와 성실함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에드워드 양 감독이 갖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영향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7, 80년대 LP 음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축의 바늘이 돌아가는 LP를 긁으며 나는 특유의 떨림이 음악과 조화를 이룰 때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난다.
영화 <공포분자>에 나오는 장면을 재현한 사진이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이렇게 스토커스러운 사진이 그대로 나온다. 전시에서는 하나의 설치작품처럼 붉은 빛에 물들다가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사선으로 내려오기도 하는 등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체험을 하게 해준다. 이 영화는 본 적이 없지만 작품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줘서 꽤 센스있게 전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자필로 쓴 극본(번각본)이다. 만년필로 한자를 잘 쓰고 싶은데 한자를 펜으로 직접 쓸 일이 없는 나로선 꽤 어려운 일이다. 필사라도 꾸준히 해야 하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 자체의 크기는 작다. 하지만 동선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게 하다보니 이렇게 오밀조밀(?), 쫀쫀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동선은 관람객이 알아서 만든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직접 다녀보니 다른 사람들과 크게 부딪치지 않았고 보고 싶은 곳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2) 《吾之道:何德來回顧展》
‘나의 길’이라는 제목의 전시로 何德來(카 도쿠라이, 1904-1986) 작가의 회고전이다. 뮤지엄샵에 가보니 이번 전시말고 예전 도록에는 ‘호 테라이’라고 써있었다. 아마 작가의 일본 유학의 성과, 일본 신남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에 주목하여 ‘카 도쿠라이’라는 일본식 발음을 내세운 게 아닐까 싶다. 실제 전시 공간에서도 중국어와 일본어를 병치시켜 놨고, 작가의 아카이브에서도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화가들도 그러했지만 대만의 화가들도 일본에 가서 새로운 경향을 배우고 돌아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카 도쿠라이도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자신의 성과를 보여주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강한 원색의 선으로 그리는 것과 일본 신남화풍의 영향을 받은 고운 채색 감각이 돋보이는 것으로 양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3) 《崎》
예전에 어느 공예 작가의 작업을 두고 ‘노동집약적’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다. 그 작가는 단어 그대로 실을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노동집약적’이라는 표현만큼 적확한 표현이 없어 보였다. 그 후로 이 표현을 강의할 때 종종 빌려다 쓰는데 타이베이시립미술관의 3층 설치미술도 ‘노동집약적’이었다.
오로지 종이만으로 이렇게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부드러운 구름 같은 형상, 천주름 같은 형상 등 종이로 가능한 형태가 이토록 다양하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종이 조형물로 가득한 공간이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다워 충분히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 되었다.
지하에 가니 뮤지엄샵과 중정이 보이는 휴식 공간이 있었다. 중화권 사람들 중정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하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찍은 거리풍경이다. 어둑어둑한 시간대, 낯선 거리풍경,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씨 등 아마 혼자 왔으면 꽤 긴장되었을 것 같다. 막 집에 가고 싶어지고, 괜히 어머니 보고 싶고 그랬을 것 같다.
성품서점
우리나라의 교보문고와 일본의 츠타야 서점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세련된 공간이었다. 환전한 돈을 현지에서 출금하지 못한 상태여서 덕분에 문구류 과소비를 차단시킬 수 있었다.
타이베이의 밤거리
딘타이펑 본점(101타워 지하)
성품서점을 나와 101타워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롯데월드타워, 일본의 모리타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지하 1층에는 샤오롱바오로 유명한 딘타이펑 본점이 있었다. 가보니 이미 식사 대기 중인 관광객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다행히 가이드님이 미리 예약을 시간 예상해서 잘 해주셔서 우리는 15분 정도만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더구나 룸으로 예약을 해주셔서 아주 편하게 다 같이 둘러앉아 회식 분위기를 내며 첫날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낮에 전시를 각자 보다가 마주쳤을 때도 그랬고, 이 식사자리에서도 멤버들이 많이 해준 말이 있다.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다들 인품도 좋으시고 ‘미술’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금세 친해져서 좋다는 이야기였다. 전시도 너무 좋다는 말에 투어를 준비한 입장에서 다행스럽고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평소 중국요리에 소주나 고량주를 즐기는 내 취향이 합쳐지며 기분 좋게 술을 곁들일 수 있었다. 대만을 대표하는 술 중에는 금문 고량주가 있다. 금문도 특산물로 38도짜리도 있고, 58도도 있는데 둘 다 마셔본 결과 38도가 고량주 특유의 쓴 목넘기도 적당히 있으면서 향을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58도는 아무래도 목넘김이 도전적이어서 향을 느낄 새 없이 넘기느라 그저 도수 센 술이라는 느낌만 강했다. 그래도 둘 다 숙취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여 앞으로도 종종 찾아 마실 듯하다.
101타워 전망대
식사를 마친 후에는 취기가 약간 오른 가운데 야경을 보러 전망대로 올라갔다. 사진에 있는 노란색 거대한 구체는 101타워의 중심을 잡아주는 축 역할이다. 건물이 왼쪽으로 흔들리면 구체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잡아주는 원리다. 몇 년 전에 대만에 큰 지진이 왔을 때 이 타워에 있던 사람들은 이 구체가 중심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한다.
전망대는 특별할 건 없었다. 별다른 감흥없이 야경을 둘러보며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듣기로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조도가 낮은 편이라고 한다. 확실히 밤 거리는 우리나라보다 어둡고 가로등이 없는 곳도 많았다. 건물들도 불이 꺼진 곳이 많아 전반적으로 어두운 도시였다. 그래서 서울이나 도쿄같은 ‘불야성’은 아니었지만 대신 고요한 도시의 밤 느낌이 들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