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진정한 예술가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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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습니다. 작년에 그의 직장암 투병 소식을 들었기 때문인지, 제가 장례식장에 있을 때 접해서인지는 몰라도 담담하게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는 음악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제 감성에 부합하고, 듣기에 좋은 음악만 듣는 편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도 팬으로서 즐기는 수준이죠.

그럼에도 그와 그의 음악을 조금 더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예술관과 행적 때문입니다. ‘거장’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음악가이지만 그의 행적은 늘 겸손하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상식을 지키려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행동을 조심스러워한다는 것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 전위적인 예술가로 자리잡아 자신의 예술만을 추구할 수 있었음에도 누구나 듣고 좋아할 수 있는 음악도 소중하게 다룬 점(사카모토 류이치는 이에 대해 ‘음악의 민주화’라고 표현)은 절로 존경하게 되더군요. 우리가 잘 아는 <Rain>,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출성> 등의 영화음악 역시 이같은 음악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고하게 예술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지 않은 점은 본받고 싶은 삶의 자세였습니다. 그는 영화음악으로 처음 성공했을 당시 이제 다른 걱정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할 줄 아는 소탈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참 담백한 분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본인이 가진 능력을 성숙된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데 늘 세심하게 신경썼던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반핵 운동, 일본의 식민지배 및 군국주의 사과, 아이누족과 LGBTQ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반대에 항상 앞장섰습니다. 참고로 아이누족은 일본의 원주민임에도 근대에 들어와 일본 정부의 철저한 탄압과 차별을 받은 소수민족입니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일본의 북쪽, 홋카이도 등에 거주해왔지만 2008년에 와서야 일본 정부가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이누족을 일본의 민족으로 그 존재를 공식 인정했습니다. 쿠릴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일본인으로 인정해야 영토 소유권을 주장하기 쉬우니까요.

사카모토 류이치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주제곡과 개막식 연주 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본래 내셔널리즘을 고양하는 이벤트라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영화 <마지막 황제> OST로 1988년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까지 받으며 한창 유명할 때여서인지 주최측은 끈질기게 요청을 했고 결국 그는 이를 수락했습니다. 대신 계약금으로 1달러만 받았다고 합니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대표적인 근대의 산물입니다. 열강들이 한창 국력을 과시하며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20세기 초반에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기 위해 만든 스포츠 이벤트죠. 외부적으로는 국력을 과시하고, 내부적으로는 민족주의 고양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탄생된 겁니다. 저도 월드컵이 열리면 한 달동안 거의 정신이 나가있을 정도로 한국과 이탈리아 대표팀을 응원하지만 국가 대결에 매몰되어 있는 저의 모습에 가끔 소름이 끼치곤 합니다. 근대 일본의 식민지배와 군국주의 사과에 앞장서왔던 사카모토 류이치라면 당연히 올림픽을 비판적으로 바라봤을 것 같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는 거의 매년 그 지역의 아이들과 오케스트라 공연을 갖는 등 행사를 기획해왔는데 그는 이를 두고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예술관을 정립하기 위해 사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한편으로는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표상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는 문화 및 예술가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좋지 않게 바라보고 중립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한 편입니다. 미국의 영화 배우들이 시상식 등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죠. 그러나 정치는 특별한 전문영역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삶의 일부이고 중요한 일상의 영역입니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는 있어도 정치적 중립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자신의 예술을 통해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활용한 점은 그를 더욱 오래 기억하고 싶은 예술가로 만들어주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그리고 역사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상을 스스로 만드는 등 자신을 높이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더라도 사카모토 류이치같은 예술가를 더욱 오래 기억하고 존경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p.s.

언젠가 트위터에서 접한 건데, 사카모토 류이치는 중국 청나라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음악가라고 하더군요. 청나라가 개국하던 때 일으켰던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영화 <남한산성>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소재로 한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 감독을 맡은 것을 의미합니다. 우연이지만 이렇게 보니 한중일 동아시아의 문화교류를 몸소 보여준 것 같아 그에게 괜히 더 아우라가 덧입혀진 것 같고 멋져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