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2023 대만 아트투어 후기(3, 4일차) / 국립고궁박물원, 서문정 거리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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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투어를 준비하며

이번 아트투어를 위한 준비는 지난 5월부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여행사 팀장님을 만나 이번 투어의 목표와 가야 할 곳들을 말씀드렸다. 작년 연말에 갔던 일본 아트투어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본에 갈 때 항공권, 숙박, 전시 티켓 등 모든 것을 내가 혼자 준비했는데 덕분에 세세한 요청을 준비과정에서 미리 얘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트투어 기간은 가을 중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로 정했다. 여름은 우리보다 대만이 훨씬 더워 여행하기 좋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요일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함께 가는 참가자 중 직장인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야 금요일과 월요일만 연차로 써서 참가하기 편할테니 말이다. 예상대로 이번 참가자 총 15명 중에 직장인은 11명 정도였다. 월요일 연차까지 부담스러운 분들은 일요일에 귀국하는 것으로 참가하였다.

한편으로는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에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를 보고 이들이 휴관하는 월요일은 귀국하기 전에 관광 코스를 넣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왕 외국 여행을 온 건데 하루쯤은 관광은 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10/22(3일차)

국립고궁박물원

여행 3일차인 일요일에는 이번 아트투어의 최종 목표였던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갔다. 오로지 여기 때문에 대만으로 행선지를 정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국립고궁박물원은 중국미술사의 명품들을 많이 갖고 있고 미술사 전공자라면 당연히 한 번쯤은 가봐야 하는 곳이다. 특히 책에서나 보던 중국 북송대의 거대한 산수화들 앞에서 압도 당하는 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다른 전시들처럼 각자 보는 것으로 하려 했지만 박물관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꼭 봐야 하는 작품들을 먼저 보고 각자 관람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현지인이 진행하는 도슨트를 섭외했다. 전공하지 않은 도슨트만 있다면 굳이 신청하지는 않았겠지만 프로필을 보니 이 박물관에서 일했고 중국미술사를 전공한 현지인이 있어 작품 설명을 부탁드렸다. 한국어도 유창하게 잘 하셔서 진행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여행사 가이드님이 미리 준비한 티켓과 송수신기를 받고 로비에서 도슨트님을 만나 이곳으로 입장을 했다. 카페, 코인 락커 등이 밖에 있어 이곳을 들락거릴 일이 좀 있었는데 물어보니 전시실 안에서 작품 사진을 찍은 것을 보여주면 특별한 확인 절차없이 재입장이 가능했다. 관람객이 매우 많은 곳인 걸 감안하면 센스있는 대처였다. 재입장을 허용하지 않거나 촬영을 절대 못하게 막는 등 엄격하게 하지 않는 것도 박물관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대원칙에 알맞는 모습처럼 여겨졌다. 관람객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곳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일 수도 있겠다.

예전에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작품을 보며 연필로 메모를 한 적이 있었다. 전시실에서 볼펜을 쓰면 안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기에 연필을 가져가서 쓰고 있었는데 지킴이가 와서 제지를 했다. 연필로 쓰는데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주는 박물관의 연필로만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할 말을 잃고 넋이 나간채로 그 연필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운영 방식은 여러 면에서 일본 박물관 · 미술관들의 유난스러운 제재와 많이 비교되었다.

이게 당시에 받았던 문제의 그 연필이다. 

박물관은 1층부터 3층까지 소규모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들어가니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각자의 팀을 이뤄 다니는 도슨트들도 많아 작품을 보다가 서로 비켜주기 일쑤였다. 

이 날의 일정은 이렇게 구성했다. 하루 종일 국립고궁박물원에 있거나 오후에 현대미술관인 타이베이 당대예술관에 다녀오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나의 경우는 당연히 박물관에 계속 있으며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지만 조금 더 다양하게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다행히 여행사의 협조로 당대예술관에 가고 싶은 사람은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에 우리 버스를 타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북위(北魏, 386-534)시대 불상으로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불교가 처음 유행할 때 많은 영향을 받았던 양식이다. 가늘고 긴 얼굴형에 떡벌어진 듯한 어깨 및 상체표현, 간략하게 표현된 옷주름, 활활 불타오르는 것 같은 불꽃 문양의 광배를 특징으로 한다. 북위시대 불상은 운강석굴 등 거대한 크기의 불상을 주로 봐왔기 때문에 이처럼 작은 불상은 이곳에서 처음 접했다. 작지만 그 시대의 특징은 잘 간직하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불교조각상을 보면 이 작품처럼 허리를 과하게 꺾어 관능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많다.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 작품이 바로 당대에 제작된 관음보살상이다. 사실적인 인체 비례에 세밀하게 장식된 화려함, 그리고 관능적인 자세가 불교조각의 최전성기였음을 잘 보여준다. 

청나라 건륭제와 가경제의 문집도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재밌는 건 문집마다 황제의 작은 초상화를 마치 삽화처럼 그려넣었다는 점이다. 청대에는 초상화의 형식이 다채로웠다. 공식적인 초상화 뿐만 아니라 이처럼 조금 편한 분위기의 초상화(소상, 소조상)도 많이 제작되었다. 문집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황제의 연령대별 얼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대 말기에 제작된 <조상아투화인물투구(雕象牙透花人物套球)>라는 작품이다. 상아로 조각한 공예품인데 개인적으로는 기법면에서 가장 감탄했던 작품이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공 안에 십 수 겹의 공들이 안에 있다. 이 공들은 안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독립 부속물들이다. 그런데 이 공들을 별도로 만들어서 안에 넣은 후 합체시킨 것이 아니라 아래 이미지처럼 ‘ㄱ’자 모양의 끌로 바깥에서 파고 들어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이게 가능키나 한가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고 관련 영상도 찾아봤는데… 되더라. 영상을 보면서 내내 ‘이게 되네?’라며 연신 감탄했다. 

이처럼 가장 밑에 있는 매듭 술을 빼고는 전부 하나의 상아로 조각해 만든 것이다. 각 부속물을 해체하면 아래 사진처럼 된다. 

이 고리 형태도 실제 고리를 엮은 게 아니라 고리처럼 보이도록 조각한 것이다. 일종의 집요함이 느껴진달까. 일상에서 이런 집요함은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할 수 있지만 자신과 자신의 작품 둘 만의 관계에서는 이런 집요함이 걸작이 탄생하는 데 탄탄한 기반이 되어준다. 남들을 대할 때는 인자해도 본인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사람이 매력있는 건 비단 사람간의 관계 만은 아닐테다. 

도자기가 아니라 칠보 공예품이다. 명대에 제작된 칠보에 법랑을 칠한 매병으로 자태가 매우 강건해보인다. 화려하고 형태도 단단해 보여 멋있지만 집에 두고 계속 보다 보면 금세 질릴 것 같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문구류에 진심인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청 건륭제 시대에 제작된 법랑채 도자기들이다. 도자기 바탕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프랑스 왕실과 교류하던 시기에 프랑스 미술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문화의 주도권은 늘 순환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문화 패권을 쥐었다고 들뜰 일도 아니고, 다른 나라 문화에 잠식해있는 것 같다고 해서 특별히 슬플 일도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즐기고 만족하면 될 일이다. 

 국립고궁박물원은 전시실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소규모 기획전을 다수 하고 있다. 전시실 사이를 이동하는 복도에는 이처럼 미디어 아트 등 문화재를 활용한 볼거리를 배치해놨다. 잠시 쉴 겸 앉아서 보고 있었는데 작품 속 인물들이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처럼 묘사되어서 재밌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전 관람을 마친 후 박물관 옆에 있는 ‘고궁정화’라는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왔다.

밖으로 나가면 박물관 대표 사진에서 자주 봤던 전경이 보인다. 박물관 건물 곳곳에 국기가 걸려 있는데 이 곳 뿐만 아니라 대만 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기념일이라도 되는줄 알았다. 중국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다른 나라들의 외면과 그로 인한 고립이 어쩌면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을 이렇게나마 더 드러내고자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고궁정화’에서 코스 요리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살짝 양이 부족했지만 다시 전시를 봐야 하기에 괜찮았다. 함께 테이블에 앉은 일행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에게 작품 설명을 더 해주면 안되냐는 요청을 해서 흔쾌히 하기로 결정했다. 

미술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최고의 작품들은 쉬러 수장고에 들어가 있느라 볼 수 없었지만 그에 준하는 작품들이 대신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 작품들도 화가들마다 각자의 개성을 잘 담고 있어 설명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오히려 책으로 보지 못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북송, 남송, 원, 명, 청대의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보며 이 작품들을 볼 때 어느 부분을 봐야 하는지, 시대별 특징과 화가들마다 필묵법과 구도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주로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3시쯤 타이베이 당대예술관에 현대미술을 보고 싶은 일행들은 떠났고 나와 다른 일행들은 이곳에 남아 전시를 더 관람했다. 

여기는 도자기 전시실이다. 당대 당삼채부터 청대 법랑채까지 시대별, 가마별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기획의 측면에서는 평이하기 그지 없지만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훨씬 좋다. 전시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작품을 보러 왔으니 말이다. 

정요에서 제작된 백자들이다. 당연히 모두 유약으로 코팅되어 있긴 하지만 투명함을 머금은 조선시대 백자와 달리 하얀 페인트를 칠한 것 같은 채색감각을 특징으로 한다. 바로 위에 있는 이 목이 긴 병(長頸甁)은 연꽃 잎의 문양을 음각으로 표현했다. 어딘지 계속 낯이 익다 싶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일했던 호림박물관의 보물 중 하나인 <백자상감모란문병>과 추상적인 문양 표현이 닮아서 그런 것이었다. 

<백자상감모란문병>, 15세기, 높이 29.6, 호림박물관

송대 여요에서 제작된 청자 화분이다. 북송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에도 얼마나 귀했으면 바로 들어선 남송대에도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긴 세월을 견뎌내어 청대 황실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와있는 것을 보니 감동이 배가 되었다. 1,1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뎌야 하는데도 저 가냘픈 두께를 유지하고 유약도 매우 고르고 얇게 칠해져 있어 함부로 만지지도 못했을 것 같다. 도자기들은 잘 보이지 않는 굽 부분에는 유약이 발라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이 작품은 윗면과 동일하게 발라져 있다고 한다. 명품의 조건을 모두 갖춘 작품이다.

전시 해놓은 것을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어떤 작품에 받침대를 더할지, 배치는 사선이 좋을지, 와글와글하게 놓는 게 좋은지 수없이 시뮬레이션 했었다.


화산1914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화산1914라는 곳에 들렀다. 관광 겸해서 왔는데 볼거리도 많고 비로소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로치면 성수, 합정의 플리마켓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거리 공연도 잠시 구경하고, 

근대 건축물을 개조하여 들어간 영화관도 구경하고, 

기념품으로 살 만한 게 있는지 상점들도 둘러봤다. 

저녁 식사는 스시 뷔페에서 했다.


10/23(4일차)

서문정 거리

4일차인 월요일에는 어차피 박물관과 미술관이 휴관이기에 억지로 공부 코스로 짜지 않고 기념품도 살 수 있도록 관광지에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고 짐을 챙기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명동에 가듯 대만은 서문정 거리라고 한다. 가보니 거리 풍경도 비슷했다. 

대만 기념품으로 많이들 사가는 펑리수 전문점에 들렀다. 펑리수라고 해서 처음에는 음료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파인애플이 들어간 과자였다. 뻑뻑하고 배가 더부룩해져서 쿠키류를 거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이 날도 가족에게 선물로 줄 펑리수를 사기만 하고 시식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었다. 편의점에서 사먹는 쵸코칩스러운 인스턴트 느낌이 나지 않고 집에서 구워먹는 건강한 쿠키의 맛이었다. 

펑리수를 산 후에는 각자 흩어져서 구경하기로 했다. 딱히 기념품 살 건 없어 보여서 거리 풍경을 눈에 담으며 돌아다녔다. 홍콩, 대만 영화에서 보던 그 풍경이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집합 시간이 남아 스타벅스에 들어가 쉬었다. 세계 어딜 가나 들를 수 있는 한국인의 쉼터이자 만남의 광장, 스타벅스. 

공부 연차가 쌓이면서 생긴 변화 중에는 도록을 잘 사지 않게 된다는 점도 포함된다. 어릴 때는 그저 쟁여두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이 도록, 저 도록을 사왔는데 이제는 내 전공분야도 확실하고, 어지간한 작품 도판은 다 갖고 있다보니 굳이 힘들게 사오질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날인 이 날까지도 도록 한 권 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이 서점에 들러 이 잡지를 사왔다고 보여줬는데, 보자마자 ‘이건 사야 된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있는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잡지를 살 사람들과 쏜살같이 서점에 가서 사왔다. 『전장(典藏)』이라는 이름의 미술사 전문 잡지였다. 마침 한국미술사를 주제로 삼아서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개최한 고려불화전, 조선초기 회화전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독립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미술사 전문 잡지를 발행할 계획이어서 구성을 짜는 데 많은 참고가 될 것 같다.

타오위안 공항 출국장에는 면세점들과 함께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운영하는 뮤지엄샵도 있다.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기념품을 살 만한 게 있는지도 살펴보고 남은 동전들도 처리할 겸 다녀왔다. 딱히 사고 싶은 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고 싶은 건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다가 더 정확하겠다. 그나마 작은 사이즈로 복제한 오대, 북송대의 명품인 화북산수화들을 사왔다. 나의 작품 소장 능력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그래도 정교하게 복제되어 있어 서재를 장식하는 용도로는 알맞아 보였다. 마침 사이즈가 딱 맞아 이케아에서 예전에 샀던 피카소 스케치는 떼어 버리고 그 안에 넣어서 다시 장황할 예정이다.

이 기념품을 사는 것으로 가을의 대만 아트투어는 끝이 났다. 주로 일본을 다녔던 나에게도 견문의 차원이나 이국의 맛이나 여러모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공부 때문에 앞으로도 일본을 자주 다녀 오겠지만 순수 여행을 가게 된다면 대만을 우선 고려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