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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듯 먼 봄날의 숲 by 김민주

한 달 넘게 재택 근무를 했다. 2월 말부터 지난 주까지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마 모든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재택 근무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무실에 나올 때도 꽤 많았다. 이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결재 서류 챙기러 오전 시간 느지막히 사무실에 나왔는데 마침 친한 직원도 나와 있었다. 그동안 항상 엇갈려서 못본지 꽤 된 듯했다. 반가운 마음에 오늘은 조금 걷더라도 맛있는 것을 먹으러가자며 길을 나섰다. 나는 식욕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지 않는 편인데 그런 내가 이런 제의를 했던 것을 보면 오랜만에 꽤 반갑긴 했던 모양이다. 서울역 광장을 지나 염천교로 슬슬 걸어갔다. 여전히 쌀쌀했지만 그 차가운 공기 가운데 포근한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

로즈 와일리(Rose Wylie), 유쾌한 이웃집 할머니같은 영국 화가

삼청동 초이앤라거갤러리에서 지난 2월에 로즈 와일리 전시를 했다. 그 소식을 이제서야 알게 되어서 아쉽다하던 참에 연말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크게 전시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중문화에서 소재를 차용한 구상 회화이기에 공부없이 봐도 즐기기 좋은 그림들이다. 할머니, 왠지 유쾌하신듯. 로즈 와일리 인터뷰 자료 ▼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가서 먹는 츠케멘. 더워지면 더더욱 자주 갈 것 같다. 지금까지 먹어본 츠케멘 중에서 제일 맛있다. 일본 본토에서 먹은 것보다도! 만리동 유즈라멘(안국동에도 2호점이 얼마 전에 생겼다)에서 먹을 수 있다. 여긴 만리동에 있는 라는 카페이다. 본래 사진 현상소였던 건물을 카페로 변경한 듯하다. 자리와 자리 사이가 넓어서 시원한 공간이 특징이다. 인스타그램용 사진 찍기..

최근에 산 책들(2020. 03)

이제서야 연구되기 시작하는 근대 공예사에 관한 책이다.어떤 도자기는 미술이고, 어떤 도자기는 제품이라고 해야하나? 예전에 강의할 때 도자기에 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도자기는 당시의 '락앤락'인 경우가 많다.요즘 우리가 냉장고에서 반찬을 담아놓을 때 쓰는'락앤락'에 대해 일기, 하다 못해 그에 관한 메모조차 안남기지 않나.그만큼 생활용기라는 얘기이다. 전통 도자, 공예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한다.그래서 작가를 알 수 없는 장르에 대한 연구가 어려운거다라고 설명한 바가 있다. 갑자기 강의할 때 생각이 나네.강의할 때는 몸은 지쳐도 보람되고 좋았는데 조금 아쉽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면서 아무 데나 펼쳤을 때 '이 책이다'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은 현재 우리 도시에서 모든 ..

한 권의 책 2020.04.22 (1)

인류를 위한 교황의 기도

평소라면 관광객들로 가득찼을, 아니 지금의 성베드로성당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조성된 이래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찼을 이 곳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인적이 끊겼다. 그곳에서 교황은 홀로 나와 인류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p.s. 나중에 이 장면은 재난 영화에서 레퍼토리처럼 쓰일 것 같다. 911 테러 당시 비행기가 빌딩에 부딪치는 장면처럼.

카테고리 없음 2020.04.19 (2)

지난 3개월간의 기록 vol. 2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딱히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침에 출근하면 조용한 전시실을 체크하며 한바퀴 돌아보고 온다. 습관이 되었달까. 전시실에 올라가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다. 우지영 작가가 베르사유 궁전에 조성돼 있는 라토나 분수대를 서울의 제작 환경에서 흔히 발견되는 자재와 재료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오픈 전이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졸졸졸 흐르고 있는 이 욕조를 보면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적막을 깨는 조용한 물소리와 힘을 빼고 겨우 솟아오르는 물을 볼 때마다 묘해진다. 힘있게 솟구치면 오히려 관심도 안가졌을 것 같다. 초현실주의 작품의 'uncanny(낯선 두려움)'하달까. 날계란을 손에 쥐고 있으면 괜히, 아무 이유없이 바스라뜨리고 싶은 기분과 비슷한 느낌이다. 전시 철수할 때 작가..

일상 2020.04.04 (4)

지난 3개월간의 기록 vol. 1

1. 새 직장으로 첫 출근하는 날. 9시까지 본원으로 출근하라고 해서 일부러 서둘러서 8시 20분쯤 도착해 옆의 커피빈에 있다가 들어갔다. 나는 지금까지 직장이 대부분 강남이었다. 대학원에 가기 전에 다닌 광고대행사도 한 때 광고대행사의 메카라 불리던 신사역이었고, 박물관도 그 근처였다(돈도 많으면서 왜 그곳에 지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ㅎㅎ). 광화문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로 출근할 것이었다. 그래야 어차피 뻔한 직장 생활에서 버티는 힘을 갖게 되고 그 가운데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광화문으로 출근하면 퇴근하고 교보문고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그렇게 갖고 싶었다. ..

일상 2020.03.2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