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큐레이터의 단상

소위 ‘사’자 직업이라는 검사, 의사의 어원

by 아르뜨 2019. 5. 17.


참 충격적인 뉴스가 연이어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나는 어제 특히 두 가지 뉴스에 꽤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검찰총장의 하극상이고, 다른 하나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철회되었다는 소식이다.

공교롭게도 두 소식의 주인공들 모두 소위 ‘사’자 직업이라며 한국사회에서 특별히 존중되어온 직업군이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사’자 직업을 갖는 것만이 성공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왔다.

선비, 사대부만을 존중하는 전근대적 인식이 현대사회까지 관통하면서 ‘사’자 직업을 ‘선비 사(士)’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많이 희석되었지만 여전히 ‘사’자 직업의 위상은 공고하다.

특히 검사는 <내부자들>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영감님이라고도 부른다. 지들끼리, 혹은 검사에게 잘 보여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같다. ‘영감’은 본래 조선시대에 정3품 이상 고위 관직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이 단어를 끌어와 검사를 높여준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검사의 ‘사’자를 조선시대의 권력 감시 기관이었던 삼사(三司 :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사(司)’일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감찰업무를 담당했던 사헌부(司憲府)가 지금의 검찰청과 성격이 유사하기에 ‘사(司)’로 생각하는 데 힘을 실어준다.

그런데 검사는 그 ‘사(司)’가 아니라 검찰사무관의 약어로서 검사, ‘일 사(事)’자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검찰청의 사무를 담당하는 직원이라는 의미이다. 판사도 마찬가지이다. 사법부의 사무관이라는 의미이다. 즉 일을 하는 직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의사의 ‘사’자 역시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스승 사(師)’를 사용한다. 의사는 왜 변호사, 세무사처럼 ‘선비 사(士)’를 쓰지 않고(여기서 선비 사는 전문성을 의미한다) 홀로 ‘스승 사(師)’를 사용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되는건 일제의 잔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때 서양의 문물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근대 국가의 체제를 완성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 중에 의사 출신이 많았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 18세기 네덜란드와 교역을 통해 ‘난학’이라고 하는 서양 지식을 처음 받아들인 사람들도 의사들이었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의사를 근대 국가 건설에 공을 세운 국민의 스승,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스승 사(師)’를 붙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인식이 유입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유독 의사에게만 ‘의사 선생님’이라고 당연하게 부르곤 한다. 사실 동어 반복이고, 우리에게 특별히 지식을 전수해주는 사람이 아님에도 “선생님”이라고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지금까지 소위 ‘사’자 직업으로 존중받아왔던 검사, 판사, 의사들의 일탈 행위, 국민에 대한 배반행위가 극에 달하는 요즘이다. 이런데도 ‘사’자 직업을 자랑스러워하고, 부러워하고, 추구하는 자들은 그저 연봉이 많은 것을 부러워하는 것에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높은 연봉을 부러워하는 것은 문제될게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욕망이다. 그러나 존경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 아닌가? 천박한 의식의 발로이다.

검사는 유독 노무현 대통령 때 ‘검사와의 대화’를 비롯하여 민주정부일 때만 반기를 들고, 판사는 그동안 쌓여온 폐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고, 의사는 직업 이기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다.

더구나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에 불과하다. 비교하자면 문화체육관광부의 외청인 문화재청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이다. 나는 지금까지 문화재청장이 문체부 장관, 더 올라가 청와대의 뜻에 감히 반기를 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검찰총장(청장이 아니라 왜 총장이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만)이 법무부 장관을 들이받고, 청와대에 칼 끝을 돌리는 것은 반역이다.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뭔 짓을 하기에 CCTV 설치를 거부하는가. 직업인으로서 의무를 하기만 하면 거리낄게 없지 않은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은 국민의 건강,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로 민주당 주도로 진행되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결정적일 때 민주당과 항상 반대의 길을 걷는 김진표 의원이 법안 발의에 동참했다가 철회했다고 한다. 이 법안은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생명을 의사에게 맡겨두고 노심초사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인데 이걸 굳이 거부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드라마 <미생>의 대사가 떠오른다.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해. 일을. 게임(파워게임, 정치) 하지말고.”

태그

,

댓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