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영화, 음악 그리고...

스마트워킹을 활용한 논문 작성법(feat. 워크플로위, 스크리브너, 노트 카드)

by 아르뜨 2019. 5. 3.

이전 글에 내가 논문을 쓸 때 왜 스마트워킹을 활용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썼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나의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https://artntip.com/996)

 

1. 온전한 스마트워킹은 없다.

 

IT 기기의 발달과 유행은 우리를 편하게 해줄거라는 막연한 환상과 더불어 수많은 신조어를 낳았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트업, 스마트워킹이라 생각한다.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 특히 IT와 관련된 이들은 하나같이 스타트업으로 불리고, 그러길 원한다. 2000년대에는 벤처회사라 부르길 원하더니 이제는 스타트업이랜다. 스타트업의 사전적 개념은 혁신적인 아이디어 혹은 기술을 보유한 새로 생긴 회사로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이전 단계를 의미한다. 이 점에서 벤처회사의 개념과 차이가 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창업하면 전부 스타트업이라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 신화의 아우라에서 발생한 인식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냥 신생기업이라고 하면 그렇게들 촌스럽게 느껴지나 보다.

 

스마트워킹도 같은 인식 속에서 유행하는 것 같다. 워킹은 어쩔 수 없이 하긴 해야하는건데 이왕이면 스마트하게 하고 싶은 마음. 이게 스마트워킹의 본질이다. 그러나 스마트워킹이라 하면 1부터 100까지 전과정을 편리하게, 손쉽게 일을 끝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곁가지로 끼어든 듯하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되는 사실은 우리에겐 아직 아이언맨의 자비스가 없다는 점이다.

 

즉 보조도구로서 스마트워킹에 접근해야지, 전과정에 스마트워킹을 도입하려 하면 주객전도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예를 들어 논문은 글의 완성도가 중요한 것이지, 어떤 프로그램을 썼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글의 완성도란 결국 나(인간)의 생각과 이를 증명하기 위한 논리 개발에 달려있다. 이건 그 어떤 어플을 가져다 써도 해결해줄 수 없는, 전적으로 인간의 영역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기 혹은 어플을 쓰면 다 해결될 것이라는 마음보다는 조금 도움이 된다는 마음으로 스마트워킹에 접근하는게 좋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해야 속이 편해질 것이다. 스마트워킹에 종속되어 버리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에버노트를 잘 활용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모든 아이디어를 에버노트에 저장해두고, 나중에 빨리 찾기 위해 노트에 태그까지 정성스럽게 달아놓았지만 정작 나중에 필요할 때 그 태그마저 잊어버려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차라리 노트에 펜으로 적어놨다가 필요할 때 "촤라락~"넘기며 찾는게 더 빠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에 스마트워킹의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왼손은 거들 뿐"이라고 했던 것처럼 IT 기기 역시 "나를 거들 뿐"이라는 마음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2. 노트 필기

 

나는 지난 10년 동안 에버노트, 드롭박스, 구글, 개인용 NAS 등 안써본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로 조금이라도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으면 한 번씩 다 써봤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결국 아이디어는 종이 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에버노트, 원노트에 생각나는대로 아이디어를 적어보기도 하고, 스마트폰 속 기본 노트 어플에 적기도 했지만 아이디어는 차분하게 앉아서 공부할 때 틈틈이 쓴 필기 내용을 보며 나올 때가 더 많았다.

 

아이패드나 PC를 켜놓은채 논문을 읽다가 에버노트 등에 요약 정리해봤자 금세 산만해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런 어플들이 아무리 편리해도 사람이 직접 필기하는 것만큼 완벽하게 표기해줄 수는 없기 때문에 공부 내용을 음미하기 보다 노트 타이핑에 정신이 팔리기 쉽상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논문을 쓰기 전 처음 공부를 할 때는 몰스킨이나 리걸패드와 펜 하나만 들고 도서관에 간다. 종이로 출력한 논문들 혹은 아이패드로 PDF를 읽는 것에 더 집중한다. 내 경우엔 논문을 읽으며 쓴 요약 필기가 10페이지 정도되면 얼추 글쓰기로 진행되도 괜찮았던 것 같다.

 

3. 노트 카드 작성

 

움베르토 에코와 같은 서양의 학자들은 대부분 꼭 노트 카드 쓰는 것을 습관화하라고 주장한다. 『에디톨로지』의 저자 김정운 교수도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 가장 놀랐던게 그곳 학생들은 노트 필기를 주로 하는 한국 학생들과 달리 카드 작성을 일상적으로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암기용 시험은 노트 필기가 도움이 되지만, 논문같은 글쓰기에는 카드가 훨씬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편집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도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하워드 S. 베커의 『사회과학자의 글쓰기』, 김정운의 『에디톨로지』를 읽은 이후 논문용 공부는 전부 노트 카드에 필기하고 있다. 몰스킨같은 노트에 필기하면 공부하는 맛은 확실히 좋다. 솔직히 멋져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대로 내용을 옮기기 어렵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불편하다. '이 내용 어디다 썼더라'라며 이리저리 넘기기도 바쁘고, 무엇보다 생각의 흐름, 구조가 한 눈에 파악되기 어렵다.

 

그러나 노트 카드 1장당 내용 하나씩 써놓으면 내가 생각한 글의 구조대로 순서를 재배치하고, 이를 다시 검토하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글을 쓸 때도 옆에 순서대로 배치한 노트 카드만 놓고 그대로 글을 써나가기 아주 편해진다. 이 점에서 일반 노트 필기보다 카드 필기를 추천하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노트 카드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공부의 양은 카드의 양과 비례한다."

 

이렇게 카드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공부할 때 스트레스도 덜 생기는 것 같다. 어차피 한 번 카드에 써놓으면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고 온전히 내 것이 되기 때문에 기억해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시험을 보는게 아니지 않은가.

 

워크플로위 PC 화면(이 글도 워크플로위로 개요짜고 그대로 작성해봤다)

4. 워크플로위로 개요 짜기

 

논문을 써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글의 내용 못지 않게 개요도 수시로 바뀐다. 참고로 나는 석사논문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2년 후 완성될 때까지 목차가 바뀔 때마다 따로 저장해뒀는데 그 목차의 수가 무려 47개나 된다. 그만큼 글을 쓰는 과정에서, 즉 공부가 쌓여가면서 목차가 바뀐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할 때마다 목차가 바뀌면 이에 맞춰 글 내용도 바뀌기 때문에 손을 댈게 너무 많아진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최대한 짜임새 있는 구조를 짜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사용하게 된 것이 바로 '워크플로위(Workflowy)'였다.

 

워크플로위 아이패드 화면. 심플하고 가벼워서 집중하기 좋다.

1인 기업가들, 메모 관련 책 작가들 중심으로 워크플로위가 꽤 화두여서 그동안 눈여겨 보고 있던 참이었다. 일단 프로그램이 무겁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는데 나한테 어떻게 적용할지 일단 키핑만 해둔 상태였다. 그러다가 도움되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올해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만족스러웠다. 아마 이번에 워크플로위가 없었다면 논문 쓰다가 목차 수정하고, 글 내용 바꾸느라 시간이 배는 더 들었을 것이다.

 

 

워크플로위 아이폰 화면. 이동 중에 복기하고 검토할 때 주로 본다.

노트 카드를 보며 각 항목당 글의 키워드 혹은 주제 문장만 적어두고 일단 내가 생각한 구조대로 워크플로위에 배치한다. 그렇게 써내려가다 보면 앞 뒤 순서를 바꿔야 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 그러면 간단하게 순서를 재배치할 수가 있다. 그리고 추가 내용이 생기면 간단하게 끼워 놓으면 된다.

 

그리고 수시로 워크플로위를 보며 복기를 한다. 이 흐름이 정말 괜찮은지, 빠진 내용은 없는지를 생각하면서 최종 정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나의 글, 혹은 발표문이 한 눈에 펼쳐지면서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이러면 본격적으로 글을 써도 된다.

 

스크리브너 화면. 키워드별, 단락별로 쓰기 편하다.

5. 스크리브너로 살 붙이기

 

초고를 쓸 때 바로 워드 프로그램에 쓰지 않고 나는 스크리브너에 쓴다. 예전에도 스크리브너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글쓰기 프로그램, 스크리브너(Scrivener)), 스크리브너는 글을 단락별로 쓰기 좋은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는 작가들이 오로지 스크리브너를 쓰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맥북을 산다고들 한다. 그만큼 맥북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이지만 일반 윈도우 PC로도 충분한 편이다.

 

나는 맥북은 안쓰는데 대신 아이패드 프로를 잘 활용하고 있다. 노는 것도 아이패드, 글쓰는 것도 아이패드, 강의할 때도 아이패드로만 할 정도로 잘 쓰고 있는데, 다행히 스크리브너도 아이패드에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초고를 쓸 때는 아이패드와 노트 카드만 들고 나가서 카페나 도서관에서 워크플로위와 노트 카드를 보며 단락별로(즉 워크플로위 한 줄당 하나씩)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필요한 자료는 이미 구글 드라이브에 다 넣어둔 상태라 테이블이 깔끔해진다. 심플하게 글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스크리브너의 위력은 단락별로 쓴 글을 이리저리 재배치하기 좋다는 점에 있다. 무엇보다 아이패드로 충분해서 무겁게 노트북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심플하게 도서관 책상에 아이패드와 노트 카드만 놓고 집중할 수 있다.

 

초고는 써놓은 글을 삭제하거나 재배치할 일이 정말 많다. 이럴 때 스크리브너가 도움이 된다. 예전에 한글 오피스만 쓸 때는 마우스휠을 마구 돌려가며 문단을 복사해서 저 뒤에 배치하고, 다시 돌아오는 일이 잦았는데 그리 하다보면 머리 속이 복잡해졌던 것에 비하면 아주 편하다.

 

심지어 스크리브너로 각주도 달 수 있다. 마치 노트에 필기할 때처럼 자유자재로 내가 첨부하고 싶은 것은 거의 다 가능하다. 그리고 나중에 MS 워드나 PDF로 변환하면 각주까지 온전하게 뽑아낼 수 있다. 단, 한글 오피스는 불가능하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6. 최종 정리

 

인문학 계열은 MS 워드보다 한글 오피스를 더 많이 사용한다. 아예 한글 오피스로 제출하라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스크리브너에 쓴 글들을 어느 정도 완성 시점이 되면 하나씩 한글 오피스에 붙여넣기로 초안을 완성하고 최종 작성은 그대로 한글 오피스에서 한다. 이 점은 결코 스마트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한글 오피스로 쓰기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시간과 노력 면에서 훨씬 수월하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최종 완성하기 직전까지 노트북을 들고 나가 본 일이 없고, 글 구조를 짜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느끼질 못했고, 뭔가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컸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최종 완성본까지도 워크플로위와 스크리브너만으로도 충분해질 날이 오겠지만, 글을 완성하기까지 중간 단계를 편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일단 만족하고 있다. 글쓰기, 논문을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하고 싶은 분들은 한번 워크플로위와 스크리브너를 이리저리 만져 보시길 권한다. 그러다 보면 본인에게 적합한 방식이 생길 것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