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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큐레이터의 단상

유일하게 '국뽕'이 되는 시간

by 아르뜨 2019. 4. 29.

 

평소 가장 싫어하는 말은 '우리네'이다.

'우리의', '우리'라고 해도 충분한데

굳이 '우리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달하기 보다

일단 감정에 호소하기 위한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든다.

 

'지켜야 할 우리네 문화'

'가장 우수한 우리네 문화' 등등

 

꽤 간지러운 표현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민족의 두뇌" 등의 표현도 아주 싫어한다.

 

민족, 국가 개념 자체가

위정자들이 국민을 통제하고 조종하기 위해 만든 근대적 개념이라는 것도

거부감의 원인이기도 하다.

 

사람 한 명이 갖고 있는 존재감, 존중받아야 마땅한 가치인데

국가, 역사, 민족 단위로 묶어서 실질적인 이득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자랑스러워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위 '국뽕'에 취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에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나조차도 어쩔 수 없이 '국뽕'에 취하는 때가 있다.

그건 바로 남북화해, 통일과 관련된 뉴스를 볼 때이다.

이런 뉴스는 한없이 감상적으로 흐르게 만들어 준다.

 

더구나 감성적으로 되는 데 한 몫하는 음악까지 곁들여진다면

나는 열렬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이 되고 만다.

 

판문점 회담 1주년이 된 어제

오랜만에 작년의 영상들을 찾아봤다.

 

남북 두 정상이 만나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판문점 공동 선언>을 하고

만찬을 즐긴 후 헤어지기 직전의 영상은 백미였다.

 

트렌드가 지나도 한참 지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가 흘러나오며

남북 두 정상 내외가 걸어나오는 모습은

나를 완전히 넉다운시켜 버렸다.

 

그동안 국뽕이니, 전근대적이니 뭐니해도 다 필요없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막 그냥 최고이고,

가장 수준 높은 문화강국이고,

남북이 합치면 세계최강이고

막 그렇게 된다.

 

https://youtu.be/uzDrvr1Vh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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