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전을 보고 / 서울시립미술관


1950년대는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이 유입되면서 서양화단뿐만 아니라 동양화단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시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양미술의 전통이 아닌 서화 중심의 동양미술 전통이 근간으로 발전해온 우리나라 화단에 갑자기 서양 현대미술이 들어온 문화적 충격이라 할 만하다. 생선은 당연히 구워먹는 것이라 여겨왔던 서양인들이 회를 처음 접한 격이랄까. 이럴때 당시 우리나라 화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떤 눈으로 추상회화를 바라봤을까.

이 의문은 현재 학계에서도 활발하게 논의중인 주요 논점이다. 이 논의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동양화단, 서양화단으로 양분하여 연구해온 풍토를 통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술사에서 전공을 구분할 때부터 한국미술사, 서양미술사로 구분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미술사 전공자들은 근대를 연구할 때 동양화단을 주목하고 배경지식도 지필묵의 동양회화가 근간에 깔려있어 서양미술을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서 오히려 서양미술사 전공자가 연구할 때 단점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근현대를 수놓은 대부분의 화가들은 처음 회화학습을 할 때 동양회화로 시작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론을 이해하려면 문인화론과 같은 동양회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강생들이나 후배들이 진학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오면 '만약 나라면?' 혹은 '만약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하라고 할까?'를 염두에 두고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인생에 중요한 것은 공부만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정말 공부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근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면 한국미술사 전공으로 진학하라고 이야기해줄 것 같다. 서양미술사를 깊이 공부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국 최종 연구할 대상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에 의한, 한국미술, 한국문화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개 전공을 정할 때 시대로 구분하곤 한다. 그래서 서구권 외국 학자가 나에게 뭘 전공하냐고 물었을 때 "한국회화사를 전공한다", "중국불교미술을 전공한다"는 식으로 말해주면 갸우뚱거릴 때가 많다. 그들은 "18세기 미술을 전공한다", "르네상스시기 미술을 전공한다" 등 시대 전반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시대로 전공을 구분하면 그 시대의 미술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제작된 회화, 조각, 공예, 건축, 그리고 각종 시각이미지까지 모두 연구해야한다. 왠지 전공의 샤프함(?)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넓게 공부해야 외곬수적인 생각을 방지할 수 있다. 다채로운 학설 전개도 가능하다. 점차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랜만에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러 <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 전시를 보고 왔다. 급하게 미술관 2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을게 있어 갔다가 겸사해서 전시도 봤다. 한묵의 전성기를 장식한 작품은 그래픽적인 요소가 강한 기하학적 추상회화이다. 그러나 그의 회화전개를 전반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의 화업도 역시 붓과 먹을 사용한 경험이 묻어나오는 작품도 상당하다. 그리고 최소 조형요소인 색, 선을 통한 형태의 발현에는 도교적 세계관도 감지할 수 있다.

이 전시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 연세에도 회화혁신을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 점에 놀랐고, 젊은 나보다 훨씬 젊은 감각에 놀랐다. 하지만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서양 미술사조라는 틀 속에 위치한 공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통 서화의 추상성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급하게 논문 한 편을 쓰고 있어 정신없긴 하지만 얼른 마무리짓고 다시 한 번 보러갈 예정이다. 전시는 3월 24일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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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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