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문화는 특징으로 봐야 한다.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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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e Seollal at the British Museum

안녕하세요.
이장훈입니다.

지난 설 연휴 편히 보내셨나요?

저는 오랜만에 전도 부치고, 이제 갓 돌이 지난 조카랑 놀며 재밌게 보내고 왔습니다. 아직 기어다니는데 포복 자세도 안정적이고 굉장히 빠릅니다. 요트가 물살을 가르듯 바닥을 가르며 쭉쭉 뻗어 나가는 모습이 아주 일품입니다. 그리고 또 파워풀해서 놀아주는데 결국 제가 먼저 지치더라구요. ㅎㅎ

월, 화요일에는 푹 쉬었습니다. 유튜브로 이것 저것 보며 때 되면 식사하고, 술도 한 잔 하며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뉴스를 보는데 한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 설 당일에 영국박물관에서 ‘설맞이(Celebrating Seollal)’ 행사를 개최하며 우리나라의 전통 공연과 함께 한국관 전시 설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설날(Seollal)’이라는 고유명사와 함께 이를 ‘한국의 음력 설(Korean Lunar new Year)’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본래 영국에서는 오랫동안 ‘중국 설’이라고 표기해오던 관습이 있었는데 아시아의 보편적인 명절이라는 점을 안 이후에는 ‘음력 설(Lunar New Year)’로 바뀌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더하여 우리나라 문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번에는 특별히 ‘한국의 음력 설(Korean Lunar new Year)’이라고 한 것이죠. 이를 두고 늘 그랬듯 중국인들의 거친 항의가 있었고 결국 영국박물관은 관련 트위터를 삭제했습니다.

제 개인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중국은 90년대까지는 별다른 관심조차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약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수교하며 개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데다가 그때만 해도 미국과 유럽, 일본 위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아버지께서 이제는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며 중국어반으로 가면 좋겠다고 하시긴 했습니다. 한중 수교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의 활발한 중국 진출을 보시며 70년대 중동 붐의 경험이 떠오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프랑스어반으로 진학했습니다. ㅋ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했는데 갑자기 학교 캠퍼스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엄청 많아진 걸 보고 꽤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때가 2003, 4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유학생 버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프로그램의 오리엔테이션을 갔는데 학교 관계자가 나중에 경복궁에 답사를 가게 되면 중국인 유학생들과 절대 싸우지 말라는 당부를 하더군요. 이런 일이 빈번하다면서 말이죠. 경복궁에 가면 중국인 유학생들이 꼭 자금성이랑 똑같네, 그런데 작네, 어쩌네라며 비웃는 일이 많은데 굳이 휘말리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요.

이 때만 해도 저는 중국이 개방한 지 얼마 안돼서 중국인들이 기분이 많이 업 됐나보다, 외국인을 대하는 매너 등을 배우는 과도기인가 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악의가 있다라기보다는 미숙함, 촌스러움 정도로 봤죠. 우리도 옛날에 유럽에 여행갈 때 전기밥솥을 갖고 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날이 갈수록 중국은 자국 중심 사상, 국수주의, 배타적 행동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행동의 근원에는 열등감과 질투가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열등감은 왜곡된 역사, 문화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중국은 급증하는 인구수를 조절하기 위해 1979년에 ‘독생자녀제’로 부르는 1가구 1자녀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습니다. 이 정책 때문에 1980년대생들은 외동이 많아졌죠. 그리고 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개방의 물결도 생기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외동이기에 대접만 받아 이기적으로 성장한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을 사회학 용어로 ‘소황제’라고 부릅니다. 동시에 중국 정부는 공산당의 집권을 공고화하기 위한 기반 작업으로 배타적 애국주의 교육을 시행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가 그랬듯이 배타적 민족주의, 애국주의는 권력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는 일종의 마스터 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타적 민족주의와 중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중화사상으로 무장한 중국의 젊은이들이 많아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왜곡된 인식에 사로잡히면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을 우승한 것도, 메시가 아르헨티나 출신인 것도 질투나고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위대한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거죠. 결국 축구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왜곡된 역사 교육과 균형을 잃은 문화 인식은 문화를 우열관계로만 따지고 문화를 전해준 쪽이 무조건 우수하다는 유아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줍니다. 문화는 특징으로 봐야 합니다. 특징으로 보지 않으면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 역시 그저 이탈리아의 짝퉁이 되고 맙니다. 문화의 전파 과정을 면밀히 살펴 보되, 어떤 특징과 차별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이 범주 안에서 가치를 논해야 합니다. 이런 인식은 너무 건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냉정한 인정에서 비로소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질투 때문에 대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으니까요.

올해도 좋은 전시가 많이 개최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 특히 마우리치오 카텔란(삼성미술관 리움, 1/31), 조선백자전(삼성미술관 리움, 2/28), 에드워드 호퍼(서울시립미술관, 4/20), 김환기(호암미술관, 4월), 장욱진(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7월)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긴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기 힘드셨을텐데 이번 주도 고생하셨습니다.
주말 편히 쉬시구요.

감사합니다.


이장훈 드림


2023. 01. 2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