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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를 만난 조선인, 안토니오 코레아

2012. 11. 2.

루벤스를 만난 조선인, 안토니오 코레아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역사라는 시대적 풍랑에 휩쓸려 버린 힘없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가장 큰 슬픔을 느낀다.

지금은 개개인의 권리와 힘이 중요시되면서 왠만큼 일이 잘못되지 않는 이상에는 개인의 사고대로, 계획대로 살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사상, 신념의 이름 아래 개인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옛날보단 개인의 힘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지금 이 시대에는 우리의 시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많고,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는게 일반화 되어 있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이러한 권리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시대였다.

특히 전근대에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 역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그 시대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성에 비추어 봤을 때 현재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민주주의가 앞으로 수 십 년, 수 백 년 후에는 어떻게 변해있을지 상당히 궁금해진다.

암튼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역사성을 인지하고, 역사 속 사건들을 단순한 책 속 한 문장이 아닌 실재감을 느끼려고 하는 학생으로서 역사 속 풍랑에 휩쓸려버린 인생에 대한 지적 호기심, 혹은 인간적 연민은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성향 때문에 가장 가까웠던 난세인 20세기 초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의 개인의 삶이 어떠했을지도 상당히 궁금해진다. 그래서인지 작년 연말에 개봉한 영화 <마이웨이>를 남다르게 기대하고, 감상했던 것 같다.(☞ 영화 마이웨이를 한 번 더 보고)

물론 영화 <마이웨이> 속 시대배경은 불과 얼마 전이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 초중반의 이야기이기에 그나마 실감이 크게 났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할아버지 세대가 직접 겪었던 시대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대적으로 가까이 느껴지는 느낌없이도 인간적인 연민과 슬픔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그림 한 폭이 있다. 1608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현재와 무려 400년이 넘는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그려진 내막을 알고나면 영화 <마이웨이> 속 주인공의 비참함은 저리 갈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한복 입은 남자>, 1608, 폴게티미술관

바로 플랑드르 지역의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가 그린 드로잉 한 폭이다. 우리에게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작품은 1590년대 발발한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일본군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 포로가 노예로 팔리며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로마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루벤스가 그림을 그렸다는 설로도 유명하다.

문헌 상으로 증명되는 바가 없기에 현재까지 설로 남아있지만 얼굴에서 확인되는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골격과 의복(철릭이라고 부르는)은 루벤스가 어떤 경위에 의해 우리나라 사람을 보고 그렸음을 알게 해준다. 특히 이탈리아 어느 지방에 모여 사는 Corea씨가 바로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이라는 설은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해준다.

더불어 항간에는 이탈리아의 피자와 파스타가 이 당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건너간 파전과 국수가 원형이 되었다고까지 한다. 물론 이건 과장된 이야기인듯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림 속 인물의 골격과 의복만큼은 조선인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나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영화 <마이웨이>의 모티브가 되었던 '노르망디의 코리안'이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 틈에 섞여서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채 대륙의 반대편인 프랑스 노르망디에 당도하기까지 느꼈던 한없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이 안토니오 코레아에게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어찌보면 절망감과 막막함은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노르망디의 코리안'이야 당시 신문 등을 통해 서양인들이 모여 사는 유럽(당시 구라파라고 부르던)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테니 안토니오 코레아에 비해 막막함은 그나마 덜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안토니오 코레아는 잔인하기만 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코쟁이들에게 팔리고, 당시로서는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지만 갈 수 있는 인도양과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 여정 속에서 그는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감히 '절망감'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너무 미안하고, 무책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바닥이 안보이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을게 분명하다. 태어난 고향을 벗어나는 것조차 쉽게 생각할 수 없었던 시대의 인물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탈리아 로마까지 가게 되다니 말이다.

루벤스의 이 작품을 볼 때면 "가장 슬픈 영화는 멜로도 아니고, 전쟁 영화도 아닌 바로 다큐멘터리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는 식상해질 정도로 많이 접했던 감동 코드를 작위적으로 심어놓은 어설픈 멜로 영화보다 잘 구성된 다큐멘터리가 더 슬픈, 그런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듯 하다.(그래도 안토니오 코레아를 소재로 한 웰메이드 영화 한 편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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