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태풍과 조우하다.


일본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태풍과 조우하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이미지와 풍경이 각인되어 있죠? 자신의 경험에 의거한 이미지의 편린들이 모여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풍경이고, 평범한 냄새이지만 유독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떠오르게 되는 그런거요.

저 역시 저만의 민감한 풍경과 냄새가 있는데, 오늘처럼 강풍과 함께 비가 내리는 날이면 유독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외국에 갈 때 현지에서 운전을 한다라는 개념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장을 가건, 개인적으로 답사를 가건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멘채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박물관들을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다니는게 정확하게 서른이 되니까 유독 버겁게 느껴지더라구요.

사실 서른이면 굉장히 젊은거고, 체력에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힘들거나 그런건 아니었는데 뭐랄까.. 그렇게 많은 짐을 들고 짧은 일정을 소화한다는게 굉장히 허무하면서도 비효율적인 듯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 한 곳을 다녀올 때마다 그 박물관에서 간행한 도록을 가득 사오게 되기 때문에 짐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몇 년을 다니다가 어느 순간 떠오른게 운전이었습니다. 얼핏 외국에서도 국제운전면허증만 있으면 운전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게 생각이 났던거죠. 그래서 알아봤더니 다들 외국에 여행가서 운전을 잘 하고 다니시더군요. ㅎㅎ

특히 일본은 가까운 나라라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렌탈을 대행해주는 회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차를 빌려서 차로 다니자'라는 결심이 섰고, 나름 예산을 짜보니 대중교통비가 유독 비싼 일본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연비가 무려 20km를 넘나들던 일본의 렌트카.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연비이죠.

비록 차선도 반대, 운전석도 반대지만 나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신 분들도 잘 하고 다니시던데 나라고 못할까 라는 부질없는 배짱 같은 것도 생겨나서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무작정 렌탈을 했습니다. 토요타 같은 회사는 일본의국제공항청사라면 렌탈 사무소까지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후로는 왠만하면 꼭 렌탈을 해서 다니는데 이게 막상 접해보니 너무너무 편한겁니다. 예를 들어 교토에 숙소를 잡은 뒤 교토 시내만 다닐 때는 짐을 숙소에 두고 쉽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일정상 체크아웃을 할 수 밖에 없을 때는 다시 모든 짐을 짊어지고 박물관들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차를 빌리면 그런 수고가 모두 사라지는 것입니다.

차 트렁크에 모든 짐을 넣어두고 박물관에 도착해서 넓디넓은 주차장에 쉽게 주차를 하고(일본도 박물관은 평일엔 사람이 별로 없죠) 카메라 하나만 들고 유유히 관람을 하는 그런 여유로움? 여행지에서의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싶네요. 특히 여행을 즐기는게 목적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자료를 빠른 시일 안에 확보해와야 하는 식의 목적이라면 강추입니다. ㅎㅎ

암튼 요즘은 렌탈을 해서 다니는데 한번은 딱 오늘과 같은 날을 맞이한겁니다. 우리보다 태풍의 피해가 심한 일본에서, 그것도 교토에서 시즈오카로 가는 장거리의 고속도로 위에서 말이죠;;

이 때 만큼 긴장하고 겁이 났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분명히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는데 차체는 강풍 때문에 점점 옆으로 가는 그런 현상을 직접 겪은겁니다. 다행히 차들이 전부 서행하기 시작해서 다닐만 했지만 처음 느꼈던 차체의 기우뚱거림은 소름끼칠 정도였죠. 결국 휴게소만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서 쉬었다가 다시 가고를 반복하며 오후면 도착할 거리를 깜깜할 때 도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 후로 태풍만 오면 그 때 생각이 납니다. 안좋은 기억이면서도 시간의 효과 덕분에 이제는 추억으로 자리잡은 기억이죠.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또 가고 싶어지는 이율배반적인 추억이라고나 할까요? :)

이게 바로 그 문제의 현장입니다. ㅎㅎ
 

이미지 맵

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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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차가 옆으로 밀린다니 상상만 해도 무섭네요ㅠ.ㅠ

      • 정말 아찔한 기억이었어요. ㅎㅎ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럴진대, 오지에서 겪는 자연재해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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