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미술기법의 완성도

2021. 5. 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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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벽, <묘작도(고양이와 참새)>, 비단에 색, 93.9×43.0, 국립중앙박물관


18세기에 활동한 도화서 화원인 변상벽(1730-?)은 영조의 어진을 그릴 정도로 초상화로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이다. 도화서 화원이라고 하면 일단은 그 실력이 보장되는 화가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여야만 맡을 수 있는 왕의 초상을 그렸다고 하니 프로 중에 프로인 것이다.

변상벽은 이같은 공식 업무 외에 '변 고양이'라는 별명까지 가질 정도로 일생에 걸쳐 고양이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왕의 초상과 고양이 그림이라는 화제에서 받는 느낌의 무게감은 서로 너무 다르다. 같은 화가인가 싶을 정도로 하나는 너무 진중한 주제이고, 하나는 일상의 유희에 가깝다. 특히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소위 '남의 집 고양이'를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 요즘의 눈으로 보니 그 유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참고로 난 유튜버 haha ha님의 길막이 팬임).

그런데 그의 고양이 그림을 찬찬히 보면 어진을 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자세를 고쳐잡게 된다.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제작태도를 고양이 그림에서도 어김없이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신사조란 '형태를 통해 정신을 전한다"는 말로 인물의 외모 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인품과 정신세계까지 담아야한다는 인물화 제작의 정수를 닮고 있는 화론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不寫, 便是他人)'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밀한 사실성을 기본으로 인물의 정신성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높이 평가받는다.

불과 10여 년 전이었으면 과연 이것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소소한 주제가 이제는 콘텐츠로 가공되어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게 된 시대가 됐다. 나와 전혀 인연이 없는 이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부터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별의 별 주제가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성공한 콘텐츠를 보면 주제는 제각각이지만 그 속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너도 나도 다 하는' 주제를 다루지만 자기만의 관점 혹은 식견을 갖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같은 주제를 다루는 남들과 차별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별 것 없는 흔한 일상을 다룰지라도 영상미(흔히 땟깔이라고 부르는)가 좋다던가, BGM이 감성적이라던가, 아니면 자막을 센스있게 단다던가 등 그 특징은 무수히 많다.

이러한 콘텐츠 성공 방정식은 미술가에게도 통용될 것이다. 남들이 안해본 시도, 개념, 재료, 주제 등을 찾느라 골치아프고 힘겹게 느껴진다면, 모두 다 하는 것을 택하되 그 안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가운데 자기만의 이야기를 살짝 얹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나는 이런 작품을 보게 된다면 기꺼이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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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희

    세로로 긴 그림. 묘작도 사진을 크게 보니 탄탄하고 섬세하네요~ 말씀해주신대로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마지막 단락이 계속 되뇌어지네요~.

  2. 탄탄하고 섬세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거 같아요. ㅎㅎ 워낙 작품 활동에 충실하셔서 이미 충분하신데요. 좋은 작품 많이 보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