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물납제에 대하여

2021. 3. 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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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상속세를 내야하는 마감일이 다가오자 언론들 총출동" 등의 이야기를 굳이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람들이 한 가지 알아줬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미술품 물납제'의 취지는 불의의 일격으로 세금 폭탄을 맞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에 있다.

쉽게 예를 들자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남으로 살아왔는데 알고보니 부모 중의 한 명이 유명한 미술가였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하는 상황에 처한 유가족을 배려하고, 동시에 문화유산도 지킬 수 있다는 명분으로 생긴 제도이다. 국가가 예술을 관리하는 프랑스가 대표적인 물납제 적극 시행 국가이다.

법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 기능해야 하는데 오히려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시대가 된지 오래다. 아직도 법의 안전망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언론들과 일부 미술계 사람들이 주장하고 나선 미술품 물납제 역시 이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삼성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인 삼성, 그리고 그 오너 일가란 말이다.

미술품, 문화재를 활용한 세제 혜택, <행복한 눈물> 비자금 사건 등은 차치하더라도 상속세를 낼 능력이 없는 삼성이 아니란 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지금 영악하고, 노회한 미술인들 뿐만 아니라 어리숙한 미술계 활동 지망생들조차 이 '미술품 물납제'의 액면만 보고 나서서 삼성이 물납제 혜택을 보는 것이 즉, 우리나라 미술계를 지키는양 말하는 것을 최근 며칠간 심심치 않게 접했다.

그들의 식견이라던가, 미술계에서의 자격을 운운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자 그럴 자격도 없어 그냥 혀를 끌끌 차고 넘기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삼성의 물납제 혜택을 주장하는 미술계 인사들은 최소한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예술적 꿈을 위해 노력하는 미술가들과 그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가족들을 배신하는 자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의 어리숙하고, 한 치 앞도 못보는 주장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미술에 진심인 재벌, 컬렉터들도 많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내 전직장만 해도 국보, 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사비로 구입했어도 이미 전부 재단에 기증해서 국가가 관리하게끔 하고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면 삼성의 국보급 문화재들은 리움 소장품이 아니라 오너 개인 소장품으로 되어 있다. 이게 꼭 나쁘다는게 아니라 미술품을 대하는 마음, 시작점부터 이미 다르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한 번의 이직없이 삼성맨으로 착실하게 회사생활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삼성은 피해자고, 이재용이 가해자다." 이번에도 또 오너 리스크가 생길 것 같아 안타깝다.


p.s. 국가는 우리나라 문화재니까 나서서 지켜야할 의무가 있지만, 외국 미술품까지 국가가 나서서 지켜야 하나? 시장논리,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그렇게 주장할 때는 언제고? 나도 모네 그림 뿐만 아니라 1400년대 중세 가톨릭 미술도 우리나라에 많아서 좀 자주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일에 국가가 세금들여서 왜 나서야 하나? 자연스럽게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떳떳하게 구매해서 봤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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