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가로 10cm, 세로 10cm라는 한계를 정해둔채 제작한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주에 이어 서울역 한 켠에서는 또 다른 전시가 개최되었다.
며칠 전부터 오며가며 준비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고 오픈하는 날인 오늘을 기다렸다.
<10의 n승>이라는 전시 제목과 모든 작품을
일괄적으로 가로, 세로 10cm에 맞추려는 의도가 신선했다.
오늘 출근해서 바로 전시를 보러 갔는데
작은 공간 안에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작품들 덕분에
오랜만에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공간에 들어서면 작은 캔버스들이 마치 아트페어에서
새로운 컬렉터를 기다리듯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은 아트페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캔버스는 가로 10cm, 세로 10cm로 한 손으로 쥘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작다.
작가들이 이 '10의 n승'이라는 주어진 한계 속에서도
본연의 개성을 녹이고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을지라도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서
또 다른 도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단순히 사이즈를 축소하기만 한 작품도 있지만,
어떤 작품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범주, 한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대치를 발휘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함미나 작가의 작품이 그러했다.
더 뻗어나가도 괜찮을 정도로 강한 붓질을 유지하면서도
과감하게 캔버스의 경계에 멈춰섰고, 그 아쉬움 때문에 여운이 남는다.
나는 평생 작품을 사지 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집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순하게 생각해도
작품을 소유하면 애정이 생기고,
애정이 생기면 작품을 평가해야하는 기준이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선학들을 보며 이런 경우를 종종 목도한 탓도 크다.
그런데 오늘은 꽤나 흔들렸다.
소유욕을 건드릴 정도로 아기자기한 작품의 형태도 그러했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로 딱 그에 걸맞게 자제한 회화작품들이
'뭐 내 결심이 그리 대단한건 아니잖아?'라는 관대함을 불러일으켰다.
왠지 후회할 것 같아서 오늘은 그냥 돌아왔지만,
전시가 끝나는 12월 27일까지 이 갈등은 계속 유지될 것 같다.
(2020.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