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단상

큐레이터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

아르뜨 2020. 12. 2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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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블로그는 미디어의 지형이 변해가는 것과 상관없이 언제나 꾸준히 나의 생각을 전하고, 쓰고 싶은 글을 남기는 공간으로 남기고 싶은 곳인데 꾸준함이 참 어렵다는걸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가끔씩 제 블로그를 들러보는 분들이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말은 못해도 항상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_ _)

 

한 번 흐름이 끊기니 글을 쓰고 싶다가도 스스로에 대한 검열 때문에 머뭇거리게 되던 참이었는데 마침 그동안 저에게 질문을 해주신 분들이 꽤 계셔서 이 핑계로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큐레이터에 대한 질문>

 

Q. 큐레이터가 전시기획만 하는 게 아니라 이외의 부수적인 업무들을 겸해야 한다던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으신지 궁금해요.

 

A. <워너비 큐레이터 특강>을 할 때 항상 강조하던 부분이었습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일만 보고 큐레이터를 꿈꿨다면 그 생각은 바꿀 필요가 있겠습니다. 전문직으로서 '큐레이터'라는 특정 직함까지 갖고는 있지만 결국 한 명의 직장인이거든요. "큐레이터인데 다른 일까지 해야해??"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거 같아요. 교수, 건축사, 구조기술사, 변호사, 판사, 검사, 의사 등등 수 많은 전문직들 모두 본인이 속한 조직 내에서 요구하는 행정업무 등을 해가며 본인의 전문 영역의 일을 할 뿐이죠.

 

큐레이터이지만 내가 속한 회사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이게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갤러리 오너나 미술관 관장의 자녀 등하교 시키기, 숙제 대신 해주기, 논문 대신 써주기 등등의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지만 이건 비단 큐레이터 영역에서만 벌어지는건 아닐겁니다. 그냥 고용노동청에 신고하고 취직을 잘못했다 생각하고 나와야겠지요. 저는 이런 부당함을 당한 적은 없지만 그건 다행히 규모가 있고, 유서 깊은 곳에서 일을 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호사도 이상한 오너를 만나면 이상한 일을 당할 가능성이 있듯이, 큐레이터도 좋은 곳에 취직하는게 중요합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가지려면 전시기획이라는 업무는 전체 업무의 10~20% 정도이고, 나머지는 작품 연구, 관리, 수집이 기본 업무라는 점을 인식하는게 중요합니다. 그 외에 속한 곳에 따라 교육, 홍보/마케팅도 겸해야될 때도 있고요. 규모가 큰 직장일수록 업무의 세분화가 잘 이루어져있긴 합니다만, 어찌되었건 큐레이터 본연의 업무는 전시기획이 아니라 작품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미리 아시는게 좋겠습니다.


Q. 고학력 치고 박봉인 직업이라는 점에서 생계 고민은 없으신지도 궁금하고요.

 

A. 고학력 치고 박봉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긴 하네요. 시장경제 속에 살면서 내가 좋은 학벌에 가방끈이 길다고 무조건 좋은 연봉을 받아야하는 법은 없겠지요. 큐레이터는 하나의 기초 자격일 뿐 연봉 등 나에 대한 대우는 그 후의 내 능력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쉽게 말해서 하버드대 MBA 나왔다고 무조건 구글, 애플에서 모셔가서 억대 연봉을 주어야만 한다는 의무는 없을테니 말이죠.

 

저는 본업도 하면서 강의도 하고 그래서인지 생계 고민은 한 적은 없습니다(참고로 저희 집, 부자 아니에요!). 요즘은 워낙 바뻐서 올 한 해동안 모든 강의를 안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연봉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기분은 가진 적이 없습니다.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불만까지는 아니고, 더 많이 받고 싶으면 내가 더 실력 및 경력을 쌓아서 연봉을 더 주는 곳으로 점프하면 되지라는 생각이에요.

 

Q. 저는 준학예사+경력인정기관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미술사 공부가 재밌지가 않네요.
교양 강의를 듣거나 전시해설을 들을 때는 흥미로웠는데 말이에요.
어쨌거나 이 길을 가보자고 결정은 했는데 업이 아닌 취미의 영역인가 싶은 불안감이 계속 있어요.

 

A. 이건 꽤 심각하게 고민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평생 미술작품을 연구하고,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관점 및 방법론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연구직인데 생각만큼 미술사 공부가 재밌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중에 많이 후회하게 될거에요.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내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고, 가족들은 빚쟁이를 피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더라도 미술사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고 기분이 좋고 꿈에 부풀게 되는 사람이어야만이 이 직업을 천직으로 삼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만큼 평생 스마트함과 예리함, 그리고 학문에 대한 부지런함을 유지해야하는 직업이거든요.


Q. 물론 해봐야 아는 거겠지만 석사도 넘친다는데 준학예사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 몰라서 걱정이 앞서네요. 현직자로서 현실적인 조언 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음... 이 질문은 제가 예전에 쓴 글들을 주욱 보시면 아실 수 있는 문제이긴한데 다시 말씀드리자면, 석사졸업을 해도 취직하기 어려울 정도로 채용시장이 포화상태입니다. 큐레이터 자리는 20년 전에 비해 그다지 변화가 없음에도 관련 분야 대학원생들은 배로 늘고 있는 상태거든요. 계약직으로라도 취직이 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석사 학위 없이 준학예사 자격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원론적으로 봐서도 이 직업은 연구직이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깊이 있는 공부의 경험은 필수이자 최소요건이라고 보시는게 좋습니다. 만약 큐레이터로 결심하신다면 준학예사 시험 대신 하루빨리 대학원 입학을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학부생까지 포함한다면 미술사를 공부한지 벌써 2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공부할게 많고, 더 하고 싶고, 공부할 때마다 재밌고 행복합니다. 이런 느낌이 꽤 소중한데 질문주신 분도 이런 행복감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본인의 선택이지만요. 무엇을 선택하시건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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