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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정체성

2020. 7. 21.

지난 6월 23일에 공식적으로 전시 오픈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휴관에 들어갔다.

 

전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모든 신경과 시간과 육체적 노력을

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특징이 때로는 열정을 갖고 임하게 만들다가도

어떤 때는 허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되는건지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침잠해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큐레이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연구자형 큐레이터,

다른 하나는 행사형 큐레이터.

 

연구자형 큐레이터는 학예연구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참 어정쩡하다고 느끼는게

정체성과 나의 경향은 연구자형에 맞는 것 같은데,

또 달리 보면 행사형에도 어느 정도 발을 걸치고 있을 때가 있다.

 

광고, 미디어, 마케팅 등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일도 해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 둘 사이에 위치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양 손의 무기처럼

둘 모두 갖춘다면 좋겠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액티브한 행사(전시, 공연, 페스티벌 등)를 기획하고 추진하다 보면

정작 내 연구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년까지 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을 하다가

이 시점에서 변화를 주지 않으면

평생 박물관에서 매 끼니를 챙겨먹듯

타성에 젖은채 50대, 60대까지

고미술 전시만 하다가 늙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 공부, 즉 미술사 연구는 어차피 내가 알아서 잘 해나가면 되고

일은 일대로 다양함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미술사 전공자이지만,

현대미술, 디자인 전시도 할 수 있는 사람.

 

전통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무게 중심을 갖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미술계의 변화를 일로서 접근해보고 싶었다.

이게 성공할 수만 있다면

개념이 설익고, 너무 즉흥적이며,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벼운 현대미술 전시가 아니라

조금이나마 무게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이곳으로 와서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디자인 전시를 겪고 있다.

현재까지 겪어본 바 내린 결론은

자칫하면 공부에서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과

확실히 지금까지 해온 전시와는 관점, 스타일, 일 진행 방식 등이 다르다이다.

 

아직 뭐라 결론을 내릴 수 있을만큼

시간이 오래 지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일이 더 손에 익으면

앞으로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과 더 소통하고,

그들의 작업 세계에 대해 들여다 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미술사 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들의 작업에 덧입힐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소위 "미술사의 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중국계 교수가 있다.

우홍이라는 교수인데

중국미술사의 필독서 중 하나인 『순간과 영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주 전공은 한나라 화상석을 중심으로 한 고대 중국미술이다.

당연히 그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자이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가 또 현대미술계에서도

아주 명망 높은 비평가, 미술사학자로도

통한다는 점이다.

『작품과 전시』라는 책을 읽으면

이 사람이 고미술 전공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중국 현대미술을 아주 예리하고, 적확하게 해석한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호도하기 쉬운

현대미술을 정확한 시선과 논리로 해석했는데

이를 보며 '나도 하고 싶다!'라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가끔 직장에서 왜 박물관에서 나왔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들이 보기에도 의아스러울 정도로

나의 경력이 지금 직장에서는 좀 튀는 모양이다.

 

에둘러 "그냥 현대미술, 디자인 전시도 하고 싶어 왔다"고 둘러대지만,

실은 더 큰 욕심과 10년 후를 바라보고 움직인 것이다.

고미술, 특히 나의 전공인 동아시아 회화사 연구자로서도 열심히 연구하는 한편,

일에서는 현대미술 등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들 줄 아는 기획자? 큐레이터?를

한 번 해보고자 한다.

'안되면 그냥 미술사 공부하면 되지 뭐' 라는 마음으로 ㅎㅎ

 

 

p.s.

 

사진은 드디어 이번 주 토요일(7/24)에 오픈하는

이번 전시 속 설치 작품이다.

 

댓글 6
  • 태희 2020.07.22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업을 하면서 들인 시간이, 전시를 올린 후 찰나로 지나가는 관람자와의 거리감을 느끼는 것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습니다. 어쩜. 관람하는 분들이 제일 누리는 거란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 그쵸. 미술이 정말 좋다면 큐레이터도, 작가도 아닌 컬렉터를 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ㅎㅎ 그래도 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야 뭐..라는 생각이긴 합니다. ^^

  • 김용수 2020.07.24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십니다! 사람이란게 원래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인데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 모습이 대단하세요.

    • 에이 아닙니다. 그냥 지루할까 두려울 뿐이라 ㅎㅎ 그나저나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계시죠? 화이팅입니다 :)

  • 최서연 2020.10.08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진짜 대단하신것같아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