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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書 : 한국 근현대 서예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20. 5. 7.

"書者, 散也."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오는데 마지막 벽에 써있던 문장입니다. 중국 한나라의 채옹이 쓴 문장으로 직역하자면, "글씨는 흩뜨리는 것이다"는 의미이죠. 흩뜨리는 것의 대상은 마음입니다. 즉 글씨란 솔직한 마음을 풀어야 제대로 된 글씨라는 얘기입니다.

우선 이 전시는 근대의 서예가들의 작품부터 그들을 계승한 현대의 서예까지 전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럽 · 미국의 추상회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화용필동법(글씨와 그림은 붓 쓰는 방식이 같다), 서화동원(글씨와 그림의 근원은 같다)의 전통 위에 받아들여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이응노 등의 문자추상, 서체추상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술사적 의미가 깊은 작품들이 주를 이루지만, 서예의 필선을 재기발랄하게 펼쳐낸 작품들도 많아 '선의 향연' 속에서 안복(眼福)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안복(眼福)' 이런 말, 오글거려서 회피하는 편인데 어제 본 이 전시는 이 단어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더군요. ㅎㅎ

서체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섹션까지 총 4개의 전시섹션을 모두 보고 나오는 데 마지막 벽에 써있는 채옹의 "書者, 散也."를 의역한 "서는 내면의 정감을 토로하는 예술이다"는 문장을 보고 전시의 마침표를 잘 찍었다는 감탄을 하게 되었죠. 많은 작품들을 보고 나오던터라 자칫 머릿속이 와글와글해질 수 있던 차였는데 이 전시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보여주며 서예가 지닌 미적 가치의 근본을 다시 상기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에게 마지막 이 문장 누구 아이디어냐, 참 센스있고 전시 감상의 마무리를 잘 매조지을 수 있게 해주더라며 물으니 쑥스러워 하더군요. ㅎㅎ

코로나19로 전시 준비를 다 마쳐놓고도 휴관 상태에 있다가 어제 개막을 했습니다. 아직은 위험하기에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한 사람들만 관람할 수 있는데 예약이 어려운건 아닌 듯합니다. 신분증과 마스크는 필수이고요.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전시 디자인도 기존의 단조로운 화이트큐브형에서 벗어나 입체감있는 공간으로 꾸몄기에 전시실 다니는 맛도 좋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동아시아 서화 전통의 본령이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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