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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듯 먼 봄날의 숲 by 김민주

2020. 5. 5.

한 달 넘게 재택 근무를 했다. 2월 말부터 지난 주까지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마 모든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재택 근무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무실에 나올 때도 꽤 많았다. 이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결재 서류 챙기러 오전 시간 느지막히 사무실에 나왔는데 마침 친한 직원도 나와 있었다. 그동안 항상 엇갈려서 못본지 꽤 된 듯했다.

 

반가운 마음에 오늘은 조금 걷더라도 맛있는 것을 먹으러가자며 길을 나섰다. 나는 식욕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지 않는 편인데 그런 내가 이런 제의를 했던 것을 보면 오랜만에 꽤 반갑긴 했던 모양이다.

 

서울역 광장을 지나 염천교로 슬슬 걸어갔다. 여전히 쌀쌀했지만 그 차가운 공기 가운데 포근한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얼어붙고, 많은 것이 멈춰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로 들어서자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종로를 걸으며 봤던 거리에 대한 기억이 겹쳐졌다.

 

재택 근무가 여러모로 좋았지만, 팀 사정상 정신없는 나날이기도 했다. 집에서 기획서 쓰고, 결재 서류 만들고 하다보면 어느새 6시를 넘긴 때가 많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순간의 풍경조차 반가웠다.

 

횡단보도에서 초록색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저 멀리 벚꽃 사이로 중림동 약현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가을 낙엽으로 유명한 곳인데 봄 풍경도 근사했다. 화사한 분홍색의 벚꽃 나무들로 둘러싸인 성당의 모습이 평화로워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풍경이라 생각할 정도로 평범하지만, 이 평범함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 욕심많구나로 해석되기도 하는 세상이니 오죽할까.

 

이 날 본 풍경과 오랜만에 느낀 봄기운은 김민주의 <사유의 숲>을 떠올리게 했다. 저런 숲과 정자가 있다면 배를 타는 수고로움을 무릅쓰고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잠기게 해준 작품이다.

 

김민주, <사유의 숲>, 2017, 장지에 먹과 색, 66.0×96.0

via 김민주 작가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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