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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간의 기록 vol. 2

2020. 4. 4.

우지영, <라토나: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딱히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침에 출근하면 조용한 전시실을 체크하며 한바퀴 돌아보고 온다.

습관이 되었달까.

 

전시실에 올라가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다.

우지영 작가가 베르사유 궁전에 조성돼 있는

라토나 분수대를 서울의 제작 환경에서

흔히 발견되는 자재와 재료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오픈 전이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졸졸졸 흐르고 있는

이 욕조를 보면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적막을 깨는 조용한 물소리와 힘을 빼고

겨우 솟아오르는 물을 볼 때마다 묘해진다.

힘있게 솟구치면 오히려 관심도 안가졌을 것 같다.

초현실주의 작품의 'uncanny(낯선 두려움)'하달까.

날계란을 손에 쥐고 있으면 괜히,

아무 이유없이 바스라뜨리고 싶은 기분과 비슷한 느낌이다.

전시 철수할 때 작가를 만나게 되면 명함이라도 교환해볼까.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일하다가 만년필 잉크가 다 떨어져서 세척중.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담아와서 만년필을 담궜더니 잉크가 물 속에서 선을 이루며 떨어진다.

 

묘하다.

 

 

다른 학교 석사생들이 이번에 졸업했다며 석사논문을 들고 퇴근 시간에 찾아왔다.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내게 미술사 수업을 들었고,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학생들이다.

 

나한테 미술사 수업을 듣고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이 꽤 많다.

학회에 가면 종종 만나게 되는데

그때 감사했다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유달리 고맙게 느껴진다.

 

고마운건 고맙다고 표현할 줄 알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겉과 속이 투명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공공기관에 와보니 크고 작은 민원,

업체와의 분쟁 등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만지는 예산도 커져서

항상 신중하되 미리 방어막을 쳐둘 필요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10년간 써오던 아이폰은 통화녹음을 할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는 쓰면 쓸수록 운영체제가 지저분해져서 정말 싫었는데..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갤럭시노트10으로 바꿨다.

공기계가 아니라 SKT에서 구입하면

자동으로 T전화 어플로 통화녹음을 할 수 있다.

이 참에 갤럭시노트의 S펜이 유용해보이기도 했다.

 

내 돈으로 산 최초의 삼성 제품이다.

삼성꺼 정말 사기 싫었는데.

 

블랙베리가 통화녹음이 가능했다면,

고민없이 블랙베리로 갔을텐데 아쉽다.

 

 

갤럭시노트10으로 처음 찍은 사진.

 

 

이건 아이패드로 찍은 프랭클린플래너와 갤럭시노트10의 조합.

디자인은 마음에 든다.

역시 둥글둥글한거보다 각진게 멋있음.

 

 

어느 주말에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하는

<한국 근현대인물화-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전을 보러 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해 질 녁>이 목적이었다.

이 작품은 도쿄예술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도쿄미술학교(도쿄예술대학의 전신)로 유학간 우리나라 화가들은

졸업할 때 자화상과 함께 졸업 작품을 제출해야 했는데

그 때 그린 작품으로 당시 아주 높은 평가를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이다.

 

수면, 하늘, 바위, 피부를 자세히 보면

인상주의 회화의 병렬적인 원색 터치를 찾을 수 있다.

한국 근대회화의 인상파 수용 연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해 질 녁의 대동강을 배경으로 여인 2명의 전신 누드가

고즈넉한 풍광 속에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야해서 자꾸 쳐다보는게 아니라

1차적인 본능을 넘어 아름다워서 자꾸 보게 만든달까.

 

진짜다. 음.

 

 

마스크 안쓰면 관람이 안된다고 했는데 마스크가 없었다.

이 때만 해도 마스크가 별 효력이 없다는 WHO, 미국 CDC의 의견을 믿었기 때문에

거추장스럽기도 해서 쓰지 않고 다녔다.

 

그래서 목도리로 칭칭 감겠다고 사정사정해서 관람을 허락받았다.

아침에 홈페이지 확인하고 간건데

홈페이지에라도 공지 좀 해놓지라며 속으로 궁시렁거렸지만,

일단 내 불찰도 있고 해서 "한 번만 봐주세요" 했다.

 

지금은 WHO, 미국 CDC 다 안믿는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만 믿고 마스크 잘 쓰고 다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선진국의 개념도 바꿔주고 있고,

WHO와 같은 UN 산하의 연합기구도 별거 아니구나라는 걸 처음 깨닫게 해준 듯하다.

 

이번처럼 모든 것을 뒤집어 엎는 재난이 아니었다면,

즉, 거꾸로 들어서 탈탈 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WHO 같은 기구에 중국과 일본의 자본이

그렇게 많이 잠식되어 있을줄 누가 알았겠나.

 

IOC, FIFA와 같은 스포츠 관련 단체에

일본의 입김이 크다는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WHO까지 이랬을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

 

그리고 미국 CDC가 이렇게 우왕좌왕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재난 영화 보면 미국 CDC가 다 해결해주던데.

역시 전쟁,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건 비디오임.

 

신학철, <지게꾼>, 2012

 

사람의 뒷모습처럼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또 있을까?

 

 

작품의 주인공일지도 모를 나비.

진정한 씬스틸러.

 

 

종로2가에 있는 종로정.

일본 음식을 파는 곳인데 가게만 보면 일본에 와있는 듯.

들어가서 먹지는 않았다.

나중에 가봐야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식 초정장을 보내왔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내 생일날 개막식갔다가

선생님들이랑 술 한 잔 했을텐데.

아쉽구만.

 

 

코로나로 인해서 구내 식당도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서울스퀘어에 있는 중국집에서 먹은 납작 짜장면이다.

난 면요리를 좋아하는데 면발은 납작한 면, 오동통한 면 순으로 좋아한다.

 

 

재택근무 첫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집 앞 카페에 왔다.

부랴부랴 노트북에 회사 메신저 설치하고

전자 결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들 설치하는 데 진을 다 뺐다.

 

이 날 이후로 한 달째 재택근무 중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2, 3일은 출근 중이다.

 

 

전 직장에서는 민화전을 준비 중이랜다.

미디어 아트도 설치한다고 팀장님이 보내준 사진이다.

 

나 있을 때 하지 좀.

 

 

기억안남.

분명 뭐 건수잡아서 마셨겠지.

 

 

갤럭시노트10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 지점이다.

카메라를 프로 모드로 설정하면

실제 카메라처럼 ISO, 조리개, 화이트밸런스, 셔터 스피드 등을

직접 조절해서 촬영할 수 있다.

 

굳굳!

 

 

선물받은 책.

모든 미술사 연구가 마찬가지이지만,

근대처럼 자료가 많은 시대는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 건축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한다.

 

그래야 예술계의 흐름이 보이고,

그 속에서 미술계는 어떤 분위기였는지 감이 온다.

 

넓게 보는 데서 시작하지 않으면

오류가 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작가를 독립 투사화시키는 그런 소리 말이다.

직접 독립운동을 했다면 모를까.

미술로 드높은 결기,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다며

그들을 지사(志士)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내가 다 창피하다.

 

피카소는 나치 독일, 파시스트들을 작품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이유 때문에 피카소를 위대한 화가로 평가하는가?

 

미술사를 위인 전기로 쓰지는 말자.

 

 

우연히 유튜브 프리미엄 가입자에게 구글이 <홈 미니>를 무료로 배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완전 초창기부터 유튜브 프리미엄 써왔는데. ㅎㅎ

이 기계가 뭐하는 데 쓰는건지는 모르지만

구글이 준다길래 바로 신청했다.

 

받아보니 아이폰 시리같은거였다.

주로 사용하는 멘트는

 

"헤이 구글, 오늘 날씨 알려줘."

"헤이 구글, LOFI 힙합 재즈 틀어줘."

"헤이 구글, 볼륨 줄여줘."이다.

 

막상 써보니 무지 편하다.

 

 

3월 초에 지난 전시 때 대여해온 호텔 관련 유물을 반납했다.

반납하기 전에 유물 포장하고, 리스트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재택 근무 중이기도 하고,

다른 직원들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워낙 유물 수가 많아 일일이 직접 확인해야 안심이 돼서 혼자 진행했다.

 

밤 늦게까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팟캐스트 틀어놓고 작업을 했는데

포장 도구들이 있는 곳과 수장고까지의 동선이 꽤 길어서

수레로 나르면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동선 때문에 하얗게 칠한 아주 긴 지하 복도를 지나

창고 같은 곳을 통과하고,

기찻길 옆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밤이 되니까 굉장히 오싹할 때가 많았다.

 

100년된 건물이라는 점,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때의 건축이라는 점,

직원들 사이에서 도는 썰 중에 시체보관실도 있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오싹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는.

 

다음부턴 같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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