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눈물

목소리에 감정이 묻어난다.

 

연로한 강제징용 피해자 할아버지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였다. 본인이 피해자이면서 그저 이런 상황의 중심에 놓였다는 것만으로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평범하고 힘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 목소리는 세월을 모두 잠식한 듯 낭랑하지 않고 쇳소리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쇳소리가 듣기 거북한 것이 아니라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가 흘리는 눈물도 온갖 감정이 묻어나는 농도가 진한 눈물이 아니라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빗물에 가까웠다. 의사, 간호사의 처절한 사투 속에서 막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를 보면서 이런 눈물을 딱 한 번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한지 대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모든 감정, 생각을 초월한 순도 100%의 슬픔이었다.

 

감정과 생각이 담긴 눈물은 진하되 순수하지 않다. 순수하지 않다고 해서 그 눈물의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그만큼 다양한 슬픔이 있기에. 그러나 눈물을 바라보는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하기엔 부족하다. 그저 본인만의 슬픔을 쥐어짜듯 담아낸 눈물에 불과하다. 맑고 투명한 눈물은 모든 것을 씻어내릴 듯이 거침없이 얼굴을 타고 빠른 속도로 흘러내린다. 감정의 찌꺼기를 거둬 내어 슬픔 그 자체에 충실한 눈물이라 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오랜 싸움 끝에 드디어 재판에서 승리했다와 같은 후련함 등 여러 상념을 몰아내고 하염없는 슬픔이 밀려온 듯이 보였다. 감히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마치 인생 전체를 초월한 슬픔같아 보였다.

 

 

p.s.

 

1. 이춘식 할아버지가 재판이 끝난  인터뷰를 하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있지만, 할아버지의  멋있는 사진을 게재하고 싶었다. 글의 내용과 맞지 않은 사진이더라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2. 생각해보니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 죽을 때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 적이 있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내가 <하얀거탑>에서 최도영(이선균)에 가깝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내가 나를 봤을 땐 장준혁(김명민)에 너무 가까워서 유일하게 감정 이입되어 봤던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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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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