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펀드를 받는다는 것



작년에 일본회화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개인적으로 세운 목표 중 하나는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후원을 받는 것이었다.

예산이 워낙 풍부해서 사실 후원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외국미술 전시였기에 공신력을 갖추고 싶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포스터에 후원 기관으로 일본대사관, 일본국제교류기금 로고를 삽입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이다.

추진한 결과 받을 수 있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가 후원을 안받기로 했다. 후원기관을 명기해주는 것 대비 액수가 그리 크지 않은 점도 고려사항이 되었다.

어쨌든 이 일을 거치면서 일본국제교류기금 담당자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마침 내가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일본에 체류하면서 조사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안 담당자는 이 펀드를 소개해줬다.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면서 꽤 많은 지원비를 받을 수 있어 굉장히 큰 관심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박사논문을 쓰려면 일본과 중국에 가서 자료를 많이 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원문 복사는 특히 비싸기 때문에 복사비용만 아마 수 백만원이 들 것이다.

그래서 이 공고문을 두고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언제 갈 것인가 등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설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국 포기했다.

당장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지만,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 일본에서 펀드를 받았다는 이력이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원을 받은 학자들 중에 친일 행각을 보이며 학자, 한국인으로서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부 몰지각한 자들 때문에 계속 머뭇거리게 되었다(언론에 드러난 것 그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한 에피소드가 많다). 물론 내가 올바르게 행동하고, 연구활동을 하면 상관없겠지만 그런 자들 때문에 세트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들었다. 많은 고심 끝에 안받기로 결정했고, 담당자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리고 어제 오랜만에 그 담당자가 잊지 않고 내년의 펀드 계획을 다시 메일로 보내줬다. 혹시 내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배려였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잠시 고민될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교수님들이 빨리 박사논문 쓰는게 좋겠다고 하시던 참인데. 어떻게 해야 후회를 남기지 않을까.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선택할 꺼리가 많아진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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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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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망설임과 불안이 있다는 게 마음의 답이 아닐까... 싶은 조심..스런 생각이 들어요. 매력적인 지원이라서 고민이 되시겠어요.

      • 그러게요. 아마 안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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