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미술 탄생과 미술시장의 변화


17세기 전반 루이 14세 때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독창적인 자기 문화라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네덜란드로부터 시작된 중국 도자기 수입이 전유럽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무언가를 담는 목적의 도자기를 본연의 용도로 바라보지 않고 인테리어 장식으로 쓸 정도였다. 당시 사료들을 보면 중국 도자기를 벽에 덕지덕지 붙이는 것은 기본이고, 항아리가 막 지붕 위에 붙어있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왕실,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자 당연히 대량으로 수입을 하기 시작했고, 중국 수입 도자기는 당시 미술상인들의 주요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루이 15세 시절에 그토록 염원하던 자기 생산에 성공하게 되었다. 독일 마이센 자기 생산에 자극받아 루이 15세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퐁파두르 부인이 적극 후원해서 프랑스도 자기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세브르 자기이다.

더불어 루이를 상징하는 '루이 블루'와 본인을 상징하는 '퐁파두르 로즈'라는 화려한 채색기법도 개발하였는데 이는 S자형 곡선과 조개 무늬를 기본 틀로 하는 로코코 양식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왕실, 귀족들은 자기네 세브르 자기에 열광했는데 문제는 미리 중국에서 물건을 잔뜩 떼어 온 파리의 미술상들이었다.

가뜩이나 먼 바닷길을 건너오느라 파손된 것도 많았으며 완제품도 이제는 파리가 날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든 떨이 처리를 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로코코 양식의 금박 틀을 중국 도자기에 끼워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방식은 깨진 도자기에도 응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이후 판매 장부같은 것을 확인할 수 없어 얼마나 이윤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상인들의 기민함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할 뿐이다.

상업, 교역, 자본이 미술양식의 변천을 이끈 흔치 않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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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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