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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한 권의 책

희망을 떠올리는 날

by 아르뜨 2019. 8. 14.

1. 우산을 항상 들고다녀야 했던 날.

비에 젖으면서 색감이 진해지는 광화문, 정동을 좋아한다.

 

어떤 일을 겪어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장소 하나 쯤은 있어야한다는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까칠하지만 배려심 깊고,

가끔 잠수를 타서 동생들을 걱정시키지만 만나면 항상 편하고,

공부를 중단한 상태이지만 예전에 썼던 논문을 보면 아직도 감탄하게 만들고,

지금까지 만난 미술사 전공자들 중에 인문학적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그런 형이다.

지방으로 가신 이후 같이 술을 마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간다.

 

바쁜게 끝나면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요즘 설레게 만드는 논문 주제도 빨리 쓰고,

관련 프로젝트도 하고 싶다.

 

원래 나중에 뭐뭐 하고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가장 좋긴 하다. ㅋ

 

2. 돌아오는 길에 영풍문고 앞에서 판매 중인

잡지 『빅 이슈』를 샀다.

『빅 이슈』가 한국에서 출간한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잡지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기를 꿈꾸는 노숙인이 직접 판매를 하고

잡지 판매금 5,000원 중 2,500원은 판매한 노숙인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처음 『빅 이슈』를 접했을 때 아주 나이스하다고 느꼈다.

 

흔히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왜 거리를 떠도느냐.

심하게 표현해서 “사지가 멀쩡한데 왜 저러고 사느냐”는

인식이 기본 전제로 담겨있다.

 

이런 생각은 상당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타인을 인상만으로 재단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핏 생각해보아도

노숙인은 사회 시스템의 가장 외곽에 위치해있을 것 같다.

어디가 아픈 사람도 아니고,

노약자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복지 혜택 순위에서 차순으로 항상 밀릴게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한 기부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약간의 경제적인 도움과 함께 살짝 계기를 만들어주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

이 희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하면 잘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은

스스로 움직이는 데 필요한 큰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빅 이슈』의 방식이 나이스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오랜만에 출근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다른 사람도 피하게 만들고 본인조차도 너무 싫을게 분명한

허름한 옷이 아니라 조직의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돈을 적게나마 모을 수 있다.

(2017년 당시, 『빅 이슈』 를 판매하는 700여 명의 노숙인 중 60명이 임대주택에 들어갔고, 40명이 재취업과 자립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굉장히 높은 성공률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오랜만에 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예전에는 카드 결제가 안돼서

현금을 잘 안들고 다니는 나로서는

『빅 이슈』를 못사고 지나칠 때도 많았는데

요즘은 카드 결제가 가능해졌다.

그래서 눈에 보일 때마다 구입을 한다.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왜 그동안 한 권씩만 샀을까라며 센스없음을 자책하게 된다.

다음부터는 그냥 두 권 사서 주변에 선물해야겠다.

 

처음 나왔을 때는 콘텐츠가 조금 빈약했는데

점점 서점에서 판매하는 잡지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주제 선택과 내용 모두 좋아졌다.

 

꼭 노숙인을 돕겠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살 만한 잡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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