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책하는 법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건 아니고,

그냥 별 감흥이 없다는 의미이다.

 

전공 성격상 답사를 워낙 많이 다녀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가더라도 목적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도록을 사온다던지,

필요한 전시를 보고 온다던지.

 

여행은 대개 힐링을 위해 가는거라 하지만

아직까지는 힐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아직 힐링이 필요할 만큼

빡세게 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지간해선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고

그래서 “힐링이 필요해~”라는 말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사치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뭐가 그리 힘들다고

겨우 고만큼 해놓고

힐링을 찾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일상에서도 다니는 곳만 다니고

걷는 길도 정해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길은 광화문 우체국과 영풍문고 사잇길이다.

이쪽이 같은 광화문이라도 가로수가 조금 더 울창하고

인적이 맞은 편 길보다 뜸한 편이다.

그래서 항상 이쪽 길로 다니곤 한다.

 

그리고 요즘 자주 가는 카페는

광화문 교보문고와 D타워 뒤에 있는 커피빈이다.

이곳 역시 광화문에 있는 수많은 카페 중에서

가장 사람이 적어서 한적한 가운데 책을 읽을 수 있다.

 

지난 일요일 남북미 정상회담이 있던 날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에 먼저 오기로 한 아침이었는데

광화문에 경찰이 이렇게 많이 모인건 처음 봤다.

그 자체로 장관인 날이었고

나는 하나의 풍경을 형성한 경찰들을 뚫고 지나가서

아무도 없는 커피빈으로 들어왔다.

 

강의를 하기 전에 영풍문고에 가서

이 책, 저 책 구경하며 산책을 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이것.

대형서점에 어울리지 않을 그 소소함에 피식 웃음이 났다.

도도하게 생긴 고양이 책 지지대라니.

 

다른 서가에도 많았다면 그런가보다 했을텐데

여기에만 놓은걸 보니

임시방편으로 갖다놓은 듯하다.

나는 이런 소소한 디자인 상품이 왜 그리 좋은건지 ㅎㅎ

 

그 뒤에 놓인 책은 『글의 품격』이라는 이기주 작가의 신간이다.

이기주 작가가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로 오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언어의 온도』만 해도

그의 글이 참 좋았다.

 

처음 읽고

‘와.. 어떻게 글을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잘 쓰지?’라며

한동안 항상 들고 다니며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는데

지금은 읽지 않는다.

 

글의 패턴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평범한 단어의 놀라운 어원을 소개하고

(예를 들면, ‘아 이 단어의 본래 의미가 이런거였어?’ 싶을만한)

그 단어를 두고 이런저런 사색을 펼쳐놓는 방식이다.

 

아니면 별 의미없이 한 평범한 행동을 두고

자기 경험을 녹여 낭만적으로만 바라보는 방식을 주로 구사한다.

 

처음에는 말랑말랑한 감성이 좋았지만

그 후로 나온 책들도 계속 같다보니

이제는 더 이상 읽지 않는다.

 

무엇보다 글이 매번 울어.

뭘 얘기해도 울고 있어서

읽기에 조금 지친다.

원래 산뜻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가끔 울어줘야

그 임팩트가 큰 법인데.

 

그 밑에 있는 김중혁 작가의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작가의 방법론이다.

흔한 글쓰기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자의

물건과 일상이 녹아있어 재밌게 읽은 책이다.

아이패드를 비롯해서 주로 쓰는 물건들이

나와 비슷해서 더 공감가기도 했다.

한 번쯤 쉬면서 읽기에 좋다.

 

요즘 이런 쉬어가는 책을 못봐서

조금 아쉬웠는데 뭐가 더 있나 오랜만에 찾아봐야겠다.

이미지 맵

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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