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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큐레이터의 단상

인간 이해의 폭

by 아르뜨 2019. 6. 10.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자라온 내가

다른 지역에서 살아 본 때는

군대와 일본 어학연수 시절 뿐이다.

 

특히 21살에 간 군대는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시절이다.

 

친가, 외가 모두 서울에 터를 잡으신지 오래된터라

대학 때까지 서울 외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군생활을 헌병대에서 탈영병을 체포하는 보직으로 보냈다.

자연스럽게 범죄자들도 접할 수 있었다.

체포해와서 조사실에서 수사보고서를 쓸 때

밥과 물을 챙겨주며

보고서 쓰는 중간에 간간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중에는 정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해준

범죄자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고 싶은

안타까운 사연의 병사들도 있었다.

 

대개 전자는 간부, 장교가 많았고,

후자는 나처럼 의무 복무 중인 병사가 많았다.

그들을 보면서

나처럼 때가 되면 당연하다는 듯 초중고에 입학하고,

또 때가 되면 대학에 들어가는게 자연스러웠던

내 인식의 얄팍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나 온 삶의 과정들이 결코 보편적인게 아니라는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과 비교하며 잘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마저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중 내 또래의 한 탈영병의 사연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는 해체된 가정환경 속에서 살다가 입대한 친구였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임신했는데

이를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여자친구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결국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났고,

사후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그의 짧은 일생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사회의 제도권 속에서 평범하게 자라왔다면

결혼을 하고 열심히 삶을 일구어나갈 의지를 다지며

군생활을 잘 마치는 방향으로

평범한 해결 방안을 찾으려 노력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일생을 그런 ‘평범한’ 삶을 누리지도, 목격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더불어 무엇이 ‘평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갖게 해준 사건이었다.

 

오늘 군인을 한 인격으로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변화된 군생활이

군사망사고와 탈영 수치를

현저하게 낮춰주었다는 기사를 봤다.

 

최근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탈영병 숫자가 연간 1,500명 정도였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탈영 사건은 정말 극소수일 뿐

탈영이 아주 빈번했다.

 

그런데 이번 통계는 연간 150건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1/10 수준으로 감소할 정도라니

나름 담당자였던 나로서는 다행스럽고 안도감이 들 정도이다.

 

이런 변화를 두고 군기가 빠질 것이라며 우려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같은 사안을 두고 각자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기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건 당연하다.

그러나 군인을 한 명의 인격체로 보면 감히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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