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산 이유

매력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말 중에는 뇌섹남이라는 단어가 있다.

단어 그대로 뇌가 섹시한 남자라는 의미이다.

 

아는게 많고, 지적인 사람 특유의 아우라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만고불변의 매력이라 할 만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일요일),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강의를 하러 광화문에 나왔다.

늘 그렇듯이 광화문역에 도착하여

교보문고를 한바퀴 둘러봤다.

 

책을 안살 때도 있지만

오늘은 꼭 한 권을 사고 싶었다.

대개 마음이 휑할 때 이렇다.

 

내 전공 공부만 하다보면

마음이 푸석푸석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뭔가 말랑말랑하고, 달착지근한 책이 땡기는 것이다.

 

마침 구글포토 속 ‘사고 싶은 책’ 앨범에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가 들어있었다.

얼마 전에 출간 소식을 보고 캡처해서 저장해놨던 책이다.

 

<알쓸신잡> 방송을 통해

저 작가의 책은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뇌섹남이 단순히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건 당연한 조건이고,

더 나아가서 자신이 아는 지식을 내비치는

행동양식도 중요하다고 본다.

 

안다고 듣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지식을 쏟아내기만 하는건 지식업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방송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이야기, 주장을 듣는 사람을 고려해가며

단어 선택을 하고, 태도를 결정하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뢰가 갔다.

저 사람의 지식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책을 처음부터 읽지 않는다.

우선 촤르륵 넘기다가 내 의식에 확 다가오는 부분부터 읽은 뒤에

전후 내용을 보충하는 식으로 읽는다.

 

『여행의 이유』 중간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김영하 작가가 배낭여행 중에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을 갈 때 우연히 만난 백인 여성 두 명과

밤기차를 같이 탄 스물다섯살 때의 이야기이다.

 

밤기차는 한 칸에 세 명만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있는데

백인 여성 두 명이 김영하 작가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대개 여기까지만 들으면

남자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삼을 것 같은 추억이다.

 

유럽에서!

그것도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을 가는 낭만적인 여정 속에서!

게다가 백인 여성 두 명과!!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시하고 있었다.

동양인 남자는 수줍고, 힘도 약하고, 예의가 바르기에

함께 밤을 지새도 결코 아무 일탈도 벌이지 않을 것이다는

백인 여성들의 선입견에 자신이 선택되었을 뿐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가 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불쾌감을 내비치거나,

‘내가 너희 속셈을 이미 다 알고 있느니라’며

자신의 지적 수준을 백인 여성들에게 과시하지 않았다.

 

알고 있음에도 백인 여성들이 안심하고 잘 수 있도록

조용히 제 역할을 해주고 다음 날 헤어져줬다.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철없게 백인 여성들과 추억을 쌓았다며 들떠하지 않고

그녀들의 의도를 간파한 그의 지식 수준을 높이 산다.

그럼에도 안전한 밤을 원하는 그녀들의 입장을 존중하여 티내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주었던 행동양식을 존경하게 되었다.

 

현재 이 내용만 본 상태인데

앞으로 읽어볼 다른 내용이 기대된다.

책을 잘 샀다는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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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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