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의 <대한제국의 미술>전 비판 기사에 대한 반론


“의욕적인 시작과 달리 마무리가 다분히 맥없게 풀려간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당대 그림 대가인 안중식, 조석진, 김규진의 계보에 기반을 둔 1910~20년대 미술인 모임인 서화미술회, 서화연구회, 동연사 등의 단체와 작가들을 소개했지만, 대한제국 미술의 가장 큰 결실이자 당대 전통 회화와 양화의 통합 단체였던 서화협회에 대한 소개가 통째로 빠진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술사가 최열씨는 “국망기 우국의 충절로 사군자화를 새롭게 그렸던 당대 대가들이나 일제에 부역한 매국노들의 글씨를 대비하는 기획도 생각해봄직한데, 대한제국 미술의 빛과 그늘이 짜임새있게 마무리되지 못한 느낌”이라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대한제국의 미술>전에 대한 비판 기사다. 우리나라 언론은 뭐라도 비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식이 강하다는게 가장 큰 단점이다. 굳이 비판하지 않아도 될 내용을 사족처럼 끼워넣는다. 이 기사에서 비판한대로 전시를 꾸미면 잡다해진다. 옷가게로 비유하자면 전시는 샤프한 부티크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저것 넣느라 잡다한 편집샵이 되어버린다. 기사에서 말하는 비판은 왜 서화협회를 전시에 넣지 않았느냐, 이완용같은 국가반역자들의 서예 등 대한제국의 그늘은 언급하지 않았느냐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서화협회가 전시에서 빠졌다는 비판에 대해 살펴보자. 서화협회는 1918년에 전통과 새로운 미술의 조화, 동양과 서양미술의 연구, 후진 양성 등을 목표로 설립되어 1936년까지 존속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미술단체이다. 당연히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한국미술사의 화가 그룹이다. 그럼에도 서화협회를 이 전시에 넣으려면 실무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 활동했던 서화가들이 한 그룹에만 소속되어 활동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시에서 언급된 서화미술회, 서화연구회, 동연사, 그리고 전시에서 빠진 서화협회의 인적 구성이 모두 겹쳐있다는 이야기이다.

서화협회를 말하기 위해서는 서화미술회, 서화연구회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두 그룹은 서화협회의 양대 축이었다. 서화미술회는 안중식, 조석진 등 서울을 기반으로 한 그룹이었고, 서화연구회는 김규진, 노원상, 이병직 등 평양 출신들이 주도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서화협회의 1대 회장으로 안중식이 선출되었을 때만 해도 모두 수긍했을테지만, 안중식이 타계하고 2대 회장으로 같은 계파인 조석진이 선출되자 서화연구회 출신들이 반발하여 탈퇴한 적도 있다. 그만큼 서화협회가 대한제국 미술의 가장 큰 결실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잘 운영되었던 조직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또한 서화협회는 같은 시기 출발한 총독부 주도의 조선미술전람회와 경쟁에서 계속 밀려나기도 하였다. 미술가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던 관전이 조선미술전람회였기 때문에 민족지향을 강조해도 당장의 성공 여부가 더 중요했던 미술가들은 아무래도 조선미술전람회에 더 집중하고 출품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 지적하여 당시 유화가이자 미술비평가로 활동했던 심영섭은 서화협회가 처음부터 뚜렷한 민족지향을 추구한 단체가 아니라는 비판을 한 바가 있다. 서화협회는 이러한 문제를 안은채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다가 결국 1936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15회나 우리나라 미술가를 중심으로 전시도 개최하고 잡지도 간행하는 등 그 의의는 정확하게 평가해야 되지만 서화협회가 전시에서 빠졌다고 비판할 정도의 단체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화협회는 시기(1918-1936)는 물론이고, 성격상 대한제국의 미술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미술로 분류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한제국의 미술>전은 제목 그대로 대한제국의 미술을 다루는 전시이다. 근대미술의 시작을 보여주는 전시인 것이다. 따라서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을 사족이다.

기사 속 두 번째 비판인 일제에 부역한 국가반역자들의 글씨와 비교함으로써 대한제국 미술의 빛과 그늘을 모두 다루지 못했다는 점은 전시 컨셉에 맞지 않은 비판이다. <대한제국의 미술>전은 조선왕실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되, 새롭게 유입된 서양과 일본 미술의 자극 속에서 전개된 미술을 조명하여 이 시기의 미술이 그간 우리의 선입견처럼 반드시 조형적으로 정체성이 없고, 암울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더 나아가 궁중미술의 전통을 계승한 것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기법면에서도 탄탄하여 단순한 기억이 아닌 기념할 만한 미술이었다를 주장하는 전시이다.

이런 컨셉의 전시에 굳이 그늘을 언급하는 것은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가 스스로 자신의 기획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전시는 논문이어야 하지, 개설서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늘에 대한 전시는 다음 전시에서 하면 된다. 글을 쓸 때 끝까지 교정을 보고 윤문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일이지만, 이 역시 지나치면 글이 너무 매끄러워져 개성이 사라지고 주장은 미약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시를 비롯한 모든 기획은 샤프해야한다. 적당한 선에서 살릴껀 살리고, 버릴껀 버려야 그 컨셉이 두드러지는 법이다. 지금도 전할지는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 내가 광고계에 있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전설을 소개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테니스공 하나만 던지면 누구나 공을 쉽게 잡을 수 있지만 한 번에 대여섯개를 던지면 우왕좌왕하다 모두 놓친다는 이야기이다. 소비자는 하나만 잡을 수 있다. 전시 역시 그러하다.

p.s. 근데 난 왜 내 전시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글을 썼을까. 써보니 남의 전시에 너무 나섰다는 느낌이 들지만 전시가 정말 좋았기에 어쩔 수 없다. 정치 섹션도 그러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 기사는 정말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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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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