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북스는 서점인가, 매거진B 판매소인가


한남동에 새로 오픈한 사운즈한남에 다녀왔다. 사운즈한남은 매거진B를 간행하는 JOH & Company가 기획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그래서 곳곳에서 매거진B의 디자인 컨셉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스틸북스를 오픈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꽤 기대를 했다. 매거진B를 통해 느낀 명확한 컨셉, 특징이 분명한 서점이 될 것 같았다. 합정의 땡스북스가 이태원에도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아직 자리잡기 전이어서 그런지 이 서점을 매거진B와 같은 회사에서 만든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공간 디자인은 JOH & Company가 늘 그렇듯이 한 눈에 봐도 JOH & Company 작품같았다. 광화문 교보문고 뒤의 D타워도 JOH & Company가 설계했는데 D타워의 축소판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콘텐츠였다. 서점에서 콘텐츠는 당연히 책이다. 한정된 공간에 책을 얼마나 시의적절하게 배치했는지, 종류는 다양한지 여부가 중요하다. 스틸북스에서 오픈 직전에 북큐레이터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본 적이 있었기에 더욱 큰 기대를 했다. 전문가의 시각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서가를 통해 그 시각을 딱히 느낄 수는 없었다. 아래 사진들을 보면 전통적인 책 분류법을 따르기 보다는 서점가에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컨셉을 정해 책을 분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공간에 들어가있는 책들인데, 전문가인 북큐레이터(어떤 전문성을 갖춰야 북큐레이터라는 직종이 성립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지만 아무튼)가 선정했다기 보다는 그저 다른 서점에서 매대에 올려 놓은 책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가져와서 팔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참고로 땡스북스는 컨셉이 명확하다. 땡스북스에 가면 교보문고같은 대형 서점에서 찾기 어려운, 그러나 꼭 필요한 책들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방문객에게 언제나 득템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주는 곳이 바로 땡스북스다. 물론 그동안 연륜이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스틸북스는 갈 길이 먼 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틸북스의 책들은 이 책들을 사러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근처에 있는 북파크를 추천하고 싶다. 북파크는 책 종류가 많아서 한 번 들어서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책 구경을 하게 된다(북파크는 한강진역 바로 옆에 있다). 스틸북스는 발렛 주차가 가능하지만 굳이 그 복잡한 이태원에 차를 갖고 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도 아주 불편한 위치에 있다. 지도상으로 이태원역과 한강진역 사이에 있지만 이태원역에서 그나마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이태원역에서도 엄청 멀다는 점을 미리 알아두는게 좋을 것이다.



1층에 들어서면 매거진B 섹션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 때 매거진B를 사보는걸 즐겨했는데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관심있는 브랜드는 다 나온 느낌이랄까.



매거진B에서 다룬 브랜드 중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LAMY편이 절판되어 그동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는데 스틸북스에서 드디어 만나볼 수 있었다. 문제는 이제는 내가 LAMY를 안쓴다. 두꺼운 펜촉에 적응하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궁서체를 기반으로 한 내 서체에 두꺼운 필촉은 도저히 맞지 않더라.


매대 한 켠에는 매거진B와 몰스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노트를 발매했는데 이 역시 아무런 특징이 없다. 그냥 뒷면에 잉크가 다 번지는 극악의 종이질을 자랑하는 평범한 몰스킨에 불과하다. 띠지에 매거진B CI가 박힌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랄까. 참고로 난 매거진B 몰스킨편에 나온다. 인터뷰에 응할 정도로 사랑하는 브랜드였지만 종이질에 지쳐버린지 오래다. 몰스킨보다는 로이텀 혹은 로디아 노트를 추천한다.





스틸북스 책 변별력에 가장 실망한 코너가 바로 미술 코너다. 보자마자 '이게 모야... 지금 저 책들을 한국미술사 대표책이라고 내놓았단 말야?'라고 했다는..



안쪽에 있는 책들은 어떤가 싶어서 봤더니만, 아무런 컨셉도 없고, 그렇다고 미술사의 필독서들도 아니며, 신간들도 아니다. 칸딘스키의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는 열화당에서 무려 2000년에 나온 시리즈 중 하나다. 물론 꼭 읽어야 할 책이긴 하지만 저 책 하나만 갖다 놓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열화당 미술 총서 전체를 갖다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뒤에 있는 『상인과 미술』도 좋은 책이지만 저자가 그 후에도 좋은 책들을 얼마나 간행했는데 달랑 저 책만 갖다놓다니. 『그림값의 비밀』과 요즘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난생 처음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는 왜 배치하지 않았을까.



입식 서가에는 이 책들이 있었는데 이 책들을 보고 확신했다. 일단 스틸북스 오픈 날짜에 맞춰 손에 잡히는대로 갖다 놓은 것이라는걸. 스틸북스만의 책에 대한 관점은 언제쯤 생길까? 땡스북스처럼 그곳에 가면 다른 대형서점에는 없지만 반드시 좋은 책을 사올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미술사책 큐레이팅이 어렵긴 하지만 문외한인 분야는 차라리 자문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은 심플하니 좋다. 딱 JOH & Company스럽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모든 곳에 JOH & Company스러운 디자인을 주입하다보니 슬슬 식상해진다. 선과 선이 유기적으로 교차하며 생기는 모호한 공간이 참 세련되게 보였고, 지금도 멋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낭비되는 공간이 너무 많다.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고, 단순히 책만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구호를 외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서점은 서점다워야 한다. 사고 싶은 책이 많은 서점이 최고의 서점이다. 일본 츠타야를 염두에 둔 듯하지만 츠타야는 일단 책이 엄청 많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앞으로 어떻게 변모해나갈지 기대도 크지만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하는 서점이 되기를 바란다. 현재로서는 대형서점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네서점도 아닌 어정쩡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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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뜨

현재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미술사, 전시 등을 쉽게 소개하는 아트앤팁닷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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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4개 입니다.

      • 무엇보다 서점은 서점다워야한다는 말에 공감입니다 ㅎㅎ 스틸북스 가보고 싶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까 머뭇거리게 되네요... 다음에 한남동에 갈 일이 있으면 들르는 정도로 방문해봐야겠어요.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스틸북스 갔다가 생각보다 별로여서 실망하고 왔네요. ㅎㅎ 그래도 한 번 가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함 봅시다 ^^

      • 음 일하는 분들이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고 왔습니다. 세련된 구성과 디자인이 돋보일지 몰라도요. 무언가 힙한 기업이 만든 거라는 자부심이 과한 것인지.. 또 가고 싶지 않더군요

      • 그러셨군요. 저도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상하게 공간이 좀 세련됐다 싶으면 불친절한 경우가 많더군요. 이미지가 영 안좋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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